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670여페이지에 달하는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고, 이 책은 꼭 이 분량이 되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아니겠는가,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배경은 이름부터 으스스한 툼스빌, 장의명가인 발리콘가인것을.   

이 책을 세대를 걸친 가족간의 갈등으로 읽어도 좋고, 본격추리소설로 읽어도 좋고, 기이한 탐정(정말로! 지금까지 절대 본 적 없는!)이 등장하는 독특한 추리소설로 읽어도 좋고, 좀비문학으로 읽어도 좋고, 미국장의문화에 대한 참고서로 읽어도 좋으며, 죽음에 대한 명언집이나 사색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다만, 가볍고 술술 넘어가는 일본추리소설을 기대하지만 않으면 된다.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린은 반은 일본인, 반은 미국인인 펑크족 젊은이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을 받기 위해 툼스빌로 들어가게 된다. 그린과 어울리는 체셔는 역시 펑크족으로 발리콘가의 장남인 존 발리콘이 처를 버리고 결혼한 이자벨라가 데려온 딸이다. 그린과 체셔는 죽이 맞아 뉴욕에 놀러갔다가 핑크캐딜락(장의차)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문의 수장인 스마일리가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들이 하나둘씩 죽는다. 그린, 자신을 포함해서. 그러니깐, 이건 좀비탐정이 나오는 이야기인 셈이다.  

제목,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은 처음, 이 책을 찜하고, 사기 전에는 도통 머리에 안 들어오는 제목이었다. 시체가 살아 있다고? 근데, 그 '살아 있는' '시체'가 '죽는다'고? 그러나 이 긴긴 책을 읽고 나면,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은 정직하고, 적나라하고, 의미심장한 좋은 제목입니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굿굿굿이에요.  

이 소설의 미덕은 너무 많아서, 한번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죽음'에 관한 각종, 그야말로 각종 이야기들. 고대철학에서 밥딜런의 노래가사까지, 장의명가(3대가 장의사업에 종사한)에서 살면서 가족들이 각각 지녀온 죽음에 대한 생각들.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시체가 살아나는' 이야기다. 기현상으로 시체가 살아나는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는 추리소설적인 측면에서 말도 안되게 언페어한 전제를 깔고 이야기가 시작되는거다.  전제를 납득하고나면, (이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굉장히 납득이 된다.) 이것을 단순히 좀비소설로만 볼 수도 없다. 좀비가 나오는건 맞는데, 좀비소설에 거부감이 있다고해도, 너무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되서,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이긴 하지만, 이걸 좀비소설이라고 절대 부르고 싶지 않다.  

이야기는 심지어 유머러스하다. 온통 죽음이 널린 곳에 '유머'라니, 블랙코미디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이야기는 왜려, 본격추리소설에 가깝다.그러니깐 이것도 미덕중 하나. 밀실살인에서 알리바이트릭, 등등의 본격추리에 본격추리 오마주에 순수하게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특별종합선물세트 같다. 작품 속의 유머는, 그러니깐, 웃긴말을 써서 웃긴게 아니라, 상황이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부분의 사람은 일단 웃고 보는) 그런 상황들이 대차게 등장하는 것.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끝까지 뒷심까지 잃지 않으니, 소리소문없이, 작년 최고의 추리소설 타이틀을 딸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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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10-01-0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뽐뿌 강도 매우 높슴다.

하이드 2010-01-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냐님도 좋아하실것 같아요. 강추입니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