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바치는 글

백추(白秋)의 여인이 옷장을 뒤지며 그녀 앞에 다가선 새 계절을 단장하듯, 나는 책장을 뒤지면서 봄을 맞을 채비를 한다. 겨울은 참으로 권태로웠다. 봄이 산과 들에서, 그리고 나무 사이로 숙연히 숨쉬고 미풍에 실리어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 스며들 때, 나는 거리를 방황하는 유혹에 빠진다. 산책은 나에게 책방을 찾아가는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책방을 찾는 즐거움에 계절의 구별이나 정해진 시간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나는 집을 나서면 으레 한 군데 책방을 찾는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어느덧 자주 들르는 책방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다. 광화문에서 약속할 경우에는 K문고가 머리에 떠오르고, 이전에 명동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그 부근의 독일어 전문 책방인 S서점에, 그리고 강남에서는 S문고에 들를 심산이다. 그러나 약속이 없이 처음부터 책방을 찾아갈 작정으로 외출하는 경우도 한 주에 한 번 꼴은 되는 성싶다.
'신간 대량 입하'의 안내서가 날아들면 설레는 가슴을 안고 뛰어간다. 음악회에 간다고 집을 나서는 순간, 마음 속에서 벌써 연주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여행길과도 같이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해방되는, 참으로 자유인의 길이다. 이렇듯 책방에 들어서기에 앞서서 청한(淸閑)의 여유가 나의 마음에 자리한다.

성별된 수태의 공간
책과의 첫 만남은 유년시절, 만화와 그림동화에서 시작해서 위인들의 전기, 세계의 풍물지들로 이어졌다. 정기구독하는 잡지가 선보이는 날은 팡파르라도 울릴 신나는 날이었다. 그림 두루마리처럼 그 책들이 펼쳐준 장면들은 할머니가 자장가처럼 들려준 호랑이나 귀신 이야기와는 또 다르게 가슴 두근거리는 유혹의 숲이었다. 책을 품에 끼고 잠 못 이룬 그 감흥의 밤들, 나는 한강이나 대동강에 앞서서 센 강이나 템스 강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이국의 풍물들을 마음 속에 그리움 가득 담았다. 현실에 눈을 뜨기에 앞서 책이 들려준 저편의 세계에 나 자신을 길들인 그 꿈 많았던 순수무구의 나날들.
고대 이집트인들이 '책의 집'을 '영혼의 치유장'으로 표현했듯이, 현실보다도 공상의 세계에 기대어 하루하루 나 자신을 길들인 유년시절부터 책은 나에게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나를 정화하는 마력을 지닌 감성과 지성의 연금장(鍊金場)이었다.
책방은 극장이나 미술관, 박물관처럼 현실세계로부터 차단되고 구별된, 그리고 그만큼 자기완결적인 정신의 공간이다. 고대 오리엔트의 어느 현자(賢者)는 책을 '태어나면서부터 성숙하다' 라고 하였던가. 우리는 극장이나 화랑에 가서 간혹 실망하는 일은 있어도 책방에서 실망하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근대소설을 통해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을 배웠다고 어느 작가는 말하였지만, 나는 책이라는 오묘한 지(知)의존재양식을 통해 나의 삶에 눈을 뜨고 세계와 처음으로 만났다. 나에게 언어의 이미지가 쌓이고 뿜어져나오는 그 공간은 나의 정념과 세계인식의 타작(打作)의 장이다. 어디 그뿐일까. 어린 시절 책 읽는 시간 속에서 나는 '일탈'을 음모하고 꿈의 놀이를 즐겼다. 그것은 분명 '수태'(受胎)의 성별(聖別)된 시간이요 공간이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슈바르츠발트 산기슭 하이데거의 저택 서재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상과 [성서]가 단 한 권 놓여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책에 의해 지식을 얻는 자를 탐구자의 최상위에 놓지 않고, 체험을 강조한 유럽 중세의 사상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무지의 지'(docta ignorantia)의 깊은 의미를 나는 때때로 반추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무지의 지'의 진실은 쿠자누스 자신이 방대한 장서의 치밀한 독자였다는 사실로 하여 비로소 진실성을 획득함을 또한 되새겨보기도 한다.

책과의 즐거운 놀이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저마다의 소리와 표정을 지닌 책들이 일제히 뿜어내는 교향악에 몰아의 한때를 맛보게 될 것이다. 나는 지식의 사냥꾼들에 의해 북적거리는 큰 책방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책방을 찾아갈 때 나는 대체로 혼자이다. 술은 대작이 좋고 극장에서는 동반자의 존재가 더욱 흥을 돋우지만, 책방은 혼자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우연히 책방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외면하는 것이 예의인 성싶다. 책과 만나는 그의 즐거운 '놀이'를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책방에서 나는 한 시간 이상 보낼 때도 있고, 2,3분만으로 총총히 걸음을 돌릴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즐거움과 충족감에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언젠가 하이델베르크 대학 광장 뒷골목의 어느 큰 고서점에서 아침 11시긔 개점을 기다리고 들어선 뒤 오후 5시의 폐점 때까지 하루종일을 보낸 적이 있다. 40대의 점원이 점심을 먹는다고 자취를 감춘 뒤에도, 텅 빈 넓은 홀에서 혼자 사다리를 여기저기 옮겨가며 한 권 한 권 뒤지곤 하였다. 책을 찾아내는 데 있어 나는 극히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많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한 성급하고 민감한 사냥꾼이다. 군서(群書) 속에서 오랫동안 갈망하던 책을 찾아냈을 때, 온몸을 휩쓰는 짜릿한 엑스터시!
나는 책방에서만은 짐짓 부자 행세를 한다. 교사 신세에 희귀본, 진본에 대한 욕심이 있을 리 없고, 장서가도 못 된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갖고 싶은 책은 학생시절부터 어떻게든 내것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나는 비교적 여러 분야의 책을 찾는 편이다. 당분간 읽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는 경우도 많다. 많은 애서가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책은 읽는 것이기에 앞서 보는 것이요, 여기저기 어루만지는 것이다. 나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지만 도서관의 장서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효용성을 위해 분류된 그 '책의 집' 에는 책을 둘러싼 놀이의 즐거움이 결여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가을이면 책을 사들고 S대 부속병원 시계탑 앞 수령200년을 넘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집으로 향하던 그 버릇, 책을 가슴에 품고 귀로를 재촉할 때의 기쁨과 보람, 이 모든 호사와 충족감을 어디에 또한 비길 것인가.

