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불어넣기 아시아 문학선 8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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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을 부추기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숲 쪽에서 지붕 너머로 왕얼룩나비가 날아왔다.
타오르는 불길 위를 휘돌던 나비가 마당을 너울너울 날아다녔다.
날개가 흰바탕에 검은 줄무늬인 나비는 문득 날갯짓을 멈추는가 싶더니 V자로 접고 천천히 내려와, 깨진 조작 오목한 곳에 어린 빛에 입을 갖다 댔다.
숲과 강가와 밭 쪽에서 나비들이 줄줄이 모여들었다.
제비나비, 청띠신선나비, 가랑잎나비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비들까지 포함해 수십 마리의 나비 떼가 마당을 날아다니다 흩어진 단지 조작 위에 내려앉았다.
파편을 뒤덮은 가지각색의 나비 날개들이 나풀거렸다.
노랑 머리띠를 두른 청년이 불 속으로 잡지를 던져 넣었다.
불꽃이 튀어 올라도 나비 떼는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개 빛깔들이 아름다웠다.
파란 여름 하늘 안쪽에 아직 이 세계로 내려오지 못한 무수한 나비들이 날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흰 플라스틱 테이블을 노천에 늘어놓은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도 먹고 사진도 많이 찍어 주었어.
친구한테 빌려 온 카메라로 해양 박람회장을 배경으로, 혹은 바다, 호텔 앞, 도료 옆에다 나를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지.
나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 사진은커녕 어릴 적 사진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다 큰 뒤에 찍은 사진도 거의 없었으니까 무척 기뻤단다.
지금 내 모습이 남는 다는 생각을 하니 신기하기조차 했어.
사진 찍는 것 따위로 너무 수선을 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기뻤던 거야.
그 사람이 나를 찍어 준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좋았어.
다만 그 사람과 함께 찍지 못한 게 무척 아쉬웠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는데.
딴 사람에게 찍어 달라고 했으면 좋았으련만,
함께 찍자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어.
그게 지금까지도 너무 후회스러워.
얼마 후 그 사람은 떠나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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