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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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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며 내내 불편했다. 왜 불편한지도 모르면서 계속 그랬다. 읽기에 부담 없는 분량의 단편들인데도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게 어려워 자꾸만 망설였다. 이 얘기를 더는 알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제발 이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말을 인물들은 여지없이 뱉어놓았고 이야기는 저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결말으로 치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지는 못했다. 불편해 자꾸 몸을 뒤척이면서도 끝끝내 다 읽어냈다.

   무엇이 그리도 불편했을까?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결함이 있다. 문학에 있어 주인공의 결핍은 드물지 않은 요소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때로는 플롯을 훌륭하게 완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다르다. 그들의 결함은 도무지 극복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다. 그것들은 때로는 그들 자신을, 그리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을 좀먹고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에게마저 편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다. 무엇보다 '지극히 내성적인'의 인물들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플롯 속에 그들의 결함은 오롯이 존재할 뿐, 어떤 방향성도 띄지 않는다. 그 결함은 때로는 신경증적 강박으로 나타나고, 이따금씩 망상의 모습을 하며, 가끔은 정신병적 경계까지 침범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작중 인물들은 태연하다. 다른 소설 속 인물들이 작가가 부여한 '정상적인' 인격의 틀 안에서 태연하듯이, 그들도 그렇게 살아간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정말 불편한 게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이 가져오는 느낌을 단순히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이라던가 사회적 규범을 비껴간 인물에 대한 소외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건 꽤나 정당한 기분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내성적인'의 인물 중 한 명이 내 가족, 내 친구라고 상상해보라. 지나친 결벽과 한번 눈에 들어온 대상에 대한 끝없는 집착, 상대에 대한 망상과 거기서 기원한 원망, 진짜라고 믿게 된 거짓말, 자기 세계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현실감각의 상실. 모두 작중 인물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준 일면들이다. 그런 인물의 곁에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남편이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느꼈을 숨이 막히는 기분을, 한 손에는 종이칼을,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나타난 과거의 집주인을 마주한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속 여류작가의 당혹감을 독자는 누구보다도 깊게 공감할 수 있다.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성향의 인물을 우리도 주변에서 만난 적이 있고, 그 경험은 무척이나 불편했기 때문에. 그제서야 생각한다. 이 이야기들이 불편했던 건, 이 불편함이 실재하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작가의 말에서 최정화는 자신의 소설을 읽은 후 무언가 하나라도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걸음걸이라도 달라 보였으면 좋겠다고. 책을 덮은 후 내일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무심코 스쳐간 사람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를 상상해 보았다. 흥겨운 멜로디임에도 우연히 들은 모르는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가 소름끼쳤다던 작가처럼, 나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될 것만 같았다. 


누가 누구에게 완벽한가의 문제

 

   한편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지극히 내성적인'의 인물들은 분명 범상치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구두'의 주인공은 실제 꺼림칙하게 여기던 가사도우미가 신발을 바꿔 신고 간 것을 발견한다. 실수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일을 기분 나쁘게 여긴다 해서 지나치게 예민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틀니'의 아내나 '홍로'의 가짜 아내 모두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오랜 시간 지속된 불합리한 관계에서 기인한다. 그들의 속에 있는 어긋난 톱니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소함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낸 건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 이야기 속 누구도 결코 완벽하게 떳떳하지 못하다.

   그 사실 또한 불편하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완벽하지 못하고 때로는 모나게, 때로는 못나게 구는 나도 누군가에게서 저런 면모를 끄집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불편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 그러다가 또 마음을 고쳐 먹는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는 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의 불편함을 껴안아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안도한다.


지극히 내성적인 그들

 

   감자를 포대에 담아주며 승재 어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감자 썩는 건 순식간이니까 보관 잘해. 하나가 썩으면 그 옆 감자가 썩고 또 그 옆의 감자가 따라 썩는 식으로, 그렇게 감자 한포대가 모조리 썩어들어가는 게 한순간이라니까. 그러니 썩은 놈을 발견하면 얼른 골라내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처음에는 겨우 단 한알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체가 끔찍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거지요.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단 한알의 썩은 감자처럼 순식간에 퍼지고 말아, 나는 선생님에게 그런 말들을 내뱉어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 p. 146


   벼랑 앞에 서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성실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순간의 쾌락 대신 인내를 추구한 이들조차 이토록 고단하고 외로운 미래를 맞아야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었다.

- p. 189


   원래 나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조차도 안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던 사람이었다. 순간 전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처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그때는 그 여자만 내 곁에 있으면 세상이 다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 끔찍해졌다. 해서는 안될 말들이 오갔고 천적을 잡아먹으려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내게 악다구니를 퍼붓던 전처의 얼굴이 떠오르자, 어이없게도 그 얼굴이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 p. 201


   이런 문제에는 강했다. 계산할 것도 없이 바로 답이 나왔다. 특히 지문의 내용에 진심으로 공감할 경우 오차는 제로에 가까웠다. 다른 친구들이 지문의 내용을 수식으로 바꾸어 방정식을 풀고 있을 때, 연필이 싫다고 외친 한 친구는 대체 연필로 인한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선물을 거절했을까 안타까워하면서 그를 위해 무얼 선물하면 좋았을지를 고민했다.

   '샤프일까?'

- p. 244


   이사하기 전날 나는 아주 가느다랗게 숨 쉬고 있었다. 여기서 딱 일인분의 고통만 더 공감한다고 해도 그대로 그만 죽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 p. 246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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