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라 도이치의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
음.. 이 책,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제목부터가 '너무' 재미있을 것 같잖아? 아니, 그러니깐, 제목'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뭐든 간에 '너무'는 좋지 않다.
책소개를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동화와 미스터리의 결합. 뭐 이런 이야기인가 본데, 이렇게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을 것 같은 건 역시 좋지 않다.
등등 '속고만' 산 인생은 아니지만, 이건 뭔가 대단히 '속을 것' 같은 제목과 책소개의 책을 샀다.
읽었다.
제목과 책소개에 혹해서 산 사람이라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제목과 책소개만큼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헤헤, 나는 속으로 '심봤다'를 외치며, 즐겁게 주말독서를 하고 있다.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의 배경은 '바' 다.시부야에 있는 니혼슈(일본주)만 파는 바
저자는 미식가에 애주가다. 그것도 상당한
각 단편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옛날 티비, 가수,영화, 놀이 등의 이야기는 그게 '일본꺼'라서 알아 먹는 얘기가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재미있는 걸!
일본주에 대한 박식함과 미식가에 걸맞는 안주들은 이게 '미스터리'를 위한 곁다리일지라도 훌륭하다.
등장인물은 마흔둘의 세 남자, 미식가이자 미주가인 바텐더, 범죄심리학자, 그리고 화자인 형사
금요일밤마다 바를 찾는 메르헨 전공의 미녀 여대생
이렇다.
이야기는 술과 음식과 세 명의 옛날 이야기 만담으로 시작한다.
어떤 소재에 관해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쓸 때 그게 조사해서 쓴건지, 이 사람이 원래 아는 거에서 추려서 쓰는 건지가 대강 보인다고 한다면, 이 건 후자다. 그래서 더 맘에 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식과 술에 대한 만담식 수다, 아, 셋 중에는 금주중인 사람도 있어서, 매번 특이한 물을 주문한다. '롯코에서 난 맛있는 물', '복숭아 맛 천연수', '알프스 남부 천연수', '후지산 기슭에서 난 천연수'
사실, 이 물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 중간에 에비앙도 한 번 나오긴 하는데,
"여기, 자오우 산기슭 직송 화이트 치즈. 풍부한 밀크향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지. 와사비 간장에 찍어드십쇼."
"치즈에 와사비 간장?" 나는 야마우치의 치즈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의외로 맛있었다.
"그럼 난 호로새 훈제구이." 나도 야마우치의 작전에 지원 사격을 할 작정으로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메뉴 중 하나를 아무렇게나 가리켰다.
"알았어."
마스터는 몸이 안 좋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지, 진지한 눈빛으로 접시에 음식을 담는 데 정성을 쏟고 있었다.
"여기요."
간단한 샐러드를 곁들인 훈제된 호로새가 한 입 크기로 썰려서 나왔다.
"호로새는 아프리카 서부에 사는 샌데, 유럽에서는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나는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전혀 새로운 맛으로 아주 맛있었다.
마스터가 내 글라스에 <시라유키>를 따랐다. 작전 성공.
"<시라유키>는 오래된 양조장에서 만드는데, 그 양조장은 텐분 19년 (1550년)에 창업된거야."
그렇게 술, 음식 얘기 하다가, 옛날 얘기 하고, 그러다 사건 이야기 하고, 그 중간에 미녀 여대생 등장하여
알리바이 파훼, 사건 해결
이런 패턴
단편의 마지막은 항상 이런 식이다.
"사건은 이제 해결이네."
마스터의 말에 야마우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벽에서 쥐가 우는 소리라도 들리는 것 같은데. 오늘은 그만 문을 닫아야겠어." 마스터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후에는 빈 <센주시라뵤시> 병만이 쓸쓸히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번 마지막 문단 나올때마다, 나는 약간 모자란 애처럼 꺄르르르 ~ 하며 즐거워한다. '패턴'의 힘!
동화와 연결시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 (사실은 이게 주인데 말이다 ^^;)
이게 재미 없으면 아무리 재미난 잡소리를 곁들여도 책은 꽝인데, 여튼, 메인인 미스터리가 재미있었어.
내가 이 단편집을 애정하는 이유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것들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술, 쓸데없는 만담, 농담, 반어, 대놓고 무시하기(설명하기 복잡하지만, 이런게 있다.), 숙명,
그리고 약간의 미스터리, 금요일 밤,
그러니깐, 사실,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무척 만족스럽고, 여유롭고, 즐겁다. 알맹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스터리는 환영. 빈껍데기같은 삶 자체가 알맹이가 될수도, 그 껍데기 안에는 보이지 않는 영롱한 꿈같은 비누거품들이 잔뜩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쉽게 사라지지만, 예쁘고, 고귀하다. 하나가 터지면, 또 하나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보글보글 영롱한 비누방울 같은 삶이 꽉 차 있는 껍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