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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

요코와 원숭이

 

 

 

 

가고시마·사쿠라지마·기리시마 등 삼도 신혼여행 코스를 돌아다닌 후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인 벳푸(別府)로 향했다.

둘이서 온천에 몸을 담그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방문하고 싶은 장소가 있었다. 그래서 벳푸에서는 1박만 하고 다음 날에는 다카사키 산으로 향했다.

다카사키 산은 야생 원숭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온천보다 더 기대되는 장소였다.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한 야생 원숭이가 벤치 등받이까지 다가와 모자와 코트 차림으로 앉아 있는 요코와 나란히 휴식을 취했다.

어딘가에 둘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는지 요코와 원숭이는 같은 각도로 얼굴을 돌려 한 지점을 바라봤다. 요코와 원숭이는 서로 닿을 듯 말 듯 한 가까운 거리에서 옆얼굴을 나란히 했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으면서도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요코와 원숭이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풍경처럼 비쳤다.
사람과 원숭이가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든 채 얼굴을 나란히 한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얼른 그 장면을 카메라로 클로즈업해 셔터를 눌렀다.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사진에 찍히는 것이 고역스럽다. 기계를 다루는 것도 서툴기 때문에 남의 사진을 잘 찍어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요코와 원숭이가 함께 찍힌 이 사진은 신혼여행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진이 됐다.

 

 

 


“내가 마치 원숭이랑 신혼여행을 간 것 같네요.”


세월이 흘러 규슈에서 남긴 단 한 장의 사진을 볼 때마다 요코의 군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원숭이 떼 속의 한 마리 같아요”, “나를 원숭이 취급해서 즐거웠나 봐요” 하는 투덜거림도 덤으로 들었다.
원망을 듣는 처지가 됐지만 원래 벳푸에 간 이유는 온천보다는 원숭이 구경이었기 때문에, 요코에게는 불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내겐 무척 마음에 드는 구도의 사진이었다.
나의 동물 애호는 그 후에도 쭉 이어져서 어느 나라에 가든 반드시 동물원에 들러야 했고, 어떨 때는 느닷없이 집 주변에 연못을 만들어 펭귄을 기르자고 말해서 그녀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여하튼 펭귄은 요코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올 때는 기나긴 열차 여행이었지만, 갈 때는 벳푸에서 고베까지 세토나이 해를 가로지르는 배 여행이었다. 로맨틱하게 여행을 끝내고 싶어서 배 안에 화장실이 딸린 개별실을 어렵사리 잡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늦은 밤에 그 화장실이 문제를 일으켰다. 
당시에는 아직 물에 녹는 휴지가 없어 변기가 자주 막히곤 했는데, 그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책임은 쌍방에게 동등하게 있었지만, 화장실을 뚫는 작업은 내 몫이었다. 팔을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뭉쳐 있는 화장지를 빼내기 시작했다.


 

 

 


“잠잘 시간도 없겠어요.”


요정은 살짝 어리광을 부리면서 푸념을 했다.
고베에 도착하자 부둣가에 지어져 있는 호텔이 마음에 들어 즉석에서 예정에 없던 2박을 더 했다.
나고야로 출발하기 전 요코는 집에 전화를 걸어 무사히 여행을 끝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때 그녀는 “정말로 최고의 여행이었어”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훗날 처남이 매부랑 얼마나 좋았으면 그러나 싶어 민망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듣고 쑥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_<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출간 전 연재 3회 계속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반생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첫 만남에서부터 소박하고도 별난 일상,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모습, 그리고 긴 이별을 준비하기까지의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편지.

힘들고 숨 가쁜 인생을 동행하는 사람, 떠올리면 미안하고 고마운 누군가가 당신 곁에도 있습니까?

 

저자_ 시로야마 사부로

일본 경제소설의 아버지. 해박한 지식과 통찰로 기업과 조직의 생리,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경제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전 소설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 표정, 사소한 행동까지 함께 살아온 날들을 꼼꼼하게 써내려가며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환기시켰다.

그러던 중 2007년에 세상을 떠났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그의 서재에서 발견한 둘째 딸 이노우에 기코가 편집부에 전달해 비로소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가 완성됐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어린 고백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렸고, 일본 TBS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대표작으로 《소설일본은행(小説日本銀行)》《황금의 나날(黄金の日日)》《관료들의 여름(官僚たちの夏)》《임원실 오후 3시(役員室午後三時)》《가격파괴(価格破壊)》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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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2017-08-0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나이 든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쓴 편지인가 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얼마나 행복한 날들이었을지..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한 순간들이니 더 소중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옛날이 그리워지곤 하는데, 저자는..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예문아카이브 2017-08-02 11:22   좋아요 0 | URL
추억은 마음속에 그리움을 남기곤 하지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