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 구술로 풀어 쓴 한국전쟁과 전후 사회
이임하 지음 / 책과함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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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 구술로 풀어쓴 한국전쟁과 전후사회
이임하 지음 / 책과함께 펴냄/ 18,000원
 
한국전쟁은 공식적인 기억만을 강요한다. '평화롭던 한반도 적화야욕에 가득찬 북괴가 침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지만(38선 근처는 상시 전투중이었고 이승만은 북진통일 주장과 함께 북한이 남침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강요는 전후사회를 규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쟁의 다른 부분 후방의 삶이나 민간인에 대한 문제는 거론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는 역사속에서 여성의 문제를 다뤄온 이임하가 한국전쟁의 미망인들에 대한 구술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한국사회를 엿보는 작업이다.

 

지은이는 전쟁미망인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 접근하고 있다. 군경미망인, 피학살자미망인 그리고 상이군인미망인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미망인의 정치적 입장과도 연관되어 있다. 군경미망인의 경우 쉽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반면 피학살자미망인의 경우 처음에는 주저한다는 것이다. 피학살자란 남한 군경에 의해 학살된 이들을 말하는데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정책상 이들은 강요된 침묵과 일상화된 차별을 받아들여야 했음을 알려준다.

 

미망인이 된 과정을 보면 군경미망인들은 전쟁 중 제2국민병등으로 강제징집을 당하고 남편을 잃은 경우이다. 한국전쟁을 다룬 책들을 보면 우리가 영화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입대한 사람보다는 강제로 끌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계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는데 색출이나 회유에 의한 경우도 상당했다. 피학살자미망인은 말 그대로 보도연맹 학살 등과 연관이 깊다. 갑자기 불러내서는 한군데 모인 남편이 학살을 당한 경우다. 상이군인 미망인의 경우는 한국전쟁에서 신체적 장애를 입은 이들과 결혼한 경우인데 이후 오랜 치료과정을 겪거나 사망하는 경우이다. 특히 상이군인과의 결혼은 애국적인 행동으로 칭송받았는데 이들과 결혼한 여성들은 대부분 상이군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결혼했다고 한다. 상이군인들의 경우 신체적 장애 뿐 아니라 전쟁에 의한 정신적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상이군인미망인의 삶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미망인들의 삶은 전후사회의 변화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대부분이 스스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적 가부장사회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생계를 위한 억척스러움이 지금이 한국의 아줌마를 형성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미망인들은 대체로 농사, 바느질, 행상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는데 최소한의 자본으로 가능했던 행상이 이 때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사실 여성이 시장에 가는 행위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이들의 등장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충격이었다.

 

미망인들은 개인적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 이는 단순히 남편을 잃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상식적인 삶 외에 가족(시댁)간의 관계가 더 큰 고통이었는데 이들에 대한 국가적 침묵은 곧 시댁에 의한 감시와 통제로 나타난다. 생계마저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시집살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감시와 통제는 삶 자체를 옭아맨다. 문제는 이런 시댁에서의 삶 또한 차별의 연속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댁에서는 이들에 대한 외모등에 대한 통제가 심각했는데 일제시대 때 부터 이어오던 몸빼라 불리는 옷을 강요해 이들에게서 여성성을 빼앗고자 했다. 이런 억압속에서 헤쳐나오는 길은 분가였는데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부터 자식의 교육을 내세워 분가에 성공하곤 했는데 분가후에야 이들은 비로소 가족이라는 억압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도 사망남편에게 나온 보상금등은 모두 시댁차지였다. 물론 군경미망인의 경우와 다르게 피학살자미망인의 경우는 조금 다른 행태를 보인경우도 있다. 피학살이라는 고통을 시부모와 미망인 당사자가 공유하며 이겨 나간 경우인데 이는 피학살이라는 사실이 사회가 가족전체에 던지는 차별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전쟁미망인의 분가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왔다. 상경후 여성이라는 약점때문에 사기를 당하고 돈을 떼이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여성 혼자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색안경을 끼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전쟁미망인들에게는 억척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다. 그러나 사회적 조건 역시 전쟁미망인들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불과 얼마전까지도 지속되었던 호주제 덕에 구조적으로 재혼이 쉽지 않았고(호주, 대표적으로는 시아버지가 호적을 떼어주지 않는) 재산에 대한 권리도 호주가 가지고 있어 사별전 남편이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부동산 계약 등에서 제약을 받아 구조적인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피학살자 미망인의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연좌제라는 틀안에 갖혀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본인의 취업 뿐만 아니라 자식의 취업에 까지 제한을 받아 평생을 그 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보이지 않게 이들을 옭아맨 것은 국가에 의한 침묵 강요이다. 1956년 현충일을 만들어 전쟁미망인들에게 추도식에 참석케 했지만 정작 현충일은 손님들, 정부당국자들을 위한 행사였다. 화환, 군례, 추도사는 그들을 위한 행사였을 뿐 이었다. 박정희 시대에 들어서는 호국신령 등으로 전사자들을 치켜 세우고 전사자들의 피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강한 국방과 산업화를 이야기했다. 게다가 유가족이라는 광범위한 용어를 사용해 더 이상 전쟁미망인들이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원호보훈법 등의 제정으로 전쟁미망인들에 대한 보조가 시작되었다. 금전적인 도움과 취업알선이었다. 국가보훈대상에 대한 취업을 법률로 정한 것도 이때 부터이다. 그러나 한달에 몇 만원도 되지 않는 보조와 보훈대상자 취업자들에 대한 차별로 이런 국가 정책은 정책으로만 필요했을 뿐 실제 전쟁미망인과 그의 가족들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또한 분가한 전쟁미망인들이 상경하고 이들이 집단 거주지들이 형성되면서 이는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가진것 없고 생존을 위해 남은 것이라고는 악다구니만 있던 이들에 대한 언론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추었다. 이들은 1970년대 재개발등의 문제와도 결부되는 등 한국사회 현대사의 문제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 책은 구술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전쟁미망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리, 구성한 것이다. 구술사라는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쟁미망인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 및 보충설명이 이루어지는데 전쟁미망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항상 현실은 현실같지가 않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한장 한장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의 원인, 과정, 결과보다 전쟁을 한 사람들 그리고 전쟁터에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는 전쟁의승패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전쟁미망인, 전쟁고아, 상이군인, 참천군인, 피할살자 유가족의 이야기는 전사에는 기록되지 않는 전쟁 이야기와 전후 사회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들 가운데 전쟁미망인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전쟁 경험, 국가 폭력, 트라우마, 젠더, 가족, 침묵 따위의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우리가 전쟁미망인의 구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들의 구술이 가치가 있는 것은 지금까지 그녀들이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의 문제들(범주)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범주들은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사회를 구성해왔다."(378~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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