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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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친구 있어요?” “결혼은 언제 할 거죠? 결혼하면 회사는 어떻게 할 거죠?” 이 땅에 사는 젊은 여성들 가운데 이런 질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없을 거라고 100% 확신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저곳 면접을 보러 다닐 때 언제나 듣던 말 중 하나가 ‘결혼’과 관련한 질문들이었다. 스물넷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고,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저런 질문의 부당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다들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이려니 싶었다.

그 사이 내가 컸는지, 아니, 이 사회의 모순을 너무도 뼈저리게 보고 듣고 겪었는지, 저런 질문의 부당함에 화를 내고 분노하다가 이제는 그 분노조차 덧없이 느껴진다. 해탈의 경지랄까? 남자들 가운데 입사 면접 때 저런 질문을 받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남자들에게 결혼은 당연한 것일 테고, 결혼을 하더라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더 당연하리라. 아니 결혼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때문에 이 땅의 남자들 중 면접 현장에서 저런 질문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아들을 안 낳은 게 참 다행이다 싶어.” 언젠가 엄마가 우리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딸만 넷인 우리 집에서 아들을 못 낳는다고 그토록 구박받고 어린 내 눈엔 거의 학대와도 같은 대접을 받았던 우리 엄마가, 다 큰 우리 앞에서 이런 고백을 털어놨을 때는 참 뜻밖이었다. “왜?” “아들을 낳았으면 나도 이상한 엄마가 됐을 거 같아. 아들, 아들 하면서 니들을 얼마나 차별했겠니? 안 그런다 해도 잘 안됐을 거야. 에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집에는 아들이 없는 게 다행이야. 그 아들은 할머니 때문에 얼마나 개차반 왕자님이 됐을까? 상상만으로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네가 아들이었어야 하는데.” 가끔 엄마는 또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내 동생들은 태어나지 못했겠지. 게다가 나는 또 얼마나 내게 주어진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처음부터 그것들은 모두 내게 주어졌어야만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몫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봐, 그걸 여자들이 빼앗아 갈까봐 얼마나 전전긍긍하면서 살았을까? 이 땅의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이..... 사실, 빼앗는 것도 아니고 빼앗기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도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에는 이런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요즘 이 책이 그토록 널리 읽히는 이유는 뭘까 궁금해서 읽었다. 80년대에 태어나 이제 서른을 넘긴 여자들의 보편적인 삶이 담긴 이야기겠지 싶었다. ‘김지영’이라는 아주 흔한 그 이름처럼 새롭지도 않고 색다를 것도 없는, 그런 한국 여자로서의 삶. 사실 정말로 그랬다. 그런데 그 뻔한 삶을 바라보면서, 읽어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분노하고 화내고 기가 막혔다. 너무나도 기가차서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한숨을 푹푹 쉬기도 하고, 심지어 책을 읽다가 욕까지 나왔다.

누군가가 <82년생 김지영>의 줄거리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여자라면, “그냥 당신의 삶이 이 책의 줄거리.” 라고.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남자라면 “당신 옆 여자들의 삶이 이 책의 줄거리.”라고. 그런데 이런 말을 덧붙일 것 같다. 아마 당신은 평생 가도 모를 거라고. 그런 삶을.

‘지영’씨는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 책을 다 읽었을 때, 긴 한숨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보부아르가 말했던가. ‘여자는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이라고. 82년생 김지영은 태어나기는 했지만 태어난 게 아니라, 82년생 김지영, 그러니까 한국 여성 '김지영'으로 서서히 만들어진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과정의 추적과도 같다. 그리고 그 생생한 과정의 기록이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또다른 ‘지영’씨들의 전폭적인 공감을 얻은 게 아닐까.

여자 ‘김지영’은 먼저 집안에서부터 만들어진다. 다섯 살 터울 남동생을 둔 지영은 아들, 아들 하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자연스레 ‘여자’이자 ‘딸’로서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그런데도 그것이 워낙 뿌리 깊고 은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합리하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다. ‘동생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가끔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누나니까 양보하는 거고, 성별이 같은 언니와 물건을 공유하는 거라고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하다. 더군다나 ‘누나들이 샘도 없고, 동생을 잘 봐준다고 항상 칭찬했는데, 자꾸 칭찬을 받으니까 정말 샘을 낼 수도 없어’진다.(25~26쪽) ‘원래 그랬으니까. 누나니까’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여자 ‘김지영’ 만들기는 학교에서 더 심화된다. 밥을 먹는 것도 남자 아이들이 먼저이고, 반장은 늘 남자가 해야만 한다. 더더군다나 김지영 씨는 못된 남자 짝꿍이 그토록 괴롭혀서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41쪽) 하-아-아-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는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어떤 남자들은 정말이지 여자를 괴롭히는 게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 버릇을 못 고친다. 스토커짓도 모자라서 여자 친구 또는 아내를 폭력적으로 괴롭히다가 죽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온갖 불평등한 모순을 겪으면서 소녀들은,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간다.(65쪽)

그렇게 자라서 대학을 가고 사회인이 되지만 ‘여자’만들기는 더욱 공고화될 뿐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학 동아리에서도 여자들은 그저 '있어주기'만 하면 고마운 화분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 화분은 결코 회장이나 우두머리는 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화분은 때로는 누군가가 씹다버린 ‘껌’이 되기도 한다. 똑똑해서도 안 되고 잘나서도 안 된다. 그러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니까. 제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도 좋은 자리는 언제나 남자들의 몫이다. 심지어 김지영 씨처럼 일 잘하는 여자들에게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맡긴 것도 그녀들을 믿어서가 아니다. ‘오래 남아 할 일이 많은 남자들에게 굳이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을 시키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런 커리어마저도 출산과 육아와 함께 날아가 버리고, 그녀는 어느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이들의 눈에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는 한가로운 맘충'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김지영 씨는 얼굴이 붉어져 황급히 그 자리를 뜬다. 

