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 아침, A호선에서 B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 우글우글 사람들과 부대껴지는 그 시점. 읽던 책을 덮(거나 끄)고 숨을 한번 들이킨다. 책을 펴는 것 조차 민폐가 되는 좁은 간격의 인류 속으로 몸을 우겨 넣으면 오늘의 ‘일’이 시작된다. 일하기 위한 정신상태로 무장하기.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것 처럼, 나의 어떤 자아는 접어서 개워 넣고 다른 종류의 자아를 꺼낸다.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자아와 내 몸을 잊는 자아다.

부대껴오는 모든 몸들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처럼 안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면 말이다. 이 한칸의 객실 안에는 얼마 만큼의 사람이 탈 수 있을까? 100명, 200명, 설마 300명?... 세보진 않았지만, 300명 넘을 것 같다. 가끔 파업이 있거나, 지하철 연착이 되는 날이면 없는 인류애를 발휘하며 사람들을 아주 깊숙히 끌어안게 된다. 숨이 막힐 정도의 진한 포옹이다.

지하철 파업이 이어지던 날의 출근 길이었다. 한발 재겨설 틈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자 누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와, 미쳤나봐. 진짜.” 만약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귓속말을 해줬을 거다. “안미쳐서 타는 걸거예요, 아마” 미쳤으면, 이 고생을 해가며 일하러 안나가겠지.

“(14) 오늘날 ‘생계를 꾸리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기 보다는 자연 질서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매일, 매일 또 매일. 출근길의 지하철을 탄다. 그때 마다 내 옆의 이 사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내 몸만을 생각할 수도 없다. 모두들과 나까지 배려하려 들면, 그걸 지하철에서 매일 아침마다 해야한다면, 나는 아마 정말로 미쳐버릴 것이다.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몸의 존재 자체를 잠시 잊어버려야 하는 회사원 300명 x n명.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일을 하러 가는가?

“(12) 하지만 보통의 시민이 일에 쏟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일로부터 회복하는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을 위해 훈련하고 조사하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여)만을 간단히 따져 보아도, 일의 경험은 좀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


2.

엘리베이터에 탈 때는 나의 본모습과는 조금 다른 자아를 장착한다. 앞으로 퇴근 시각까지 ‘잘 웃고, 잘 울고, 화내고, 생각이 많은 나’는 밀어 넣어둔다. 자주 웃으면 실없어 보이고, 회사 사람들에게 우는 ‘여자애’로 프레임 씌워지기는 정말 싫으며, 화를 폭발시키면 해고 당할 것이고, 생각을 하게되면 일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13) 일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은 통치자와 피통치자라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로 말려들어 간다. 실제로 직장은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가장 직접적이고 명료하며 실체적인 권력관계를 흔히 경험하는 곳이다.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정치적인 현상으로서 탐색할 여지가 많은 대상이다.”

회의시간.
대표는 결과물로 말하라고 이야기한다. 업무는 효율적으로, 대답은 큰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하품을 참는다. 빈틈을 보이지마. 퇴근 시각까지는 너희의 시간을 산 것이므로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빻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말이 틀려?” 질문에는 고개를 젓는다. 일과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다. 귀담아 듣는 ‘척’하기. 일이 하고 싶은 ‘척’하기. 왜 모든 대표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회사라면서, 뭘 저렇게 가르쳐주려는 걸까. 저는 일을 배우고 싶지, 인생을 배우고 싶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그게 일이다. 당신의 노오력과 뛰어남으로 성공한 이야기를 새겨듣는 ‘척’ 하는 일. 경청과 싹싹함으로 무장한 직원에게 나가는 월급은 덜 아까울 것이다. 나는 그의 환심을 사야 한다, 악착같이. 필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하다보니 어느덧 이게 척이 아니라 나의 진심은 아닐까하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그가 가르쳐준 (다른 의미의) 인생공부를 배워버렸다. 복종하면서 자발적이라는 연기까지 끼얹어 복종하기. 아아, 나의 일. 혹은 사회생활.

