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감상을 끄적이기 전에, 이 책의 구매를 고려 중인 분께는 가능한 한 초판을 피하라는 말을 미리 해두고 싶다. 나는 북폴리오의 책이 좋다. 한손에 들어오는 단출한 장정이 맘에 들어 좋고, 가네시로 가츠키나 온다 리쿠같은 작가를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 생소한 작가라도 북폴리오의 선택을 받은 작가라면 어느 정도는 신뢰한다. 미우라 시온의 책을 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을 읽게 되어 나는 좀더 행복해졌다. 그런데… 오탈자가 너무 많았다. 근래 구매한 책 가운데 초판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탈자가 있었지만, 이 책은 진정 그 분야에서 최고였다.

 
단거리 달리기는 화려하다. 천분의 일초를 다투는 선수들의 폭발적인 힘과 리드미컬하게 오르내리는 온몸의 근육. 특히 결승선을 향해 가슴을 내미는 그들의 흔들리는 얼굴은 달리기神에게 선택받지 않고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에 비해 장거리 달리기는 관중들의 눈을 붙잡아두기 힘들다. 운동장에서 여러 경기가 진행될 때 장거리 주자들은 조용히, 마치 고립된 섬처럼 경기장의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 앉아 고통과 싸운다. 내 눈이 그들을 떠나 필드의 화려한 경기에 매료된 사이 그들은 어느새 몸의 한계를 넘어서고 정신의 한계 위에 올라서서 상체를 흔들며 턱을 치켜들고 마지막 호흡을 쥐어짜며 결승선을 향한다. 단거리 선수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세와는 달리 장거리 선수들의 마지막은 거의 언제나 괴로움이 함께 한다. 그들의 달리기에는 화려함이 없지만 결승선을 향해 힘겹게 몸을 옮기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무엇이 있다. 한계점을 넘어서서까지 다리를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달리기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간세 대학 육상부 기숙사인 지쿠세이소에 드디어 10명의 인원이 모였다. 주장이자 대학 4년 동안 하코네 역전 경주만을 꿈꿔왔던 기요세를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은 그곳이 육상부 기숙사인지도, 자신들이 육상부원인지도 모른 체 방세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이 낡은 아파트에 모여들었다. 열 번째이자 마지막 주민인, 달리기신에게 선택받은 가케루가 지쿠세이소에 들어온 순간, 기요세의 꿈은 잠을 벗고 현실이 되었다. 난데없는 역전 경주 출전 소식에 주민들은 당황하지만 기요세의 설득에 그들은 어느 새 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두 가지 멋진 세계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 하나는 달리기의 세계다. 직접 달려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영역까지 책을 통해 맛볼 수는 없겠지만, 달리기라는 움직임이 가진 매력만은 넘치도록 깨닫게 된다. 달리기가 아름다운 것은 결벽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 단순함 때문이다. 달리기 선수의 몸이 아름다운 것은 그 몸에 고독하게 달려온 그의 달리기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요세, 유키, 가케루, 니코짱, 쌍둥이, 킹, 무사, 왕자, 그리고 신동이 여느 달리기 선수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하코네 역전경주를 통해 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달리기라는 세계에서 손 내밀 수 있는 유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자가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멋진 세계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서로에 대한 믿음의 세계가 따뜻하게 그려지고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달리기를 보여주지만 속도를 말하지는 않는다. 속도가 아닌 강인함을 말한다. 장거리 선수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강하다'이다. 이 강인함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유대가 필요하다. 지쿠세이소의 주민들이 모두 빠른 선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한 선수였고 앞으로도 강한 선수로서 세상을 달릴 것이다. '강인함'이라는 찬사는 비단 장거리 선수만을 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이 달리기라면 우리 인생도 홀로 가는 길이다. 고독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고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어깨끈을 넘겨받을, 넘겨줄 누군가를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고독한 역주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동지를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인생이 장거리 달리기에 비유되듯 우리를 향한 최대의 찬사도 '강하다'가 될 것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달리는 내 다리가, 몸이, 강한 바람을 불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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