누가 이렇게 김지영 씨를 ‘인간’이 아닌 ‘여자’, 김지영 씨로 만들어 간 것일까? 단지 성별이 다른 남자들만의 잘못일까? 지영의 할머니도 엄마도 모두 여자다. 지영을 가르쳤던 선생님 중에도 틀림없이 여 선생님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로서의 역할을 내면화하는 데는 남자뿐만이 아니라 스스로 이 사회의 모순을 뼈저리게 겪고 자랐을 또 다른 ‘지영 씨’들이 크게 한몫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은 읽을수록 답답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필이면 김지영 씨는 딸을 낳는다. 그 딸은 김지영 씨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지영의 남편과 지영을 상담했던 의사를 보면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영의 남편도, 지영의 담당 의사도 그녀를 보면서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하지만, 어쩐지 그 이해는 그저 멀찍이서 보는 방관자의 태도와도 같다. 그러니까 지영의 남편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아내에게 ‘그 일이 정말 네가 하고 싶은 일’이냐고 묻는 것이다.

김지영 씨의 담당 의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학 영재였으며 뛰어난 의사였던 자신의 아내가 아이 때문에 집안에 눌러 앉아 그저 초등학교 수학문제를 푸는 데 재미를 붙인 모습을 보며 불만을 품는다. 아내는 지금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오직 수학문제 밖에 없는데도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자기 아내가 초등 수학문제 풀이 정도가 아닌,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길 바란다. 지영 씨와 자기의 아내가 그런 일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절대 모르는 것이다. 지영 씨와 자신의 아내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면서도, 출산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 대신 후임으로 미혼 여성을 뽑겠다는 그. 그런 그들이 이 사회에 계속 존재할 터인데, 과연 지영 씨와 그의 아내가 다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여자가 아닌,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기 존재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문학을, 소설을 왜 읽을까? 문학을 읽음으로써 공감과 위로를 받기도 하고 잘 몰랐던 사실이나 진실을 깨닫기도 한다. 사회 모순을 담고 그런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들을 읽음으로써 어떤 변화의 바람과 작은 희망을 기대하기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이 줄 수 있는 이런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공감’ 부분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리라. 그런데 그 공감은 어쩐지 쓸쓸하다. 그런 공감을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사회라면 어떨까? 마치 김지영 씨의 이야기가 화석처럼 되어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 와, 어쩜! 이런 시절도 있었나봐! 완전 드라마 같은 이야기 아니야? 이게 말이 돼? 말도 안 돼. 비현실적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모든 여자들이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가 자기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부디, 언젠가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62년생 김지영 씨도 72년생 김지영 씨도 82년생 김지영 씨도 92년생 김지영 씨도 02년생 김지영 씨도 12년생 김지영 씨도 그 모두가 이건 내 이야기야! 하고 공감하지 않을, 그런 사회- <82년생 김지영> 이 책이 전하는 뼈아픈 진실, 그 불평부당한 모순을 더 많은 이들이 읽고 느끼고 깨닫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책을 출발점으로 삼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길 바라본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오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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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 2017-09-0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한가롭게 커피마시는 사람 = 맘충?

잠자냥 2017-09-06 09:32   좋아요 1 | URL
<82년생 김지영> 이 작품 속에서 그렇게 나옵니다. 제 표현이 아니고요. ^^ (충격적이죠? 정확히 말하자면 김지영 씨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QUARTZ 2017-09-0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제가 오해했네요 죄송합니다. 리뷰를 재밌게 잘 읽고 있었는 데 불편한 표현이 있어서 댓글 달았습니다. 저 표현 때문에 읽고싶었던 마음이 사라졌었거든요.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ㅎ 감사합니다

잠자냥 2017-09-06 13:02   좋아요 0 | URL
네, 아닙니다. 제가 인용을 확실히 구분하지 않고 오해되게 쓴 부분도 있네요. 하마터면 제 글 때문에 이 책을 못 읽어보실 뻔했군요!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오해될 것 같은 부분은 좀 수정해야겠네요- (수정했습니다. ^^;;;;)

조현우 2019-08-1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로써 책을 무척 재밌게 읽었었습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봐었고 저희 어머니의 삶이 오버랩되어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책 속의 답답한 에필로그보다도요. 다만 소설, 문학으로 볼때와 현실을 너무 깊이 연관시키시는것 같아 안타깝네요. 이미 사회가 깊게 연관시켜놓기도 하였지만..
다만 본문의 쓰신 말 중 남자들은 평생가도 모른다는 말이 조금 속상하게 느껴져 댓글을 달아봅니다. 물론 잘모르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한국의 남자 중 한명입니다. 잠자냥님의 말씀대로라면 남자들의 삶 역시 아마 여성들은 평생가도 모를 수 있을거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그만큼 삶의 모습과 환경이 다르기도 했다는 것일테지요.
단정짓기보단 서로를 공감해주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기대해봅니다..^^ 좋은 내용 잘 읽고 가요..^^

잠자냥 2019-08-12 15:42   좋아요 1 | URL
소설이나 문학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점이 극명하기 때문에 현재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을 많이 얻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처럼 가부장제가 극명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공감을 얻고 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남자들의 삶 역시 여자들이 다 알기란 한계가 있겠지요. 바로 그래서 저는 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을 통해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의 공백을 메꿀 수 있으니까요. 암튼 조현우 님 같은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