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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처음 신간목록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신간평가단과는 상관없이 꼭 읽겠다고 다짐했던 책이었다. 주제 사라마구는 그런 작가다. 그 이름만으로 새로 쓴 소설이 어떤 주제의식을 담고 있고 어떤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분량은 어느 정도고 번역상태는 어떤지 고민할 필요 없이 책을 선택하게 만드는 작가. 200페이지 정도의 얄팍한 두께였던 이 책은 얼핏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작가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을 통해 구약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소재를 고려했을 때 결코 쉽게 읽힐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갔던 것은 구약성서에 기초한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서였고, 그를 풍자하는 사라마구의 신랄한 어조가 시선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덮는 게 아쉬워지는 종류의 책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의 절에 기와를 얹고, 숙모 혼자 꿋꿋이 성당에 예배를 다니며 나머지 가족 모두가 종교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던 집에서 엄마는 혼자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가족끼리 예배에 가는 게 소원이었다는 엄마는 성경을 좋아했다. 틈만 나면 창가에 앉아 돋보기를 콧등에 얹고 낡아서 책장이 반들반들해진 대학 시절의 성경책을 넘겨보곤 했다. 비슷하게 성경 읽기를 좋아하면서도 난해한 디테일과 흐름을 끊는 고어체에 자주 좌절하던 나는 언젠가 엄마에게 뭐가 그리 재밌어서 끈덕지게 읽는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엄마가 한 대답은 성경은 역사야, 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특정한 방법으로 쓰여진 한 민족의 역사이고, 그 민족이 자랑스러워하는 조상들의 일화이고, 어떤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기록이라고. 그래서 (돌이켜보면 늘 역사에 매료됐던) 엄마는 성경을 좋아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꿰고 있을 딱 그만큼은 읽었어도 격동의 사춘기를 거치며 간혹 언급되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문장들에 거부감을 느껴 성경을 멀리하게 되었지만, 엄마는 늘 꿋꿋했다.
사라마구의 '카인'을 읽으며 엄마의 말을 다시 되새겼다. 이 책은 구약의 서사적 측면에서 줄거리를 따온다. 아우 아벨을 살해한 죄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게 되었다는 아담과 하와의 장남 카인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방랑하며 성경 속 사건들을 목격하고, 경험하고, 성찰하는 이야기. 분명 비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성경 자체가 신과 천사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라는 걸 생각했을 때에는 더없이 어울리는 설정이다. 카인은 노아를, 아브라함을, 여호수아를, 그리고 욥을 만나고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 바벨탑의 혼돈, 노아의 방주와 40일간의 비를 경험한다. 그 만남에서 카인은 자신들을 창조한 신이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카인의 시선을 통해 사라마구는 구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면모를 꼬집는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명령인지, 충직한 욥을 두고 사탄과 내기를 한 것은 결국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일이 아니었는지, 소돔과 고모라의 죄없는 어린아이들까지 죽일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묻는 카인을 통해, 성경 속 하나님은 지금껏 없었던 논리적인 비판에 직면한다.
이렇게만 보면 사라마구의 '카인'은 신성모독이다. 실제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 많은 기독교 단체들은 이 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그저 자신의 변덕으로 사람의 목숨을 흔들고 못하는 일이 있어 인간에게 거래를 제안하며 때로는 유치한 고집을 부린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라마구가 겨냥하는 신이 '구약성서 속의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이 책 어디에도 실제 어딘가에서 인류를 지켜보고 있을 하나님에 대한 비판은 등장하지 않는다. '카인'은 철저하게 구약에 산재한 증거들을 토대로 하여 구약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문제점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몇 천 년 전 쓰여졌다는 책 속 하나님의 모습은, 결국은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성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기득권층의 신념을 투영한 모습인 것이다. 여자를 하찮게 여기는, 동성애를 죽음으로 벌해야 하는 죄악으로 여기는, 전쟁에 열광하고 학살에 환희하는 모습들은, 아마 하나님보다는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과 더 닮아있을 것이다.
