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 박 형 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안도현 엮음. 나무생각.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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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1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2년 정보여고에서 만든 교지를 뒤적이다 발견. 그때 이 시가 너무 좋아서 교지 젤 뒤 빈 공간에 이시를 넣었었군. 손모현 샘이 그린 그림 밑에다가... '모든 살아있음의 제 자리'와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이 구절이 너무 좋아서.. 지금 다시 읽어도 참 좋다.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해콩 2004-12-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샀다. 1994년 창자과 비평사. 꼭 10년 전이다. 부안에서 농사도 짓고 글도 짓는다는 시인은 후기에서 "난생 처음 시집을 엮"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지, 쌀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