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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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주인공이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가기위해 겪는 그 수 많은 절망이 현실에선 그저 누군가의 일상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 일상을 겪어 보고서야 깨닫는다.

일상. 어제를 지나 오늘로 오늘이 다시 내일로 흐르는 이 시간이 시한부 선고를 듣는 순간의 극적임없이도 충분히 버겁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 보고서야 알게 된다.

 

비.행.운. 비행기가 지난 자리에 하얀 흔적으로 남는 이 묘한 구름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이 책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 일상은 바로 지금 '네'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지 사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너희만큼은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네일아트를 받지만 정작 누구도 그 손톱을 신경쓰지 않을 때의 무안함.

매일 면세점을 통과해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항 화장실을 청소하다 문득 사식을 넣어달라는 아들의 편지를 읽을 때의 막막함.

재개발이 시작되는 동네 사라지는 건물 속에서 곧 태어날 아이와 겪어야 하는 하루하루의 불안함.

혹시나 했던 첫사랑의 연락이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려했다는 그 허망함.

원한 것은 생계를 위한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넘치는 연봉이었을 뿐인데, 어느 새 어린 옛 제자의 자신과 똑같은 작은 욕심과 생을 이용하고 말았다는 말할 수 없는 참담함.

 

작가의 8편의 이야기는 어쩌면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읽고 지나쳤을 수 있는, 혹은 전해 듣는 순간에는 잠시 짠해지다가도 내 이야기가 아니라면 잊혀지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이 책은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과는 달라도 그럼에도 '나'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서 읽을 때는 철렁하게 그리고  읽고 나서는 먹먹하게 만든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화려한 것 같은 그 순간을,

오늘이 힘겨워서가 아니라 내일도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절망이라는 것을

그리하여..결국에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나만 몰랐던 사실 하나와 마주한다.

결코 달가울 수 없는 이 사실을 울지 않고 큰 일렁임없이, 찬찬히 읽어 내려 갈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이 책을 권하는 첫 번째 이유다.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지금 2012년 우리 사는 세상을 조금만 관심있게 봤다면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공감하기 어렵지 않고 깔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단편 소설이 가지는 다양함이라는 매력과 한 편의 소설집이 가져야 할 통일성까지 갖춘 이 책은, 여러 가지 전혀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읽힌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자, 그럼 이제 동화같은 마무리를 해야 하나?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고, 무지개를 너머 건너간 저 곳은 찬란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 ..이 소설집은 그랬을까? 책을 읽고 살아갈 힘을 불끈불끈 솟게 하는 그런 책이었냐고 묻는 다면, 나는 당연히 'NO'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의 중심은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들. 이다.

어설픈 희망을 주어서가 아니라, 달콤한 말로 마무리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중 누군가는 희망을 잡을 것이고, 누군가는 제 자리를 멤돌겠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 것.

 

아마도 당신의 비행운은 나의 것보다 더 희망차고 더 명확할 수도 있다.

아니면 조금 더 흐릿하고 더 깜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멈출 수는 없다는 것.

아아..그래서, 누구나 '이 빌어먹을 인생'이라고 욕을 할 수 밖에는 없다는 것.

여기까지가 나의 '비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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