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해 전 이스탄불에 다녀온 적이 있다. 정확히는 터키 곳곳이었다. 한 달에서 며칠 모자라는 시간. 어찌 보면 길지만 막상 그곳에서는 짧게만 느껴지던 그 기간 동안 오로지 터키만을 여행했다. 이스탄불은 여행이 시작된 도시이자 마지막으로 들른 도시였다. 그때 만났던 터키의 모든 도시들이 아름다웠지만, 이스탄불이 던져준 매력은 그 어떤 도시도 넘어설 수가 없었다. 그 여행은 내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 중 하나가 되었고 그 까닭은 거의 이스탄불 때문이다. 내게 터키는 곧 이스탄불이었다. 


이스탄불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기독교와 이슬람문화가 공존한다는 그 흔한, 수없이 들었던 말을 직접 체험하니 놀랄 만큼 매력적이었다. 다채로운 인종에 자유로운 사람들, 꿈틀거리던 생의 기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해 보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는 도시. 단 며칠 동안 머물렀음에도 홀딱 반해버린 그곳- 이스탄불을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읽는 일은 이스탄불을, 터키를 추억하는 일과 같다. 터키를 다녀온 뒤로 파묵의 작품을 읽노라면 자연스럽게 그때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도시 곳곳을 떠올리게 된다.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 에세이 <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은 이스탄불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하는 내게 가장 좋은 책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제 어쩌면 그 자리를 <내 마음의 낯섦>에게 살짝 내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한 편은 에세이로, 또 다른 한 편은 소설로 이스탄불이라는 놀라운 도시를 그려내고 있으니, 그냥 나란히 둘까?


오르한 파묵의 <내 마음의 낯섦>을 펼쳐서 몇 장 넘기지 않고도 나는 그해 여름 곳곳을 누비던 이스탄불을 떠올렸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탁심 거리 등등. 터키에 다시 가고 싶었던 소망이 얼마쯤은 이뤄진 것도 같았다. <내 마음의 낯섦>의 주인공은 바로 ‘이스탄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물론 ‘메블루트’라는 가난하고 정직하지만 소심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메블루트 못지않게, 이 작품의 숨은 주인공은 신비롭고 열정적인 도시 ‘이스탄불’임을 누구나 알 수 있으리라. 


라크를 홀짝이고 아이란을 마시며, 되네르 케밥과 시쉬 케밥을 먹고…. 이런 기억들이 메블루트가 살고 사랑했던 도시 이스탄불과 함께 되살아난다. 메블루트의 이스탄불은 어쩌면 내가 찾았던 이스탄불과 조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메블루트는 1969년 늦여름에 이스탄불로 이주해 2012년, 이스탄불의 도시화가 거의 완성되는 그 기간 동안 그곳에서 살아간다. 내가 이스탄불을 찾았던 해는 2011년이니 메블루트에게는 낯설기 만한 현대화된 이스탄불을 만난 셈이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보오자아!’를 외치는 메블루트를 스쳐지나갔던 것은 아닐까?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긴 내가 거닐던 곳들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였음이 틀림없을 테니 메블루트, 또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오스만 스타일, 유럽 스타일 노래를 부르던 유흥 장소들은 폐쇄되고, 그 자리에 시쉬 케밥과 아다나 케밥을 먹고 라크를 마시는 시끄러운 식당들이 생겨났다. 배를 튕기면서 춤을 추며 즐기는 젊은이들은 보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메블루트는 이스틱랄 대로 근처에는 들르지도 않았다. (36쪽)


가난을 벗어나고자 아버지와 함께 무작정 이스탄불로 온 열두 살 소년 메블루트. 아버지와 아들은 1960년대 후반 이스탄불 골목 곳곳을 누비며 터키전통음료인 요구르트와 보자를 팔지만 가난을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터키를 구제하는 것은 밥장수, 행상, 되네르 케밥 장수들이 아니라 학문이다.”(96쪽) 라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공부로 가난을 벗어나보고자 하지만 학문에도 그다지 소질은 없다. 아니, 먹고 살기 바쁜 그에게 공부는 어쩌면 처음부터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사촌형의 결혼식장에서 반한 소녀에게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3년 동안 줄기차게 연애편지를 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납치해 결혼에 성공한다. 그런데 그 결혼은 정말 성공일까? <내 마음의 낯섦>은 메블루트라는 평범한 남자와 그의 대가족, 그리고 그들의 삶을 중심으로 1960년대 끝 무렵부터 2012년까지 약 4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이스탄불의 변화와 발전, 더 나아가 터키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나간다.


