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나쓰메 소세키.마사오카 시키 지음, 박지영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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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가을밤이라 그랬을까, 오랜만에 빗소리가 들리는 밤이라 그랬을까. 그 밤,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울컥 무언가 치밀어 오르더니 끝내 눈물이 흘렀다. 죽음을 앞둔 시키의 마지막 편지와 그 편지를 받기 전에 시키에게 보낸 소세키의 편지. 모든 것을 알게 된 뒤, 그러니까 시키의 부고를 들은 다음 그 소식을 전해준 이에게 보낸 담담한 소세키의 답신을 읽을 때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책을 덮고 나서도 베개가 젖을 만큼 울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편지들을 떠올리니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 모두가 시키와 소세키의 편지를 가을밤에 읽은 탓일까.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다섯. 13년 가까이 그 누구보다 가까웠을, 그 어떤 이보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했을 친구. 그런 이의 죽음을, 그 소식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도저히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이지만 그 먹먹함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눈물이 흐른다. 소세키가 너무나도 담담하게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였기에 슬픔은 더욱 크다.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으로 유학 떠날 때부터 ‘살아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니 시키의 죽음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그 담담한, 모든 것을 체념하고 달관한 듯한 문장에서 눈물은 솟구친다. 시키와 소세키- 이 두 사람의 우정은 이렇게 나를 울린다.

나는 인간관계에 큰 뜻이 없다. 어릴 때부터 혼자서도 잘 놀았고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친구들이 먼저 다가왔기에 친구라는 존재에 목마른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 걸까?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조금만 보여도 참 쉽사리 친구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후회한 적도 딱히 없다. 이제 내 주위에 남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열손가락? 아니 그보다도 한참 적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에, 그 관계에 충분히 만족한다. 지금의 우정이 오래 이어진다면 바랄 게 없지만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러면 또 그러려니 하고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덤덤한데도 그 친구들이 죽는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프다. 언젠가 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그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이게 다 가을 탓이다......

시키와 소세키의 우정이 딱히 부럽지는 않았다. 나에게도 어언 10년 넘도록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으며 시키와 소세키가 그랬듯 나와 내 친구들도 취미가 비슷해서 가까워졌다. 만나면 어디서도 잘 하지 않는, 아니 할 수 없는 문학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이 책 저 책 묻는다. 물론 시키와 소세키가 주고받은 편지처럼 품격 넘치는 대화는 아니지만..... 마사오카 시키, 나쓰메 소세키- 한 사람은 시인이자 수필가로 또 한 사람은 소설가로 일본 문학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니, 그 빼어난 문장으로 주고받은 편지들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리고 그 관계 또한 문장만큼이나 아름답다.

1889년 스물두 살 동갑내기로 처음 만난 그들은 관심 있는 공연이나 문학(주로 하이쿠) 이야기로 가까워진다. 서로 주고받은 편지 속에서 그 대화들은 해가 갈수록 한결 풍요롭고 해박하며 윤택해진다. 친구 사이이니 때로는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 조차도 품위를 잃지 않고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이 늘 그 바탕에 흐른다. 때로는 날카로운 설전이 오가기도 한다. 서로 문학적 가치관 차이에서는 뜨끔할 정도로 훈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비판과 질타 설전이 매섭다. 하지만 절대로 상대를 ‘비난’하거나 그로 말미암아 관계가 변질되지는 않는다. 가벼운 인간관계에 익숙한 오늘날엔 참 생소한 풍경이리라.

두 사람의 편지를 읽다 보면 소세키가 시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사오카 시키는 소세키에게 하이쿠 첨삭지도를 해준 스승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의미에서는 소세키가 문단에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했다. 아니 이런 시키의 혜택을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이랴, 어린 시절부터 딱히 의지할 곳 없던 고독한 나쓰메 소세키에게 정신적 뿌리가 되어준 것만으로도 시키는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둘은 함께 있기보다 떨어져 있던 때가 더 많았다. 아주 가끔 은근하게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한다. ‘달은 동쪽에/ 자네는 지금쯤엔/ 자고 있을까’ 소세키는 잠못 드는 밤에 시키를 그리워하며 시키는 시키대로 ‘언제나 대형이 도쿄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도 지나치지 않아서 향기롭다. 편지를 보면 마사오카 시키는 소세키에 비해 좀 더 발랄하고 짓궂은 것 같다.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예민한 성정은 소세키 못지않다. 소세키는 또 소세키대로 얼마나 덤덤한지. 자기 결혼 소식조차도 참 무덤덤하게 전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다면 기생집에서 일을 해서라도 시키의 학비를 대주고 싶다고 한다. 친구를 생각하는 그 마음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이 면상 때문에 안 되겠다’는 부분에서는 크게 웃고 만다. 아니, 나쓰메 소세키, 친구에게는 이런 농담도 할 줄 아네?!

사람이 만든 지위란 본디 허영이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다는 사정도 아니니, 목숨을 소중히 여겨 여유롭게 공부하는 것이 옳다고 보네. 학자금상의 곤란에 대해서도 그러리라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 특별히 말씀드릴 묘안이 없구먼, 아무리 내가 기계로 된 거북 새끼를 발명하는 재능이 있어도, 열린 입에 팥떡을 던져 넣는 법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것만은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네.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잠깐 청루(靑樓)에 몸을 담아 그대의 학비를 돕는다는 식의 별스러운 일도 가능할 테지만...., 그것도 이 면상으로는 어렵겠지. (104쪽 - 1891년 24살 소세키가 시키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를 하나씩 읽어갈 때마다 세월이 흐르고 그들도 조금씩 나이 들어간다. 정신적으로도 성장하고 우정도 더욱 깊어간다. 문학적으로도 서로 조금씩은 진일보한다. 소세키가 결혼도 하고 영국 유학도 떠나는 사이 안타깝게도 시키의 병세는 점점 더 나빠져만 간다. 서양에서 지내는 생활이 궁금한 시키를 위해 소세키가 영국 유학 시절을 상세하게 기록한 편지에서도 자못 친구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키가 병으로 몹시 고통 받을 때도 소세키는 건강을 걱정하는 염려를 담은 편지보다도 그저 묵묵히 시키를 위해 유학 생활을 꼼꼼히 기록해서 보낸다. 값싼 위로의 말보다도 친구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말없이 행하는 이토록 진중한 우정이라니.....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살던 문학청년들이 주고받은 편지. 그 참된 우정의 기록은 그들이 주고받은 하이쿠처럼 은은하게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수세미꽃 피고

객담에 목이 막힌
부처로구나

객담이 한 말
수세미물도
이제 소용없어라

엊그저께의
수세미물도
이젠 그만 받았네.

-죽음을 앞둔 시키가 마지막으로 남긴 하이쿠




쓰쓰소데로
따라가지도 못한
가을날 운구

피워서 올릴
향불도 하나 없이
저무는 가을

연무 자욱한
도시에 떠도는가
그림자처럼

귀뚜리 소리
옛일을 그리면서
돌아가야지

부르지 않은
억새밭에 혼자서
돌아온 사람

-시키의 부고를 들은 뒤 지은 소세키의 하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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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6: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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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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