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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영조의 탕평정치 - <속대전>의 편찬과 백성의 재인식 ㅣ 태학총서 30
김백철 지음 / 태학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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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탕평정치는 사림 중심의 정치구도에서 왕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였다. 백성은 왕을 유지시켜주는 것 밖엔 되지 않았던 시절, 영조가 펼친 정책은 처음으로 백성에게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고 백성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려고 했다. 영조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있지만, 왕으로서 해야 할 임무를 가장 충실히 잘 해낸 임금이 아닐런지.
탕평 정국의 운영에선 요순정치를 표방했는데 이는 [주례]를 강조하게 했고 탕평 정치의 상징이자 영조가 펼친 정책과 사업을 대변하는 경서로 받아들여졌다. 영조는 유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자신의 정통성 확립과 권력 기반의 확대 뿐 아니라 정비사업과 국가 제도의 대경장에까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이 시기 간행된 법전의 편찬은 그 중의 하나라 하겠다.
<속대전>의 반포로 법제들이 정확한 계통성을 찾고 하나의 법체계로 완성될 수 있었는데 영조는 국왕조차도 국법 체계 내에 존재할 것을 천명했다. 더 놀라운 것은 백성 또한 일정한 사법 체계 속에서 최대한 권리와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통치체제를 정비해 나갔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백성이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한다. 백성이 있기에 왕이 있고 권력이 존재할수 있다는 걸 잘 알게됐고, 보다 근본적으로 백성의 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인식하게 됐다. 백성의 성장이 국가 재정의 문제와도 맞물린다는 점과 유교적 애민 정신이 합쳐지고, 탕평 정치가 추구하는 요순의 이상사회의 이념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겨난 [민국]이라는 말은 백성과 나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추상적인 정치 개념개념으로 인식되며 국정 지표로서 활용되기에 이른다. 이런 탕평정책의 성과는 국가 제도의 문물정비론으로 확대되고, 이 과정에서 법제 정비 사업이 추진됐으며 국가의 제도적 정비가 새로이 된건 큰 수확이다. 무엇보다 정책의 초점이 백성에게로 간 것이 눈여겨 볼 만한 일이다. 그렇게 영조의 탕평정치는 정치 부면의 탕평에서 점차 범주를 확대해 국가 제도의 정비와 백성의 생활 안정이라는 부문으로 파급되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국왕, 국가, 백성의 존재들은 재인식되었으며 민국 이라는 새로운 국가관의 탄생도 야기했으니 '탕평'이 준건 정치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게 한 정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