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은 TV를 통해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려고만 하는 남자와 그와는 반대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어느 마을에 머물고자 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큰 감정의 기복 없이, 덤덤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였는데, 뭔지 모를 느낌에 계속해서 관심 있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우연히 다가왔던 드라마는, 다가올 때처럼 그냥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러다가 또 한 번의 우연으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곰스크’라는 단어를, 그리고 오래전 드라마를 봤을 때 내가 느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찾아보니, 드라마는 2004년 작품으로 엄태웅과 채정안이 출연했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고,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그 영상들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뭐 였을까, 우연하게 만난 작품을 7년이나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드라마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곰스크~, 곰스크~’를 외치던 음악에 세뇌 당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사실은, 책으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으며 희미하게나마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그리 복잡한 내용은 아니다. ‘곰스크’라는 도시 자체가 꿈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곳을 갈망해왔고, 결국에는 떠나게 된다. 그런 그의 곁에는 그와 결혼한 아내가 있다. 그녀는 곰스크로 향하는 것이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지만, 함께 떠난다. 곰스크로 향하는 기차가 어느 시골 마을에 잠깐 머물게 되고, 여차저차해서 그들은 기차를 놓치고 만다. 다시 곰스크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위해 그들은 그 마을에서 일을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 아이를 낳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그들은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전히 곰스크를 그리워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무조건적으로 꿈을 향해 나가고픈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왜 그렇게 ‘곰스크’만을 원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에게 ‘곰스크’는 어떤 의미인 것일까?! 그는 그곳에서 어떤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비록 곰스크는 아니지만, 이미 완벽하게만 보이는 가정을 꾸린 그가 끝까지 놓지 않는 곰스크에 대한 열정은 미련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의 꿈에 대한 진정성에도 의문이 들었다. 그의 열정이, 진짜 자신만의 꿈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꿈에 불과한 것인지 말이다. 지금의 행복을 바라는 아내를 처음부터 헤아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는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 거죠?” -P57
 


 반면에, 겉으로는 결혼한 남자의 꿈을 함께하고자 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장의 행복을 향하고만 싶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꾸는 꿈이 진짜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곰스크’로 향하다가 내린 어느 마을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런 단순한 낯섦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왜?!, 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힘들어도, 아니 많이 힘들다고 해도, 결혼한 사람이 원하는 세상을 향해 그냥 믿고 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제 막 가꾸어나가는 그 마을과 ‘곰스크’와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어쩌면 별 것 없는 ‘곰스크’에 대한 남편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고통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통보다는 영원한 희망-삶을 유지하게 하는-을 위해 그의 꿈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하고, 주절주절 이런저런 대답들을 내뱉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곰스크는 과연 무엇인가?! 아니, 나에게 곰스크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있다면, 나는 지금 곰스크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누군가는 자신은 이미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놓쳤다고, 그래서 그냥 가슴 속에만 곰스크를 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나는 아직 곰스크를 향하고 있다고, 아니, 나는 이미 그 기차를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P61
 



 결론-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지만…-은 남편의 입장도 아내의 입장도 아닌,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내가 원했던 것이고, 그것이 운명이라는 결론 말이다. 당신이 만약, 이미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놓쳤다고 생각하더라도, 반대로 벌써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탔거나,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껏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그런 순간순간의 선택이 결국에는 내가 원한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매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는 표제작인 《곰스크로 가는 기차》외에도 7편의 단편이 함께하고 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과 《두 시절의 만남》, 오늘날 우리 사회를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것만 같은 느낌의 《배는 북서쪽으로》 등, 모두 특별하면서도 제대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상당히 적은 정보만이 알려진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이지만,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통해서 온전히-물론 그에 대해서 약간의 정보가 주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으로만 그의 세상을,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따라가는 시간들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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