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테드 치앙이라고 하는 작가에 대해....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말은 과연 나의 사고를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문자는 나의 사고와 같은 속도로 쓰여지고 있는가?
쓰고 있는 언어나 문자에 의해 나의 사고가 한정지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의 중.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떠올랐다.

초월적 지능을 갖게 된 한 남자가 자신의 사고를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화와 어떻게 그와 동등한 능력을 가진 상대를 만나 철저하게 붕괴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이해>.
외계종족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연구자로 선정된 언어학자의 이야기인 <네 인생의 이야기>. 특히나 이 두편의 이야기는 언어에 대한 테드 치앙의 관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연전에 읽었던  <뉴욕 삼부작> 에서 스틸먼 교수의 언어에 대한 사유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 폴 오스터에 이어, 나로 하여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끔 만들었다.

성경과 바빌론신화를 변용하여, 몇 세기에 걸쳐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거대한 탑을 쌓아온 바빌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빌론의 탑>은 마치 내가 바벨탑을 쌓기 위해 등에 벽돌을 지고 구름 속으로 높이 솟은 탑의 발판을 걸으며 위로 한정없이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외계인과의 접촉 임무를 부여받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해독하는  언어학자가 지구상의 언어를 구성하고 있는 통사론적 요소들과 음운론적 요소를 전혀 무시한 듯한 외계인의 <헵타포드>어의 연구를 통해 음성에 사로잡힌 순차적인 언어를 벗어난 동시적 사유의 인식론적 전환을 이루게 되는  <네 인생의 이야기>.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소재 삼아 치밀한 사색을 전개한 <영으로 나누면>은 현실 자체의 존립을 흔들어버리는 수학의 모순을 증명할 수 있는 형식 체계를 발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존재의 기반까지 뒤흔드는 경험을 하게 된 수학자의 이야기다. 자신이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어떤 것이 사실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실험으로써 증명해버린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에피파니를 이야기하는 듯한 <이해>는 SF라기보다는 사변소설에 가까운듯하며 나의 미시적인 세계를 거시적으로 바꿔주는 한 줄 한 줄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의 값어치를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이해>는 내가 평소에 원하던 상태의 초월적 지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초월적 상태가 명상이나 의식의 각성을 통한 정신적 초월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고의 물질적인 작동과정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 더욱 나를 놀랍게 한다. 조금만 더 파고들어가면 과포화상상태가 되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동시에 모든 것에 개방되어 있는 뇌에 대해 느끼곤 하는 절망감이 그의 임계량을 초월해버리는 선택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였을지도.  모든 것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신이 되는 것과 같은 기분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에 대한 이해.기존의 그릇된 학문적 관념들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매력은 부가적인 것일 뿐이다.

종래의 그리스도교의 종교관을 바탕으로 기적과 계시, 천사의 강림과 같은 시현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세계에서의 신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지옥은 신의 부재>는 읽는 이의 마음을 섬뜩하게 만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중에서 인간의 의식을 벗어난 것이 있을리는 없겠지만-그렇게 생각해야만 우리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다- 이 소설 속에는 그것이 가능하기에 통제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두려움은 그만큼 클 수 밖에 없다. 모순을 잔뜩 가지고있는 듯 보이는 신의 사랑과 그 사랑을 넘어서는 한 인간의 무서운-무섭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죽어버렸음에도 자꾸만 귀에 들려오는 연인의 밀어 같다. "당신이 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도 상관없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걸로 충분해."

눈에 보이는 물질적 우주와 별도의 어휘적 우주가 있어서 어떤 물체에 조응하는 이름을 결합함으로써 잠재된 힘이 발현된다고 보는는 명명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어떤 문명을 배경으로 한 <일 흔 두 글자>는 르 귄이 어스시에서 사용했던 언령마법과 비슷한 관점이 등장한다. <일흔 두 글자>에서 명명은 마법이 아니라 정통 과학의 기초위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랜달 개릿의 '다아시경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명명이 존재의 근원이며 그 매개가 된다고 보는 점에서는 역시 르 귄의 언령마법의 시각과 동일하다고 여겨진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메타 인류의 과학이 이루어낸 성과를 고찰해보는 <인류 과학의 진화>라고 하는 짧은 논문 형식의 소설에서 논자는 지성강화 요법을 거친 메타인류의 연구가 아닌 인류의 무한한 가능성에 희망을 품자는 논지를 펼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발전하는 과학문명에 대해 여전히 나와는 별개의 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저자의 현실에 대한 인지가 담겨있다.

칼리그노시아(미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도록 하는 병)를 모든 학생들에게 의무화하고자 하는 한 대학 학생회의 결의와 그에 이어지는 학자, 학장, 학생들, 그리고 그 학부모들의 다양한 의견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라는 제목처럼 외모(신체적 매력)가 대인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통제하고자 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극에 반응하는 개개인의 능력까지 통제해야 하는 상황은 싫지만 그 사람의 재능, 정신 등 눈에 띄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지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위트있는 작품.

그의 소설집을 이제 겨우 한 번 읽었을 뿐이지만 나의 생각을 이렇게 적어두지 않으면 의미없는 일상의 일들에 의해서 나의 사유는 금방 연기처럼 나의 의식에서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모처럼 나의 사고 혹은 의식체계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작품들을 접했다.

-by siwangmoo, 20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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