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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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운동이 없다고 했고, 어떤 이는 운동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그 운동의 이름을 다르게 불렀다. 엑스넷, 리틀 브라더, 리틀 시스터. 내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운동의 이름은 미국이었다.

 

1984가 폐렴 걸린 영국 반제국주의자의 우울한 디스토피아소설이라면, 리틀 브라더피해망상적인 캐나다 활동가의 쾌활한 기술소설이다. 둘 다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하고, 공포와 감시기술과 인간성을 다루지만, 한쪽은 우중충한 공무원 아저씨가 주인공이고 한쪽은 삐딱한 열일곱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 1984의 윈스턴이 소심하게 일기를 쓰는 것으로 저항을 시작한다면, 리틀 브라더w1n5t0n은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으로 저항을 시작한다. 물론 한쪽은 비극, 한쪽은 (어쨌거나)희극이긴 하다. 헐떡이는 공무원 아저씨가 늙은 영국의 저항자라면, 해커 고등학생은 젊은 미국의 저항자다. 홀로 죽어가던 20세기의 전후 작가와 이제 막 결혼한 21세기 테러-이후 작가의 저항은, 지금 여기에서 둘 다 빛을 발한다. 텔레스크린이 프리즘 프로젝트가 된 오늘날, 빅브라더는 실존한다. 조지 오웰의 예상과 달리 무능하지만 말이다.

 

이런 젠장. 그 자식들이 우리를 훔쳐보는 것도 열 받는데, 심지어 무능하기까지 해! -183

 

리틀 브라더의 시작은 마커스 얄로우라는 고등학생이 어떠한 캐릭터인지를 보여준다. 쾌활하고, 재미없는 어른들이 만든 체제를 싫어하며, 게임을 좋아한다. 10페이지에서 작가는 마커스라는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일 인물인지 독자가 예측할 수 있도록 선보인다. 그리고 30페이지가 넘기 전에, 폭탄을 터뜨린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수업을 땡땡이치고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30페이지가 지난 뒤부터 400페이지 동안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25살 이하와 25살 이상의 내전, 또는 애국자 게임이다.

 

이 나라는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우린 이제 서로 다른 편이다. 그리고 내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142

 

고등학생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시작부터 말이 안 되는 게임이다. 게다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른들을 빼면 ‘25이하의 청소년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게임을 시작한 마커스는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하나 돌파구를 찾아낸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커다란 음모를 끝끝내 밝혀낸다. 이 말도 안 되는 전개를 말이 되게 그럴듯한 전개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바로 기술소설이랄 수 있는 리틀 브라더의 재미이자 핵심이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화성에서 외따로 떨어진 마크 와트니가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나가며 결국 지구에 돌아오는 데 성공하는 마션처럼, 리틀 브라더도 도저히 흠집도 못 낼 정부의 막강한 정보전쟁을 하나하나 해킹해나가는 것이 꿀잼이다. 근미래에서 실현 가능할 기술들을 동원하여 적대적 환경에서 난관을 타개하는 인간의 위대함이 여기에도 있다. 전체로 놓고 보면 에이, 어떻게 혼자 화성에서(미국 정부의 감시를 피해서) 살아남느냐?”고 코웃음칠 이야기지만, 하나하나 레고 블록을 쌓아서 배트카를 만드는 것처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처럼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한없이 가볍고 긍정적인 미국인들을 보노라면, 대체 뭘 믿고 저리 쾌활한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아무리 고등학생이라도 말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안기부) 같은 데서 오줌 지리게(정말이다) 고문당하고 나서도 저렇게 설칠 용기가 어디서 날 수 있냐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의 절교로 자살할 수 있는 사춘기 고등학생, 남는 게 시간밖에 없는 고등학생이, 생사의 기로에서 이렇듯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도 그럴듯하지 않은가. 읽고 나서 다시금 곱씹어보면, 오히려 너무 이성적이어서 이상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마커스와 앤지의 부모님들이 덜 그럴듯해 보인다.

 

나치가 이 나라를 운영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38

 

여기서 잠시, 미국이라는 나라와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과 저항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작중에 여러 번 언급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의 내용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던 저항자들이 만든 합주국이고,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를 위해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나라다.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는 소수자들이 모인 도시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사람들은 국가가 일으킨 전쟁범죄였던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고, 온갖 소수자들이 자신들끼리 뭉쳐 살아가는 곳이다. 마커스가 선생님에게 배우는 미국과 샌프란시스코의 역사에서, 그러한 자유의 가치는 늘 옹호되어야 할 것으로 상정된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는, 국토안보부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 지난주에 세상이 바뀌었어. -150

 

마커스는 배운 대로’, 미국의 역사를 되풀이한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하고, 전투에서 패배하기도 하지만, 끝내 자유를 쟁취한다.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싸움을 시작한 것은, 자신의 생각대로, 결코 굽혀서는 안 될 존재들에게 선전포고로 맹세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놈들을 믿으면 안 된다는 걸 배웠지. 그놈들에 맞서 싸우지 않는 건 그놈들을 도와주는 거라는 것도 배웠어. 그놈들을 그대로 놔두면 이 나라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 거라는 사실도 배웠어.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상황이 앞으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가 될 거야. 지금부터는 점점 더 나빠지고 또 나빠질 뿐이야. -174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어. 이건 우리나라야. 놈들이 우리한테서 빼앗아간 거야. 우리를 공격했던 테러리스트들은 아직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어. 그런데 우린 아냐. 내 손에 자유를 쥐어줄 때까지 1, 10, 평생을 지하에서 보낼 수는 없어. 자유는 우리 스스로 쟁취해야 해. 441

 

911 테러 이후, 수많은 이야기들이 미국의 독단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비판했다. 슈퍼 히어로 영화들 아이언맨3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 누군가의 잘못된 목적 아래 만들어진 전쟁이었다는 것을 다룬다. 이 책에서도, 결국 테러와의 전쟁은 정치적인 음모였음이 밝혀졌다. 자유는, 공포와 맞서는 용기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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