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백하건데 나는 정치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20대 청년이었다.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뉴스와 대중매체로 간간히 그 소식을 접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정치가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대중들의 현실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는 자신과 당파의 이권이 걸린 싸움에 더 집중하는 추태를 종종 목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고 대중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권의 전략적 모략이라는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점차 시작하면서(흔히 밥벌이라고 한다) 내가 처한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우리 한국사회가 떠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들을 내가 살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 대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독하고 있는 경제신문에서 그냥 지나치던 정치기사를 조금씩 읽어보기 시작했고, 거시적인 정치권에 대한 풍경을 미흡하게나마 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나는 꼼수다'에 대해서 다룬 오마이뉴스의 특집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저 흥미가 생겨서 청취하게 되었다. 묻혀져가다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BBK 사건의 내막부터 시작해서 현 정권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들과 비리들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어서 나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여지껏 이렇게 적나라한 방송이 없었거든. 꼼수 4인방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중간중간 섞여있는 농밀한 수준의 발언들은 '혹여 이 사람들 이러다가 잡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방송(엄밀히 말하자면 전파통신이지만)이 대중들의 입소문을 타고, 일반 대중들의 미충족된 욕구를 해소해주기 시작하자 정권에 일침을 가하기도 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염두에 둘 것은 이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100%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식견과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을 해보기도 하고, 그들이 자주 언급하듯이 '소설'을 쓰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정계의 대략적인 흐름이 '이렇게 흘러가는 구나' 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대응을 해야하지만 너무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닥치고정치'라는 이 책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읽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어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가 괴짜에 기인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가지고 있음에도 다소 거친 그의 언행과 태도로 인해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꼼수'와 이 책을 통해서 그가 말하는 '무학의 통찰'이 충분한 정치적 식견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다소 복잡해보일 수 있는 정치적 사안들을 일상의 언어(솔직하게 말하자면 김어준 자신만의 언어)로 단순명쾌하게 풀어낸다. 조금 과격해보이거나 우스워보일 수 있는 표현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상황을 서술하기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어쨋든 그가 깨달은 무학의 통찰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다.(개인적으로는 점쟁이를 했어도 성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가수 우승자를 번번히 맞추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정치, 사회적 내용들이 그리 가벼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편하다'. 당연하게도 MB정권이 추구하는 '공정한 사회'라는 이상과 비전은 그저 대국민 제스쳐이며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좌파와 우파의 개념에 대해 김어준 자신의 식견을 바탕으로 서술한 1장, BBK 사건의 흐름에 대해서 파헤치는 2장, 삼성을 필두로한 재벌의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쓴소리를 내뱉는 3장, 현재의 정치적 트렌드를 파악해볼 수 있는 4장, 내년 대선을 미리 점쳐보는 5장과 6장을 읽어 나가면서 우리 사회의 권력가에 대한 분노를 느끼기 시작해서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감탄한 것은 인간에 대한 김어준의 통찰력이다. 그가 접하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개인의 캐릭터를 패턴화해서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게 썩 그럴듯한 설득력을 갖는다. 한마디로 사람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꼬투리가 잡히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구석도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아웃사이더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셈이지. 스스로도 그러한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막상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 느꼈던 불같은 분노감은 누그러져 온데간데 없다. 다만, 조용히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냉철한 분노감이 느껴진다. 시위활동과 같은 격렬하고 폭력적인 것이 아닌 이성적인 분노감(?)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한 세태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하는 진중한 시민의식이 밑바닥에 깔려야한다고 생각한다. 한때의 뜨거운 분노보다는 조용하지만 침착한 분노의 표출이 더 무서운 법이다. 절차와 규정을 준수하면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스스로 되찾고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고자 할 때, 이 땅의 부조리한 권력가들은 더 이상 몸을 숨길 곳이 없을 것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나와 같이 정치와 사회문제에 둔감했던 사람들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새로운 서울시장의 선출로 봐도 그렇고(2012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사람들의 소통과 새로운 유대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즉, 시민의식이 성숙해질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가 일종의 유행같이 보일 수 있지만(인간의 행동학적 관점에서 소속감은 인간 행동의 중요한 동기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람들의 작은 관심으로부터 세상의 변혁이 시작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쉬운 점은 나꼼수 4인방의 행보가 대중들의 인기에 힘입어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무급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전파하는 그들의 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4인방의 저서를 홍보하고 무작정 정권을 비판하기만 해서는 한계점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요즘들어 방송내용의 밀도가 떨어지고 책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종종 귀에 거슬린다. 편파적인 방송이기에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인 파장은 상당하다. 실제로도 책의 판매량이 상위권에 랭크되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느 한편으로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서는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서 이 책에 대해서 간략하게 평가를 내리자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오게 된 그 구조적인 모순을 재치있고 단순명료하게 풀어낸 '참고서'라고 평가한다. 거칠고 순화되지 않은 표현들이 난무하지만 역으로 대중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대중들의 인식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집중시킨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다. 비록 그것이 전략적 마케팅의 관점이었다 할지라도.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