처음 만났던 축복받은 나날들
지나온 세월을 나와 함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숨쉬어 온 책들, 나는 이 책들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축복받은 나날들을 어제와 같이 선명히 기억한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원남동 교차로의 독일어 전문 책방인 W 서점에서, 학생 신분에 걸맞지 않게 값비싼 플라톤 저작집 5권을 입수한 것은 바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열흘 전쯤이었다. 원래는 아름다운 장정의 멜리케 전집을 살 작정으로 찾아갔지만, 주인의 간곡한 권유에 반 외상으로 사들인 플라톤을 나는 6월 27일 안암동 대학 도서관에서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포성에 신경을 쓰면서 읽곤 하였다. 그리고 적 치하에서 주거를 전전하면서도 나의 분신처럼 그것을 들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묵직한 가죽 장정과 한지와도 비슷한 종이에 인쇄도 선명치 못한 슐라이머마허 번역, 고딕체의 그 1804년판이 출판 문화사에 기록되는 귀중본임을 알게 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얼마 뒤였다.
또, 1.4후퇴 이후 대구의 대학 가교사 시절, 종강이 되고 여름방학으로 들어가는 날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거닐다가 마주친 조그마한 고서점에서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의 원문 대형 호화본과 [노이에 브로크하우스] 5권 한 질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을 예약하고 나서 학우들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부산의 집으로 돌아와서 부친을 졸라 책값을 타낸 뒤 곧바로 대구에 다시 돌아와서 부친을 졸라 책값을 타낸 뒤 곧바로 대구에 다시 되돌아와서 대금을 치루고 트럭에 편승하여 그 육중한 책들을 가슴에 꼭 품고 부산으로 발길을 달렸다. 또 환도 직후의 신문로, 은행나무 잎새들이 몹시도 눈부셨던 가을 날 어느 오후, 산책길에 들른 구 서울고교 맞은편 K 서점에서 오랫동안 일어역으로만 애독해 온, 독일의 인젤 출판사가 펴낸 릴케 시집 2권을 입수했던 일이 있었다. 그 릴케 시집이 박용철(朴龍喆)시인의 소장본이었음은 그날 밤으로 알게 되었다.
읽은 책의 내용은 잊은 지 오래지만 그 책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책방들과 그때의 일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간 뒤에도 생생히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70년대 초 독일행의 여권을 받은 날, 가벼운 흥분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며 나의 뇌리에 오간 것은 독일 여기저기의 고서점들과 소년 때부터 동경한 파리의 센 강변 노점 책방들의 풍경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다음날,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자 길을 물어가며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고서점들이었다. 대학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하인리히 가이스트 성당의 전차 길에 면한 한쪽 벽에 꼭 판잣집같이 보이는 서너 곳 책방들의 초라한 모습이란 6백년 학도(學都)에 어울리지 않는 정말 상상 밖의 실망스러운 풍경이었다.
책의 나라 독일에서 좋은 고서들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를 그곳 사람들은 전 국토에 걸쳤던 격심한 전재(戰災)와 특히 신설 대학들이 고서점 조합을 통해 양서를 긁어모으다시피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보물섬(?) 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가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찾아다녀 오래전부터 바랐던 책들을 적잖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독일 고서점 편력의 제일 큰 수확은 저자인 마리안네 베버가 헌정 서명한 [막스 베버] 초판본(1926)의 발견이었다. 저자의 서명일자는 1929년 3월, 그리고 내가 그 책을 입수한 날짜는 1972년 4월 12일이다. 15권 한 질의 니체 전집 값과 맞먹어 오랜 망설임 끝에 사들인 [막스 베버]는 플라톤과 릴케와 더불어 지금도 나의 귀중본이요, 좌우의 서이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미술가들에 관한 바사리(G. Vasari)의 유명한 전기가 우리말로 완역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지 오래된다. 그 뒤 여러 번 책방에 들러 찾아보기도 하고 문의도 해봤지만 출판사 이름을 모르니 전혀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책방의 점원이 되기 위해선 일정기간 연수를 받고 자격증을 따야 한다. 지금 서울에도 대형책방이 여기저기에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객을 배려하는 세심한 책방문화가 아쉽기만 하다.
책방문화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문필가들이 대형책방의 운여에 참여하는 길을 생각할 수 없을까. 구텐베르크 이후 유럽에 있어 출판, 인쇄 공방은 대개 책방을 겸업하고 저명한 문필가들이나 혹은 애서가들이 그에 관여했다. 16세기 최대의 지식이었던 에라스무스도 그러한 학장(學匠)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정말로 부러운 일이다.
이쯤에서 말라르메의 시 한 구절을 되새기며 책에 대한 나의 신앙고백을 맺고자 한다. "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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