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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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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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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은 책 속에서 유대인 아버지가 하는 보석상의 이름이기도 하고, 이 앞에서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죽음과 사고로 죽지 않을 정도로 운이 좋으면 겪게 되는 노년의 보통사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달력의 날짜와 관계없이,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계절은 겨울을 향해 빠르게, 혹은 천천히 쉼없이 가고 있으며, 한 장 남은 달력은 이제 올해도 다 가버렸음을 알려준다. 이 계절에 의도치않게 죽음에 대한 글들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필립 로스의 책은 그 중 수작이다. 장례식, 병원, 수술, 약, 더 이상 젊지 않은 늙음, 이별, 죽음 등을 짧고 굵게 풀어 놓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것 같은 '나의 노년'과 '나의 죽음'을 쉬이 떠올려보게 된다.
뉴욕에서 광고쟁이 20여년, 9.11 후, 그 곳을 벗어나 평소 꿈꾸던대로 해변가에 자리를 잡고,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며 보내게 된다. 건강하고, 돈 많고, 50여년동안 한 여자와 네 아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는 자상한 형 하위. 언제나 완벽했던 형을 존경하고, 사랑한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가 기질의 동생. 세 부인과 자신을 증오하는 두 아들, 그리고, 완벽하게 착한 성격의 딸 낸시가 있다. 돌이켜보면, 후회로 가득한 인생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고 생각한다. 젊었을때 자신의 선택들에 대한 결과인 '현재'에 굴복하고, 순하게 살아가지만, 어딘가 아파서 매년 수술을 하고, 인공기구들을 달며, 체념의 노년을 연장해 나가는 것은
쓸쓸해 보인다.
사실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포옹은 혹독한 슬픔을 자아내, 견딜 수 없는 외로움만 더 사무치게 할 뿐이었다. 물론 외롭게 살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건 그였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롭게 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상태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을 어떻게든 견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니까,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넘쳐났던 과거를 게걸스럽게 돌아보다 마음이 사보타주를 일으키는 것을 막으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107 -
'나'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노년에 관하여 죽음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죽음은 죽음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라고 말하거나,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묻히는 것이 어떤것인지 알'게 된다거나 죽음에 관한 담담할 수 없는 결말에 관하여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격정, 분노 보다는 외로움과 슬픔, 체념과 후회로 범벅이된 노년이다. 평범한 사람(에브리맨)들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지고 있지만, 노년의 '평범한 사람(에브리맨)들에게는 '미래'는 거의 없고, '현재'를 잠식한 '과거'가 있을 뿐이다.
흔해빠진 '죽음'의 이야기. 흔해빠진 '노년'의 이야기. 겁이 덜컥 나기도 하고, 깊이 공감하기도 하고,
굵고 짧게 경험하는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
유쾌한 주제는 아니고, 파도같이 감동이 밀려온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짧은 이야기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아마, 이 계절에 어울린다.
* 리뷰 제목은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