<내 마음의 낯섦>속 그들의 삶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이스탄불의 도시화와 그 도시화로 말미암은 빈민들 삶의 모습이 이 땅, 즉 서울의 도시화와 그 안에서 살아간 수많은 소시민들의 삶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터키전통음료인 ‘보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골목 곳곳을 누비며 생계를 이어나간 메블루트의 모습에서 어느 추운 겨울밤 골목에서 들리던 ‘찹쌀떡 사려~’를 떠올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도시는 현대화가 되어 고층빌딩이 늘어서고 생활 시설이 편리해지고 누군가는 벼락부자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수많은 평범한 ‘메블루트’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나아지거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미로와도 같은 이스탄불 골목처럼 헤매게 된다. 그래도 메블루트는 그 하루를 날마다 성실히 살아간다. 그것이 인생이기에.


그럼에도 문득 어떤 날은 말 못할 정도로 낯선 느낌을 받기도 한다. 사십년이 넘도록 이스탄불에서 살아도 어떤 때에는 이 도시가, 자기의 삶이 낯설기만 한 것이다. ‘처음 삼십오 년은 매년 해를 더할수록 도시에 대한 예속감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었다. 최근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스탄불이 생소해졌다. 막을 수 없는 홍수처럼 도시에 밀려드는 수백만 명의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새로운 집들, 고층 건물들, 쇼핑센터들 때문일까? (623쪽)’ 이렇게 반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영원한 이방인처럼 ‘마음의 낯섦’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런 이스탄불을 떠나면 그는 또 그 도시를 그리워한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잊고 위안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이 ‘쓸데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곧 깨닫는다. 고향에는 더 이상 ‘밥벌이가 없었고’, 그곳에서 그는 ‘그저 손님일 뿐’이었다. 그는 ‘이스탄불로 돌아오고 싶었다. 메블루트의 삶, 분노, 행복, 라이하 그 모든 것들이 이스탄불에 있었’(483쪽)기 때문이다.


어디 메블루트만 그러할까, 세계 곳곳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탄불과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간다. 나 또한 서울에서 태어나 아직까지 이곳을 떠난 다른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동네는 조금씩 바뀔지언정 ‘서울’이라는 이 거대한 도시를 떠나지는 못한 것이다. 그 사이 서울도 눈부시게 변화했다. 오늘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내가 어릴 적 뛰놀던 동네나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온 동네들은 문득 지나다 보면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보다도 더한 고층건물들이 늘어섰다. 때로는 이 소란스러움과 혼잡함, 번잡함, 화려함이 싫어 어느 한적한 곳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있을까? 나의 현재까지의 모든 삶이 서울이라는 도시 곳곳, 골목골목 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메블루트가 살고 사랑한 이스탄불처럼 말이다.


누군가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태어나고 숨 쉬고 먹고 사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픔과 고통을 겪고 등등 모든 일을 함께한 그 도시와 이뤄지고 있음을 이 작품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도시에서의 삶을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고,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도 버티게 해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이다. <내 마음의 낯섦>에서 단순하지만 변함없는 이러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사람은 주인공 메블루트도 아닌, 어느 평범한 이스탄불 여인이다.


“저 천 만 명의 사람들을 이스탄불에 불러들인 것은 생계이고, 이득이고, 고지서이고, 이자라는 것을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 거예요. 하지만 이 끔찍하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사람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 바로 사랑이에요.” (453쪽)


메블루트는 큰 부를 얻지도 못하고 사회적으로 이렇다 할 어떤 성공을 이루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그의 기나긴 인생을 지켜보노라면 이 소심하고 나약한 남자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과 가정을 일구고,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에는 어떤 숭고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내 마음속이 왠지 낯설어. 이 세상에 도무지 나 혼자인 것 같아.” 말하는 메블루트. 삶에서 문득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 고독감, 상실감과 같은 ‘낯섦’ 앞에 그의 아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당신 곁에 있으니 다시는 그런 생각 들지 않을 거야.”(262쪽). 


비록 그의 사랑은 얼굴도 모른 채 시작되어 어떤 ‘혼동’과 ‘혼란’을 겪고, 그의 인생 또한 때로는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 끝없이 마음속에 ‘낯선 느낌’을 불러오지만, 그는 주어진 인생을, 사랑을 진실하게 살아간다. 그 평범하지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자 애쓴 그의 삶은 ‘이스탄불’과 언제나 함께였다. 메블루트가 이스탄불이라는 혼동과 변화의 도시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었음은 바로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마음의 낯섦조차도 모두 껴안고 보듬을 수 있는 진실한 사랑.


언젠가는 터키에 한 번 더 가볼 생각이다. 이스탄불에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에는 꼭 보자 맛을 봐야지. 운이 정말 좋아서 이스탄불 어느 골목에서 메블루트를 닮은 이에게 보자 한 잔을 사 마실 수 있다면, 그가 외치는 ‘보오자아!’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