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사겠다던 치자나무는 여지껏 못 사고, 그저 꽃들만.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장터에는 일년 열두달 꽃과 나무를 파는 부부가 있다.
사라는 말 한 번 없이, 투박하게 꿋꿋이 손님이 묻는 질문에만 답하는 부부는 다른 건 몰라도, 꽃 하나는 좋다, 라는 자부심이 있다는 표정인데. 정말 그 부부에게 산 화분들은 낯가림없이 꿋꿋이 잘 자라주고.
그걸 아는 동네 사람들은 화요일마다 좌판꽃집에 몰려든다. 사시사철 손님이 많은 편이나, 특히나 요즘같은 봄날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분갈이도 해주고, 꽃과 어울리는 화분도 골라주고, 깍아달라는 말 없어도 천원씩 덜 받는.
그 덕에 화요일마다 나는 그 좌판꽃집을 어슬렁거리고,
지갑 사정도 잊은채 화분을 들이고 있다.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꽃 이름이
디모라 포세카
라는 꽃이란다. (꽃 살때 물어보았으나,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겹카랑코에의 진가를 안 뒤에 다시 새초롬한 녀석을.
이건 카랑코에.
그리고,

밤의 수국.
보라색과 흰색 수국을 좋아하나, 보라색은 없었고. 흰색은 건강하지 못한 것들이어서, 분홍과 파란색을 데리고 왔다.
두 아이들이 하나씩 자기 화분으로 하겠다는 걸,
안된다고, 이건 엄마 화분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훗날,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화단이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수국과 라일락나무를 심어야지.
요즘, 아파트에서는 라일락꽃 냄새가 진동을 한다.
몰랐을 때는 몰랐던 것이, 알고 나니 계속 보이고 계속 맡아지게 되더라.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한여름이었고, 오늘은 가을날같다.
비도 오시고, 공기도 차갑다.
이 녀석들 춥지 않을까, 실내에 들여놓아야 하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 앞에서 서성였다.
스님은 모두 소유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라 말했는데
그 괴로움을 사서 짊어지는 내 스스로가 딱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집에 살아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아침이면 어제와 아주 조금씩 달라져 있는 것들을 만난다는 것이 황홀하고, 감격스럽다.
혹자는, 결국 온실 속의 화초 아니냐고, 그런 것으로 생에 대한 이미지로 확대하지 말라는 일침을 주기도 했으나
아는 것만 알고, 보이는 것만 보이는 나로서는,
그저, 저 꽃들과 꽃들이 대견하고 안쓰럽고 또한 아름답기만 한 것이다.
비가 오고.
마음 같아서는 외출도 좀 하고 싶지만, 결국 내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문장을 읽고, 자판을 두들기다가, 문득, 저 아이들이 심심해하진 않을까 싶어 베란다를 기웃거리다 들어왔다.
소유의 욕망이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괴로움을 달게 가지기로 했다.


낮의 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