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점에서는 자본세의 개념이 낫습니다. 그리고 자본세는 동물, 식물, 인간 그리고 미생물(왜냐면, 보세요, 자본의 역사와 관련해서 발효와 질병은 근본적이고 중요합니다. 발효 문제를 빼고 2차 대전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들 중 어떤 집단 이, 어쨌든 자본세에서의 행위자들은 최소한으로 말해도, 상황 속에 있는 식물, 동물, 인간, 미생물,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의 안팎을 가로지르는 다중적 층위의 기술들인 거죠.
"글쎄, 포스트휴먼이 아니라 퇴비 compost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둘 다 웃음) 그러니까 구호가 필요하다면 이런 게 있겠죠. "포스트휴머니즘이 아니라 퇴비다!" "끝내주는 퇴비를 만들자!"
그러니까 잉여의 죽임과 잉여의 죽음이 유례없이 퍼진 시대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시도들은 전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대문자의 "삶/생명Life"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하는 형태가 되어버리는 것이었죠. 푸코의 유명한 선언인 "저항은 삶의 편이다."를 LSD [환각제] 알약 위에 붙이고 아무에게나 막 나눠주는 것처럼…. (둘 다 웃음)
DH : 진짜요! 저랑 제 개, 제 친구들과 친구들의 개가 함께 게임을 하면서 같이 우리라는 무언가가 되어가는데, 이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를 밝혀내려고 하는 거죠. 정말로, 이 "우리‘란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