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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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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의 애칭은 윈디 시티, 바람의 도시다. 그래서일까.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도 확신에 찬 꿈을 안고 시카고로 온 캐리를 맞이하는 것은 바람이다.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차갑게, 때로는 허황된 꿈의 한 자락을 놓치 않도록 따스하게 불어오는, 그녀를 어디로 데려다 줄 지 알 수 없는 바람. 그 속에서 캐리는 정처없이 흔들리다, 자신이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의 미래를 맞닥뜨린다.

 책을 읽는 현대의 독자라면 캐리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허영에 질릴지도 모르고, 그저 멍청하고 예쁜 트로피 와이프처럼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울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소설의 배경이 1889년의 미국이고, 캐리가 그 중에서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처녀라는 사실이다. 그녀에게는 집안의 든든한 지원도, 인생의 방향에 대해 조언할 수 있을 만큼 사회 경험이 많은 부모도, 교육의 기회도 없다. 심지어 근무 경험도 없어 대도시 시카고에서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신발공장에서 신발끈 구멍을 뚫는 여공으로 일하는 것밖에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대도시에서 들뜬 그녀에게 그녀를 맡아준 언니와 형부가 보내는 시선은 냉대에 가깝다. 극장에 가자는 그녀의 제안은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되고, 형부는 돈을 벌어보기도 전에 놀 생각부터 하는 처제가 미래에 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드루에가 캐리에게 손을 내민다. 소녀 시절부터 꿈꾸던 좋은 옷을 사서 입히고 언니네 집에서 한번도 먹어볼 수 없었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상심한 그녀에게 살 곳을 구해주겠다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 순간 캐리가 갈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오직 드루에만의 그녀의 길일 뿐이다.

 물론 캐리는 그런 드루에를 금방 꿰뚫어본다. 그녀에게 새로 접근하는 허스트우드가 더 나은 남자라는 사실도 바로 알아챈다. 그것이 캐리가 타고난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깊은 감성과 거기에 기반한 타인에 대한 예리한 통찰. 많이 배우지도, 많이 경험하지도 못한 어린 그녀는 그 감에 의지해 삶을 헤쳐간다. 물론 그녀가 고른 길이 늘 옳지는 않다. 그래서 가족들이 애정을 듬뿍 담아 '시스터 캐리'라 부르던 젊은 처녀의 미래는 결코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캐리의 인생이다. 19세기의 시카고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 그런 것밖에 없을 뿐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인간의 욕망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보수적이던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고 또한 많은 비난에 직면했다고 한다. 그가 소설 속에 구축한 욕망의 세계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여전히 우리는 돈과 명예와 여자가 있는 세계, 탐욕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세계에 조금씩은 발을 딛고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도 '시스터 캐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비록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해도, 사회적 지지기반이 마련되었다 해도, 법적 보호장치가 존재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여전히 살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욕망에 몸을 맡기고, 또 그 선택에 의지하여 정점에 오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면에는 여전히 고뇌와 갈등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고 때때로 삶은 그 어떤 죽음보다도 추악하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과거의 그들이 그랬듯.

인간은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 한때는 자기 의지에 따라, 한때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식으로 열정의 숨길에 따라 그때그때 움직인다. 자유의지에 따라 실수를 저질렀다가 본능으로 회복하기도 하고 본능으로 인해 쓰러졌다가 자유의지로 일어나기도 하는, 예츨할 수 없을 만큼 변동이 심한 존재이다. 어쨌든 진화는 계속되며 이상은 결코 꺼지지 않는 불빛이라는 사실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인간은 이처럼 영원히 선과 악 사이에서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의지와 본능 간의 다툼이 조정되고, 완전한 깨달음이 자유의지에 본능을 온전히 대체할 힘을 부여하게 되면 비로소 인간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이성의 지침이 진실이라는 머나먼 극점을 확실하고 변함없이 가리킬 것이다.

- 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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