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이 책에서 읽었던 것을 다음 책에서 발견한다던가, 이 책에서 나왔던 누군가가 혹은 장소가 다음에 읽게 되는 책에 나온다던가 하는 유일한 독자인 '나'만이 발견하고, 즐거워라 하는 그런 우연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닐 게이먼의 <네버웨어> (런던 지하도시에서 일어나는 고딕시티판타지물)를 읽고 나서, 이기중의 <유럽맥주견문록>을 읽는데, <네버웨어>에서 나왔던 중요한 열쇠를 얻기 위해 찾아갔던 블랙프라이어(blackfriar) 역이 나온다. 이기중의 책에서 <네버웨어>에서 처음 봤던 런던의 블랙프라이어역이 떡하니 나오면서, 블랙프라이어역이 있는데, 검은수도사란 뜻이다. 라는 설명이 나오면, ' 나 이거, 알어! 알어!' 하면서 괜히 반가워 하는 식. 

혹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을 읽다가 식물학자 플리니우스 이야기가 나오면, 아, 얼마전 <위대한 박물학자>에서 봤던 로마의 플리니우스! 하면서 즐거워하는 식.이다. 사실 <위대한 박물학자>를 읽고 나면, 그 후에 읽는 많은 책에 영향을 끼치긴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오노레 드 발작의 <나귀가죽 Magic skin> 에 조르즈 퀴비에에 대한 장광설이 나오는데, (실제 발작이 조르즈 퀴비에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고생물학의 창시자인 조르즈 퀴비에, 역시 <위대한 박물학자>에서 멋지구리한 아프리카검은 따오기 뼈대삽화와 함께 보았던 것이다.  

 

  

 

 

뭐, 워낙 책을 많이 읽으니깐, 이건 우연도 뭣도 아니고, 필연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금 만난 우연에는 꽤 놀랐단 말이지.

지금 내가 간만에 무지 흥분되는 책을 만났다. 이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쓰려고, 두 개쯤의 길디긴 페이퍼를 '임시저장' 해 놓긴 했는데, 맘에 안 들어서, '올해의 책', '수년간 나온 프랑스에 관한 가장 멋진책' ,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세이', 등등을 생각하며, 아껴서 꼭꼭 씹어 읽고 있는 책이다.  

 

 

 

 

 얘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긴 하는데, 막상 이야기하려니 뭐부터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그래서 이야기 못하고,
계속 입만 긁고 ... 는 아니고;;  

무튼, 이 책은 파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뉴요커 기자인 저자가 파리에서 5년간 (1995-2000) 거주하면서 느낀 일들을 쓴 책이다.  
정치,문화,경제,인간, 도시,인문, 등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예사롭지가 않다. 분명 잠깐 들리는 '여행'과 그곳에서 '거주'하는 것은 다르다. 크게 봐서 집 떠나서 먹고 자니 '여행' 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멋진 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글, 생각거리들을 부르는 글.들이다. 글 자체도 조근조근하지만, 각 챕터의 완성도가 놀랍다. 가벼워서 후 불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목차의 제목들과 '파리에 중독된 뉴요커의 유쾌한 파리 스케치'라는 카피에 별 기대도 안하고 집었던 책임에도 불구하고, 대만족.  

한챕터씩 그야말로 '아껴' 읽고 있다. 방금 읽은 챕터의 제목은 '프랑스제 원격오류' 

'무엇을 만들어도 필립 스탁이 만든것처럼 만드는 프랑스인들이 만든 프랑스제 팩스'는 그런대로 효율적이지만, 그 조그만 창에 뜨는 그날의 사건 사고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로 시작하는 이 글은 프랑스인, 미국인, 프랑스의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이 챕터의 소챕터중 '이방인의 외로움' 에서는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의 외로움은 약간 색다르고 복잡하다. 자유롭고 탈출했다는 기분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얼마전 읽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외국에의 거주, 생활과 여행에 대한 생각들을 하면서 책을 덮고, 다음 책으로 넘어갔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쿠엔틴 타란티노>, <파리에서 달까지>, 발작의 <나귀 가죽>, 그리고 이제 새로 읽기 시작한 장정일의 <구월의 이틀>이다. 무지 맘에 드는 책을 읽다가, 그닥 내키지 않는 책을 심드렁하게 펼쳐들었는데, 첫 페이지가  

   
 

어느 도시로 여행을 가는 것과 그 도시에 살러 가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아무리 작은 이사라도 소풍처럼 간단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도시에서 자신이 몰랐던 욕망을 정확히 알게 되고 그래서 그 도시와 하나가 되고, 또 다른 사람은 환멸을 배우거나 혼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로 시작한다.
제목가 작가 이름만 보고 샀던 책이라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고, 첫 다섯줄 읽은 정도라,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짐작도 안 간다만, 방금까지 읽고 있던 <파리에서 달까지>에서의 감성이 뜬금없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기분이라, 아마 후에라도 장정일의 책을 보면, 애덤 고프닉이 떠오르겠구나. 싶었다. (책의 내용보다, 책과 관련된 사소한 사실들을 더 잘 기억하는 나;;)

아마, 장정일의 책은 파리의 뉴요커가 쓴 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만, <파리에서 달까지>의 책장을 덮고, <구월의 이틀>의 책장을 펼친 나에게는 우연 중의 우연.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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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 2009-11-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제가 모르는 책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니 아직 저의 독서가 많이 부족함을 느낌니다. 관심있는 분야가 달라서일지도 모르겠지만요. ^^

저는 책과 책사이의 우연보다 책에서 말하는 책을 찾아읽기는 책 사이의 필연을 즐기는 편이랍니다. ^^;; 그러다가 가끔 제가 읽은 고전을 요즘 시대에 쓰여진 책에서 언급을 해주면 왠지모르게 반가움을 느끼기도 하구요.

아직 저는 읽지 않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인 1q84을 보면 조지 오웰의 1984가 읽고 싶어진다고 하더라구요. 아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할때면, 왠지 내가 대단해 보이는 느낌이 ^^;;;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

하이드 2009-11-1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찾아서 읽기도 해요. '체인 리딩' 이라고 나름 이름도 붙였다죠.( 체인스모커에서 따와서) ^^
하루키의 1q84 진즉에 사고, 조지 오웰의 1984 먼저 읽고 읽으려니, 조지 오웰 책이 영 진도가 안 나가서, 둘 다 못 읽고 있어요-_-;; 다음주 정도까지는 읽을 계획이지만, 이 계획을 매 주말마다 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