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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평점 :
「코스모스」는 책보다 BBC의 다큐멘터리로 먼저 접했는데, 세련된 그래픽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에 푹 빠져 버렸다.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본 것이 과학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책에서 얻는 것은 단지 천체 이론만이 아니다.
「코스모스」를 접하기 쉬운 이유는 이 책이 과학도서라기보다 칼 세이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최고의 과학 입문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저자의 우주에 대한 애정이 책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정말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쓴 책을 읽으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되는데 이 책이 그러했다. 머리말에서, 과학 영상물을 촬영하는 동안 군사활동의 방해를 받았던 경험 이후 책과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군사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을 빼놓지 않고 다루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진짜 해버렸잖아, 이 사람.’이라기보다 그 말에서 과학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칼 세이건은 첨단 과학 기술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이 건전한 시민으로 성숙하는 데에는 효율적인 과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두 가지 면에서 필요하다.
첫 번째로 과학은 본질적으로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과학은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관에서 풀려나야 더욱 총체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통섭형 인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미술과 철학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과학 역시 과학 이외의 문화 활동과 격리되어 성립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유독 그 부분을 공감하게 만드는 내용이 많다. 학생 시절 심드렁하게 외웠던 케플러의 법칙에서 감동을 느끼게 될 줄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케플러의 법칙이 어떤 선입견과 사회적 압박을 극복하고 어떤 검증을 통해 발견되었는지를 알았다면 그 법칙을 단순히 시험문제로만 취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은 우주 탐사의 절대 이정표가 되었다. 과학자는 진리를 밝히는 사람일지는 모르나, 정작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시인이라는 말에 공감해 본다.
두 번째로 과학은 인간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우주를 떠올리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성인이 된 이후 한없이 겸허해지는 경험이 얼마나 될까. 자연마저 정복했다고 믿는 인간을 미시적 존재로 놓아둘 만한 비교대상이 머리 위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미시적 세계 역시 거시적 세계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여 오만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라고 칼 세이건은 말한다.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온실 효과의 폭주로 금성의 표면이 처한 상황을 보면서 환경오염과 핵전쟁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다. 만약 이 작은 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역사를 살핀다면 외계인은 인류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주를 통해 우리를 본다. 그것은 책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과 비슷한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갓 인간으로서 하루 살고 곧 죽을 목숨임을 잘 안다. 그러나 빽빽이 들어찬 저 무수한 별들의 둥근 궤도를 즐겁게 따라 가노라면, 어느새 나의 두 발은 땅을 딛지 않게 된다.” 독서의 즐거움과 퍽 닮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