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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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며 자연스레 딱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나쓰메 소세키는 사람을 싫어했던 게 틀림없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 우울한 작품만 골라 읽었던 터라 이번에는 좀 그렇지 않은 작품을 만나보자 싶었다. <도련님>을 읽노라니 우울하거나 쓸쓸하거나 고독하거나 이런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사람’이라는 종족에 대한 혐오를 우울하지 않은 어조로 풀어놓아 살짝 다르게 느껴지지만 <도련님> 또한 ‘인간이란 경멸스러운 존재’라는 걸 확인하게 되는 작품이다. 경멸감이 아니더라도 뭐랄까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이란 순수함을 간직하고 정직하게,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애를 쓰는 존재라기보다는 그 순수함을 쉽게 잃어버리고 오히려 그런 점을 간직한 사람을 보면 파괴하지 못해 안달 난 존재라고 보는 듯하다.

인간이 이럴진대 사람이 모인 사회라는 공간은 더 말해 무엇 할까. 시골 중학교 수학교사로 부임한 ‘나’가 겪는 짧은 기간의 이야기를 담은 <도련님>에서는 그런 오합지졸 인간 군상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시골이라는 한적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더 관심이 많고 겉으로는 품위와 순수 고결함을 지향하지만 그 속내는 썩을 대로 썩었다. 그런 이들이 오히려 도쿄에서 온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이라고 비아냥대며 그들 사회에 걸맞은 인물로 만들고자 애를 쓴다.

고집불통에 단순하고 강직한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그저 싫고 못마땅할 뿐이다. 어느 날은 좋은 사람인 듯한데 뒤돌아서 보면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 같고 뒤죽박죽이다. 그렇게 겉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자니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껴주던 하녀 ‘기요’만 생각날 뿐이다. 기요는 겉과 속이 다르지도 않고 늘 한결같다. 집에서도 싫어하던 자기를 변함없이 아껴주었다.

세상이 다 ‘기요’와 ‘도련님’같은 사람들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언제나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는 자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다. ‘도련님’이 시골 학교에서 유일하게 호감을 품었던 인물인 ‘끝물 호박’은 결국 그런 이들의 농간에 사랑하는 여자도 빼앗기고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인물은 역시 ‘도련님’이나 ‘기요’, ‘끝물 호박’ 같은 사람인데 그들의 결말은 영 순탄하지 않으니 입맛이 쓰다. 역시, 현실이나 소설이나 마찬가지구나 싶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을 읽으며 웃었던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은 읽으면서 몇 번 웃음이 팍 터졌다. 도련님이 사람을 비꼬는 방식도 재미있고 강직하지만 어딘가 삐뚤어진 듯한 태도에서 나오는 거친 독설도 시원했다. 게다가 남보고 뭐라고 비꼬는 도련님, 그도 어딘지 엉성해서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그렇게 묘사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살짝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과 같은 장면도 많아 ‘하이고 이놈아, 너부터 잘해!’ 하는 말이 슬며시 올라오기도 했고.

시골 학교의 중학생이라면 마냥 순진하고 순박할 것이라는 관념을 깨는 묘사도 좋았다. 인간을 만들어 준다는 ‘학교’가 결국 사람을 망치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도 그렇고. 사실 그렇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이들이 교사랍시고 남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인데 도대체 뭘 배울 게 있을까 싶다. 돌아보면 오히려 학교에서 인간의 안 좋은 버릇은 더 배운 것 같다.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그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기 시작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초기에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몰염치함이나 뻔뻔함 등에 관심을 두다가 후기로 갈수록 점점 인간 내면의 질투, 시기, 사랑 등 근원적 욕망에서 비롯된 윤리적 문제에 집착했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뭔가 우울한 기운이 가득한 그의 작품이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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