굳이 지금 이 책이 쓰여진 이유는 뭘까? 구약성서에 때로는 읽어내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기록을 남긴 인물들은 지금은 죽고 없는데 말이다. 글쎄,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그건 하나님을 자기 입맛에 맞게 형상화하고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믿으며 그로 인해 권력을 취하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했을 때 결국 욕되는 것은 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어쩌면 단 한번도 악하지 않았을 신을 추악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늘 인간이다. 오직 인간의 탐욕만이, 인간의 이기심만이 그런 힘을 가진다. 사라마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책에서 남긴 강렬한 비판은, 그런 인간을 향한 것이 아닐까.
신을 위하여
주제 사라마구가 '카인'에 녹여내는 의심은 사실 성경을 열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봤을 법한 것들이다. 욥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재산도, 자식도, 건강도 잃어야 헀던 걸까?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 중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아이들은 왜 구원받지 못했을까? 신약의 예수님은 늘 용서와 사랑을 말하는데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죄 지은 자들은 왜 늘 잔인하게 죽임당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죽지 못하는 운명을 얻음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 카인은 당당하게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님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따져 묻는다. 당신이 정말 우리를 사랑한다면 이럴 수 있는 거냐고. 전지전능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는데 이 세상에는 왜 전쟁이, 가난이, 미움과 악의가 존재하는 거냐고. 왜 당신은 그토록 추악한 것들을 창조하여 당신이 사랑한 피조물들을 괴롭히는 거냐고.
이 책의 신은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때로 신도 완벽하지 않다 인정하고, 자신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큰소리치고, 어떨 때에는 슬그머니 논쟁을 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카인이 만난 신이 정말 어떤 존재였는지, 선했는지 악했는지, 누구도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어쩌면 신은 그냥, 관망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채 조용히, 모두를 굽어보는 존재. 그 신이 자신에게 계시를 내렸다고, 혹은 자신을 버렸다고, 혹은 자신들만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그 인간이 파를 나누고 나와 다른 이를 미워하며 차별을 조장하고 때로는 피를 보고야 만다. 어쩌면 가장 선한 신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에게 공평한 신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때로는 기쁨을 누리고 때로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가만히 두는 신. 그 어떤 이도 신의 권력에 부당히 기대어 다른 이들을 착취하지 않도록 때로는 가차없이 쳐내는 신. '카인' 속 하나님은 그러지 못했지만 내가 믿는 신은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카인' 들여다보기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모든 사람이 노아의 자식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처음에는 정당한 의심과 수군거림, 또 그 이상의 것들이 넘쳐나겠지만, 모든 것을 평평하게 다듬는 위대한 존재인 시간이 곧 그것들을 다 쓸어버릴 것이고, 미래의 역사가들은 공을 들여 이 도시의 연대기에서 아벨, 또는 카인, 또는 이름이 뭐든 어떤 진흙 밟는 자에 대한 언급을 지워버릴 터였다. 의심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망각으로, 영원한 격리 상태로, 왕조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좋을 그 사건들의 림보로 보내버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역사적이지는 않을지 모르나, 그 역사가들이 얼마나 그릇되었는지, 또 어쩌면 얼마나 악의가 있었는지 보여준다. 카인은 실제로 존재했고, 노아의 부인에게서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 pp. 84-85
아예 안 오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오는 게 낫다, 천사는 대단한 진리라도 말하는 것처럼 으스대는 표정이었다. 바로 그 점이 틀린 거요, 아예 안 오는 것은 늦게 오는 것의 반대말이 아니오, 늦게 오는 것의 반대말은 너무 늦게 오는 거요, 카인이 반박했다. 천사가 중얼거렸다, 어이구 이런, 합리주의자로군.
- p. 96
오랜 세월 뒤 사람들은 거기에 운석이 떨어졌다고 말하게 된다. 천체, 우주의 허공을 떠도는 수많은 천체 가운데 하나가 떨어졌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바벨의 탑이었으며, 여호와가 자존심 때문에 완성을 허락하지 않은 탑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p. 105-106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우연히 아브라함이 여호와와 이야기를 했던 곳에서 잠깐 발을 멈추었고, 그때 카인이 말했다,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아브라함이 물었다. 불에 타버린 소돔과 다른 도시들에도 틀림없이 죄 없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여호와가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내게 하신 약속을 지켰겠지요.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카인이 물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죄가 없었을 텐데요. 맙소사, 아브라함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신음 같았다. 그래요, 노인장의 하나님일지는 모르나 그 사람들의 하나님은 아닌 거지요.
- p. 11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