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 정원 9

                              -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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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1-2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력이 번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행으로 이어지는 멋진 시이다. 익숙하게 쓱쓱 갈아서 푹 적시고 그려나가는 수묵화의 먹선처럼 감각이 서서히 번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