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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소설가'를 꿈꾸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소설은 모든 것에 대해 '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에서부터 세계, 역사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가장 예민하고, 집요하고, 치밀한 장르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소설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론의 세계는 나의 세계가 아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한 실무자의 고백일 뿐이다. 소설가 각자의 작품에는 소설의 역사에 대한 어떤 함축적인 통찰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한 것 또한 바로 내 소설들에 내재한 이 '소설에 대한 생각'이었다. (서문)


<소설의 기술>을 손에 들고 겁부터 났다. '소설'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길을 잃게 될까봐(그러고보니 표지도 숲이다 ㅜㅜ). 밀란 쿤테라의 작품이라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만 간신히 읽은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까, 길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을까,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한 실무자의 고백일 뿐이다"라는 밀란 쿤테라의 선언(?)에 용기를 얻어 읽어내려갔다. 책을 읽은 결과, 우려는 사실로 입증되었으나.......... 그만큼 수확도 많았다. '소설'에 대한 밀란 쿤테라의 집요함이 고마웠다. 이를테면 다른 작가의 작품이나 유럽 소설들에 대한 꼼꼼하게 평가한달지, 자신이 쓴 작품의 구조(설계)와 발전 과정을 까칠하지만 친절하게 풀어주는 그의 대담, 연설, 기록이 촘촘하게 담겨있었다. 비유하자면 그는 '소설'이라는 숲길을 안내하는 성실한 숲 해설가같았다.


그가 인용하거나 밝힌 소설에 대한 단상들을 옮겨본다. 내가 이해하기론 소설에 대한 그의 철학은 존재의 기억이며 실존의 기록임과 동시에 그 무엇 이전의 무엇인 영역이다. 


소설은 근대의 시초부터 줄곧, 그리고 충실히 인간을 따라 다닌다. 후설이 서구 정신의 요체로 간주한 '앎에의 열정'이 이제 소설을 사로잡아 소설로 하여금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살피게 하고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세계'를 영한한 빛 아래 보존한다. "오직 소설이 발견할 수 있는 것만을 발견하라. 그것만이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다."라는 헤르만 브로흐의 말을 나는 이런 뜻으로 이해하며 그가 거듭 되풀이하는 이 말에 담긴 그의 고집에 공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4-15쪽)


소설의 존재 이유가 삶의 세계를 영원한 빛 아래 간직하고 우리를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라면 오늘날 소설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게 아닐까? (32-33쪽)


살몽 : 당신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44쪽)


소설은 프로이트 이전에 이미 무의식을 알았고 마르크스 이전에 이미 계급투쟁이라는 걸 알았으며 현상학자들 이전에 벌써 현상학(인간적 상황의 본질에 대한 탐구)을 실천했습니다. 그 어떤 현상학자도 알지 못했던 '현상학적 기술'이 프루스트에게서는 얼마나 멋지게 나옵니까! (52쪽)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겁니다. (56쪽)


소설은 실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탐색하는 겁니다. 그런데 실존이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가능성의 영역이지요. 인간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소설가들은 인간의 이러저라한 가능성들을 찾아내 실존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지요. (65쪽)



소설에 대한 위와 같은 그의 정의를 바탕으로 그가 인용한 얀 스카첼의 말을 소설로 바꿔 재인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는 소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은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

오래 오래전부터 소설은 거기에 있었고

소설가는 다만 그걸 찾아내는 것일 뿐. 



이 책은 밀란 쿤테라 입문서로 적당하다. 하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다. 숲에 들어섰는데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를 보고 아득한 마음을 가지게 된달까. 그러나 적어도 길을 잃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미덕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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