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읽다가 아무래도 바쇼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3분의 1쯤 읽었을 때였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은 마츠오 바쇼의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영어판 제목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제목만 인용했나 싶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바쇼를 비롯해 잇사, 부손 등 일본 하이쿠 대가들은 물론 그들의 작품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심지어 작품 속에서 나카무라와 고토 등 일본군들은 바쇼의 하이쿠가 일본 정신의 상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철도를 위하여. 고타 대령이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일본을 위하여. 나카무라가 자신의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천황 폐화를 위하여! 고타 대령이 말했다.
바쇼를 위하여! 나카무라가 말했다.
잇사!
부손! (리차드 플래너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162쪽)

서로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하이쿠를 읊어주었다. 시 자체보다는 시에 대한 서로의 감수성이, 시에 깃듯 천재성보다는 시를 이해하는 서로의 지혜가 두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자신이 시를 안다는 사실 보다는 시가 자신들과 일본 정신의 고귀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그 일본 정신은 이제 곧 철로를 따라 매일 버마까지 이동할 것이고, 버마에서부터 인도까지 나아갈 것이며, 거기에서 다시 세계를 정복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본 정신이 바로 철로고 철로가 바로 일본 정신인 거야. 나카무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바쇼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더 넓은 세상에 알게 될, 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인 거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163쪽)


이 구절을 읽노라니 바쇼의『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이쿠 책을 이따금 보기는 했지만, 바쇼만의 작품이 실린, 게다가 기행문이라는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은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국내에서는 벌써 10여 년 전에 바쇼의 기행집이 전 3권으로 출간되었더라. 1권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제외하고 2, 3권은 품절이었다. 도서관에서 다행히 세 권 모두 빌릴 수 있었다. 느긋하게 세 권의 책들을 읽으며 조금씩 바쇼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왜, 하이쿠라는 특별한 장르에 서양인들이 그토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동양인인 나조차도 바쇼의 하이쿠에서 이토록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저 서구인의 눈에는 얼마나 신비로워 보였을까.

바쇼가 살았던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세웠던 에도 막부 초창기의 혼란스러움이 진정되고 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인 계급 조닌(町人)들의 문화가 꽃피기 시작할 때였다. 철저하게 세속적인 조닌 문화의 쾌락주의는 무사 문화의 금욕적 윤리와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감각적이면서도 동시에 금욕적이기도 했던 시대에 바쇼는 세상 흐름의 어느 것과도 전혀 다른 삶을 지향한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 때 오히려 그는 도시를 떠나 멀고 먼 변방으로 고된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일본 동북부 지역 ‘오쿠’까지 2,4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걸어서….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온갖 자연과 그 속에서 떠오르는 감흥을 5ㆍ7ㆍ5 음률을 가진 17자의 정형시 하이쿠로 읊는다.



가는 봄이여
새 울고 물고기의
눈에는 눈물.


바쇼가 처음 여행길에 오를 때 읊은 하이쿠다. 이 하이쿠와 함께 바쇼는 ‘이것을 이번 여행 하이쿠의 필두로 하여 첫발을 내딛었으나, 헤어짐의 서운함에 발길은 더디기만 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길, 바쿠의 하이쿠와 함께 사계절의 흐름과 여행지의 변화를 느낀다. 나 또한 바쇼와 그의 제자 소라와 함께 일본 곳곳을 떠도는 느낌이다.



조용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오쿠로 가는 작은 길』, 92쪽)

가을은 시원타
손에 손에 들고 벗기세
참외와 가지 (『오쿠로 가는 작은 길』, 123쪽)

대합조개가
두 몸으로 헤어져
가는 가을이어라 (『오쿠로 가는 작은 길』,148쪽)


세월은 멈추는 일 없는 영원한 여행객이고, 오고 가는 해 또한 나그네이다. 사공이 되어 배 위에서 평생을 보내거나 마부가 되어 말 머리를 붙잡은 채 노경을 맞이하는 사람은, 그날그날이 여행이기에 여행을 거처로 삼는다. 옛 선인들 중에도 많은 풍류인들이 여행길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오쿠로 가는 작은 길』, 16쪽)


바쇼는 애초부터 ‘변방으로의 방랑, 무상한 속세를 떠나 내 몸을 버릴 각오로 떠나왔으니, 설령 여행 중에 죽을지라도 그 또한 천명’(『오쿠로 가는 작은 길』, 55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흔한 살부터 10년 동안 여행과 은둔을 거듭하면서 살다가 쉰하나에 여행지였던 오사카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은 시기적으로 보면 마지막에 해당한다. 이 기행집 전 3권 가운데 가장 끝으로 나왔어야 순서가 맞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첫 번째에 놓은 까닭은 이 책이 바쇼의 하이쿠 세계를 집대성한 완결작이자, 대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쿠에 몸을 두는 사람은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친구 삼아, 그것을 시로 표현해 간다. 보는 것 모두 꽃이 아닌 것이 없으며, 생각하는 것 모두 달이 아닌 것이 없다. 그 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야만인과 다를 바 없다. 또한 그것을 보는 마음이 꽃이 아니라면 새나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야만인이나 새, 짐승의 지경을 벗어나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고 조화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리라. (『보이는 건 모두가 꽃이요』, 16쪽)


2권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와 3권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에서도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친구’ 삼은 바쇼의 방랑과 그 정서를 가득 담은 하이쿠들은 아름답게 빛난다.




들판의 해골로
뒹굴리라 마음에 찬바람
살 에는 몸

가을이 십 년
돌아서서 에도를
고향이라네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 16쪽)

말 위에서 잠 깨 보니
꿈결인 듯 먼 달 아래
차 끓는 연기런가.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 24쪽)

산길 넘어가다가
무엇일까 그윽해라
조그만 제비꽃 (『산도화 흩날리는 삿갓은 누구인가』, 56쪽)

여행에 지쳐
숙소 빌릴 시간이여
화사한 등꽃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 48쪽)

문어잡이 항아리여
덧없는 꿈을 꾸는
여름밤의 달 (『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 72쪽)

죽지도 않은
나그네 길의 끝이여
가을 저물녘(『보이는 것 모두가 꽃이요』, 147쪽)


‘보는 것 모두 꽃’이며 ‘생각하는 것 모두 달’이었던 까닭은 그것을 보는 바쇼의 마음이 바로 ‘꽃’이었기 때문이리라. 속세를 벗어난 방랑의 길, 인생에 달관하여 유유자적하며 그 무엇에도 얽매임 없이 살아간 자유로운 영혼의 기록에 몇 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쇼의 하이쿠를 읊조리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이 책들에는 바쇼가 그린 그림도 함께 실려 있어서 여행길의 정취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1권을 제외하고는 품절된 책들이라 구하기 어렵지만 책의 만듦새가 훌륭해서 탐이 나기도 한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때문에 읽기 시작한 바쇼의 하이쿠들- 그런데 그 향기에 오히려 더 흠뻑 빠지고 말았다. ‘나카무라’와 ‘고타’가 일본 정신 운운하면서 바쇼의 하이쿠를 읊조리는 것이 문득 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아름다운 바쇼의 하이쿠, 속세를 벗어나 자연 속을 떠돌던 옛 시인의 하이쿠를 읊지만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전쟁터. 침략과 살생이 자행되는 어쩌면 가장 저열한 인간의 욕망이 들끓는 전쟁터가 아닌가. 그 극명한 대비를 위해 바쇼의 하이쿠를 인용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보면서 다시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펼친다. 마치 꿈결 같던 긴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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