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가 성장하는 것을, 성하고 쇠락하는 것을 보았다.
흙으로 된 안뜰과 포도덩굴과, 현관과 빗물통을 기억한다.
영어를 물려받았고 색슨어를 탐문했다.
독일어에 대한 사랑과 라틴어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엇다.
팔레르모에서 한 늙은 살인범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체스와 자스민, 호랑이와 육보격의 시에 감사한다.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옛 목소리로 그의 작품을 읽었다.
형이상학이라는 고명한 불확실성에 대해 알고 있다.
칼을 숭상했고 마땅히 평화를 사랑한다.
섬에 대한 욕심이 없다.
나의 서고에서 나간 적이 없다.
알론소 키하노일 뿐 감히 돈키호테는 되지 못한다.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사람들에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르쳤다.
달과 폴 베를렌의 선물에 감사한다.
한때 11음절 시를 시도한 적이 있다.
옛 이야기들을 다시 이야기했다.
대여섯 개의 메타포를 우리 시대의 방언으로 정리했다.
뇌물을 멀리했다.
제네바와 몬테비데오, 오스틴의 시민이며,(모든 사람이 그렇듯) 로마의 시민이다.
콘래드를 숭배한다.
아무도 정의할 수 없는 아르헨티나인이다.
앞을 보지 못한다.
어느 하나 진기한 구석이 없는 이런 것들이 내게 명성을 가져다준다는 게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보르헤스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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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7-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시를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인데, 원문으로 그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 더해 원문으로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거대한 빛에서 느껴지는 여과되지 않는 감동이 분명히 있겠지요.

하이드 2005-07-1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가 단테의 신곡을 이탈리아 원본과 영역본이 같이 나와 있는걸로 읽었다네요. 영어를 먼저 읽고 이탈리아어를 읽다보니 세번째 권즈음에선 이탈리아어로만 읽었다던가요. 맞아요. 저도요. 문법을 몰라도 입에 들어붙는 그 말을 느끼고 싶어요. 이글은 어쨌든 내용만으로도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