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콘 근크리트 - 전3권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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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금 폼을 잡으면서 거하게 얘기를 풀어보자면, 이것은 '순수'에 대한 이야기다. 순수한 아이들, 순수한 폭력, 순수한 피, 순수한 저항과 순수한 추억을 순수하게 그리워하는 이야기다. 뭐, 힘 빼고 얘기하면 지구별 일본국 어느 뒷골목에 있는 타카라쵸 지지리 궁상들의 너저분한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언제인지, 지구상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그저 지구별 일본국이라는 것만 확인 된-그곳에 타카라쵸라는 거리가 있다. 기괴한 모양의 건물들, 음산한 문구의 간판들, 신기한 오브제들, 툭툭 불거진 불편한 얼굴의 수많은 사람들로 채워진 이 동네는 생쥐라 불리는 야쿠자 스즈키에게 술, 담배, 여자, 도박, 돈벌이를 가르쳐준 곳이다. 스즈키의 똘마니 키무라에게는 스즈키라는 목표를 세우게 한 곳이다. 이 벅적지근한 동네에 야쿠자만 있을리 만무하다. 자신이 제복 경찰이었을 때는 그래도 따뜻한 동네였는데 지금은 확실히 싸늘해졌다는 낡아빠진 멘트를 심심하면 흘려보내는 형사 후지무라와 그 낡은 멘트에 "함부라비가 세운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동네란 건 냉랭했어요."라는 쿨한 대답을 준비하는 형사 사와다도 있다. 그리고 이 거리의 주인이 있다. 내 동네라고 당당하게 떠벌리는 쿠로와 그의 반쪽 시로다. 부모가 없는 시로와 쿠로는 타카라쵸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쿠로는 시로를 지키기 위해, 아니 시로와 함께 살아남기 위해 피와 폭력을 신앙으로 삼게 되었고, 시로는 그런 쿠로를 돌보는 것으로 신앙을 삼은 모양이다. 이렇게 고양이와 생쥐와 후줄그레한 형사는 나름 균형을 잡으며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었다, 타카라쵸에서.

그런데 언제부턴가 타카라쵸의 균형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경찰의 등쌀에 도시를 떠났던 스즈키가 돌아왔고, 시로는 외지인이 동네에 많이 나타난다고 중얼거린다. 어제까지 경품 초콜릿을 나눠주던 점장이 있던 파칭코는 '어린이의 성'이라는 리조트로 변했고, 리조트와 함께 타카라쵸를 내 도시로 만들겠다는 뱀이 나타났다.

폭력 마니아 쿠로와 시계 마니아 시로는 때려서 빼앗는다. 그걸로 살아가고 있다. 스즈키는 야쿠자다. 싸늘한 동네라면서도 잘만 살고 있는 후지무라와 합법적으로 총질을 하고 싶어 형사가 된 사와다는 정의의 사자가 아니다. 이런 그들이 어찌된 일인지 뱀의 등장 이후 꽤나 그럴싸하게, 사람 냄새 팍팍 풍기며 다가온다. 덧붙여 어설픈 아마추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뱀이 나타나기 전까지 잔혹하고 뻔뻔하고 차가운 프로처럼 보이던 이들이 말이다. 그것은 이들이 변하는 타카라쵸를 붙잡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변화에 저항하는 그들 앞에 놓인 길은 순탄치가 않았다. 그 길은 피 흘리고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으스러져야 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나의 타카라쵸'를 지키기 위해 그 길을 가겠다는 그들은 더 이상 잔인하지도 뻔뻔하지도 믿음직스런 프로도 아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저항하는 인간은 늘 문제를 떠안게 될 뿐이다. 그러나 그 변화란 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로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니 가끔은 저항이 필요하다. 당연히 고통이라든가 고뇌라든가 하는 문젯거리가 옵션으로 따른다. 저항은 문제를 낳지만 때때로 새로운 답을 펼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타카라쵸 지지리 궁상들의 저항이 답을 펼치진 못했다. 그들은 사라지거나 떠나야 했고, 남아있는 자는 그저 지나간 봄날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타카라쵸는 건재하다. 그것이 타카라쵸의 색깔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또 누군가가 그 타카라쵸를 다시 다른 색으로 물들이려고 나설 것이고. 그렇게 세상은 변해간다.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생각해보면 변하는 세상은 결국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 적응해 살다보면 결국 그게 그것인 세상이 되어버리니까. 그럼 결국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나는 한번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재주 없음을 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화를 즐겨 읽음에도 그 직업을 동경해본 적은 없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철콘 근크리트』를 읽으면서 마츠모토 타이요가, 그의 재능이 죽을 만큼-그래그래 과장법 좀 써봤다-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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