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나의 로망은 핫 핑크 컬러로 염색을 하고 출근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나는 개성 있는 것을 좋아한다. 반대로 똑같은 롱패딩, 똑같은 시스루 뱅, 똑같은 투블럭 컷, 똑같은 트렌치코트를 싫어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개인의 개성과 중심보다는 집단과 사회에 순응하도록 기반이 구축되어 있다. 서양 교육과 문화가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느끼면서 막상 바꾸려는 시도는 안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도 않고. 기득권층의 권위의식, 갑질하는 기업들 앞에서 사회의 약자들은 어차피 안 바뀔 것을 아니까 나설 필요도 못 느끼며 내 의식주나 잘 해결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다. 이런 인식과 판단과 관념들이 굳어져 버리면 점차 기계처럼 되어, 요즘 말로 태어났으니까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광고 카피라이터인 박웅현은 마음에 가뭄이 들어 아무것도 심지 못하는 이 세대의 삐에로들에게 행복과 가치와 꿈에 대하여 기록했다.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총 8개 주제의 강의들이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모든 내용은 결국 첫 주제인 ‘자존‘으로 연결되고 결합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살면서 놓치고 있는 것들, 떨어뜨린 걸 보고도 줍지 못한 것들, 기회인 걸 알고도 뻔히 붙잡지 않았던 것들을 짚어보도록 하자.


자존감에 대하여 좋은 예시가 있는데, 미국의 유명한 모델에게 사회자가 ‘당신은 왜 문신을 안 하나요?‘ 하고 묻자 ‘벤틀리에 스티커 붙이는 거 봤어요?‘라고 답했다. 과연 그 사람이 현재 탑 모델이기에 가능한 발언이었을까? 나는 키도 작고, 못생기고, 인기도 재능도 없으니까 당당해하면 안 되는 걸까? 스스로 루저를 만들지 말자. 나는 그냥 나일뿐.  우리는 이런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자들은 군대 가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중간만 해라. 이 말은 잘해봤자 담당업무만 늘어나 본인만 피곤하게 된다는 뜻인데 군대뿐 아니라 학교나 회사들도 전부 똑같다는 게 함정이다. 누군가가 발표를 하면 잘하는 면보단 못하는 면이 더 잘 보인다. 그래서 잘하는 것을 부각시키고 발전시킬 노력보단, 단점을 가리는 것에 급급하고 그냥저냥 무난하게 흘러가길 바란다. 선진국들은 개인의 장점과 끼를 마음껏 표출하는데 비해 한국은 오히려 숨겨야 한다. 단점과 콤플렉스에 당당해지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저자의 말에 나는 마음이 녹아내렸다.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회사 동료들이나 아는 지인들에게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똑같은 대답이 온다. 영화, 게임, 술자리, 노래방 등. 꽤 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전부 단순하고도 짧은 대답뿐이었다. 반대로 질문을 받으면 나는 김경호 음악과 락을 좋아하며, 스릴러소설을 좋아하며, 마블 영화를 좋아하며, 음식은 일식 중에서 돈부리를 좋아하고, 카페에 앉아서 비 오는 광경을 보는 것과, 소년만화와, 놀이공원의 아틀란티스를 좋아한다... 이런 대답을 하는 순간, 나는 상대방에게 피곤한 인간으로 낙인찍혀버린다. 나는 이런 현상들이 자신을 잃어버린 병든 사회로 보인다. 자신에 대해서 전혀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는 ‘대박 맛있다!‘ 가 끝이고, 누구는 ‘소스가 독특하고 맛이 담백해서 저번에 갔던 집보다 여기가 더 낫다!‘라고 한다. 책 리뷰도 마찬가지. 누구는 ‘짱 재밌다, 반전 대박!‘ 이 표현의 전부이고, 누구는 작품의 주제의식,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들을 표현하며 저자가 말하는 ‘소통‘을 시도한다. 사는데 있어서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건강한 소통은 정말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충격 먹었던 뉴스가 한국운동선수와 외국 운동선수의 인터뷰 비교 장면이었다. ‘오늘 경기 어땠나요?‘라는 같은 질문에 한국운동선수들은 생각을 정리 못하고 버퍼링도 심해서 말을 더듬거나 뚝뚝 끊기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 운동선수들은 질문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고 싶은 말을 잔뜩 쏟아낸다.  설마 경기하는 동안 인터뷰할 말을 미리 생각해둔 걸까? 절대 아닐 것이다. 어째서 국내와 해외는 왜 이렇게 달라도 많이 다를까. 한국은 어릴 때부터 선택의 자유가 없는 나라다. 정해진 코스대로 가길 강요받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에 나를 돌아볼 겨를이 점점 줄어든다. 행복을 찾지 못하면 갈수록 기계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에 갈증을 느끼던 나는 4번째 강의인 ‘견‘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저자의 말대로 평범한 것들을 소중하게 느낄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가르친다고,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군 휴가 복귀날 탔었던 버스에서 바라본 집주변과 동네의 풍경들이 갑자기 정겹고 사랑스럽게 다가온 기억이 있다. 몇 년이나 무심하게 봐왔던 거리가 이렇게 새삼 특별해질 수도 있음을 떠나는 입장이 돼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저자가 말한 ‘발견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전부 특별해진다‘라는 뜻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소설 리뷰는 많아봐야 고작 몇 십 개인데 인문학 리뷰는 몇 천 개나 되는 걸 볼 때마다 한국 사회는 확실히 병들어있다고 생각된다. 사는 데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나랑 뭐가 달라서 특별한 게 아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 게 아니라 너와 나는 같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그러니 단점에 지배되지 말고 ‘나‘라는 존재를 사랑해주자. 우리는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秀映 2018-04-24 0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은 도끼다 읽고는 이 작가 맘에 안들었는데..
이 책 물감님 글보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궁금증이 모락모락 ㅎ

물감 2018-04-24 07:10   좋아요 1 | URL
저는 그책은 안읽었지만 이 책은 참 좋았어요^^ 짧아서 금방 읽히니까 추천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