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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
"니가 찾는 어디는 어디에도 없을꺼야"
일상에서 느끼던 답답함을 토로하던 나에게 선배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여기든, 어디든,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여행보다는 일상의 신비를 찾아내는 편이, 사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체념해버렸으니까.
<안녕 다정한 사람>은 열명이 자신의 '어디'를 정하고 자유롭게 여행하고 쓴 에세이다. 작가 이병률이 사진을 찍고, 은희경, 이명세, 이병률, 백영옥, 김훈, 박칼린, 박찬일, 장기하, 신경숙, 이적이 글을 썼다. 이 책은 여행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가령, 기획은 하되 여행지는 여행할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게 한달지,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접근하는게 아니라 여행자의 취향과 개성을 최대한 살렸달지... 이런 노력들이 이 책을 더 반짝거리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하여 우리는 은희경의 여행에서는 호주라는 장소보다는 와인에 대해, 태국에서도 지속되는 영화에 대한 이명세의 열정에 대해, 백영옥과 함께 왕가위의 도시 홍콩에 대해, 미크로네시아에서의 김훈의 지적 성찰에 대해, 박칼린을 통해 '아름다운 곳이란 조금 멀리서 그리워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기하와 이적의 여정을 통해 예술과 음악에 대한 진지한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되는 책이다. "당신의 어디는 어디입니까?" 이 질문은, 일상에 너무 깊게 담궈져 더이상 '어디'를 꿈꿀 수 없는 우리에게 선물과 같은 질문이다. 책을 덮으며 뒷편에 실린 여행에 대한 각자의 단상을 유심히 보았다.
-은희경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
-이명세에게 여행은 책상을 걷어차고 이미지 만들기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
-백영옥에게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돌이표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
-박칼린에게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
-박찬일에게 여행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
-장기하에게 여행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타게 된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
-신경숙에게 여행은 친숙한 나와 낯선 세계가 합해져서 넓어지는 일
-이적에게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
좋은 책이란, 질문을 남기는 책이라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뭘까. 나의 '어디'는 어디일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든, '여기' 삶이라는 여행이든, 질문을 던지며 사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리라. 관광과 여행은 분명 다른 표현이다. 똑같이 파리를 가더라도 어떤이는 관광을, 어떤이는 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에 대한 책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속깊은 친구와 함께 소중한 기억을 나누어가진 여행'과 같다.
자, 이제 책을 읽었으니 지도를 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