“(14) 일터는 사적 영역으로, 사회구조보다는 일련의 개별 계약이 낳은 산물로, 정치적 권력 행사의 장이 아니라 인간 욕구의 영역이자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3.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면 일에 집중한다. 사실 아침 회의에 비하면 본격적인 일은 훨씬 수월하다. 물론 어렵다. 힘들고. 그런데 일은 일만 보면 된다. 굳이 윗사람들의 들볶아댐이 없어도 나는 내 노동이 투여되는 과정와 결과물을 좋아한다. 사실 일을 좋아하고 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기쁘다.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많다. 그런데 아침에 혼을 빼앗기고, 하루 종일 일에 절어있다가, 어찌어찌 퇴근을 하고 또 한 시간을 꼬박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일에 질려버린다. 그래서 일이 싫다.

자아를 개워 넣는 것은 쉬웠는데 본디의 자아를 다시 꺼내서 입는 것은 어렵다. 일 모드에서 스위치를 끄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회복의 시간은 어떤 루틴을 거쳐야 한다. 나는 일년 넘게 동네 요가원에 다니는 중인데, 요가를 마치고 돌아와 씻고 나면 이제서야 분리된 자아가 합쳐져 온전한 내가 된 것 같다. 잠에 들기까지 한 시간 가량, 책을 읽거나 일기나 글을 쓴다.

“(12) 결국 최고의 일자리조차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확실히 해 두자. 우리가 이런 조건을 그저 체념해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이상할 것은 없다. 의아한 것은 이렇게 일해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기꺼이 일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야근이 많아서, 회식 때문에, 생리중이라, 친구나 가족과의 만남이 있어서, 너무 들볶여 피곤이 극에 달해서, 요가를 가지 못할 때 생긴다. 일하는 자아에서 원래의 자아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로 시체처럼 잠을 잘 수 있는 주말만을 기다려야 한다. 자아를 갈아입지 못한 나는, 시간이 생겨도 그냥 멍을 때린다. 에너지 소모가 제일 적은 (그러나 재충전은 되지 않는) 유튜브 보기나, sns에 좋아요 누르기, 인터넷 쇼핑하기, 그러다 스르르 잠자기. 회복이 안된 나는 별로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나 자신을 모르는 상태. 욕구 불만의 상태.

심리상담 이후 버리고 싶지 않은 습관이 생겼는데, 독서와 일기다. 정확히는 그를 통한 스스로를 공부하는 시간 갖기. 그 시간들을 꼭 만들어내야만 덜 불안하고, 덜 우울하다. 일을 잘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반드시 그 과정들을 통해서 나를 돌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덧없이 분주하던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금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살지 않는 것이 낫다고까지 생각한다. 내가 일(정확히는 임금노동)을 하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그 시간들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언제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일해야한다. (그럼 기운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결국 ‘일’로 보상받고 싶어지고, 인정받고 싶어진다. 인정받아 직급과 연봉이 올라갈 수록 그에 맞추어 일을 더 잘해야 하고 많이 해야할 거다. 일에 바빠 일하는 ‘나’는 돌보지 못하는 상태로, 나 자신을 몰라 분열하는 나로 다시 돌아가겠지.

일에서,
도망 칠 수는 없을까.
왜, 일이란 적당히가 없는 걸까.

“(62)일에 맞서 삶을 지키려는 더 광범위한 정치적 노력,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삶을 누리기’위한 노력의 일부로 두가지 요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일 대 삶’이라는 표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표어는 반노동 정치를 위한 힘센 프레임을 제시하고 탈 노동 상상에 기름부을 수 잇을 만큼 충분히 포괄적이면서도 예리하다.”


4.

한때 나는 ‘효용 가치론’의 맹점을 비판하며 열렬히 ‘노동 가치론’의 옳음을 주장하는 비뚤어진 경.영.학도로서 (아, 그래서 학점이......) 누구보다 책에서 말하는 ‘노동윤리’의 시각을 체화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신성한 노동’의 의무 어쩌고 해왔으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드럽게 일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본인의 모순 때문에 노동자 단결도 전에 자아분열로 환장하며, 나는 왜 이모양인가 잠시 방황하였다. 요즘은 기본소득 책 몇권과 때맞춰 발발한(?) ‘4차 산업혁명’ 기사들을 읽으며 아주 “일 그거 AI가 할건데?” 탈노동을 넘어 반노동, 게으를 권리, no노동 하는 (그러나 반전으로 입만 그렇고 일상은) 일벌레로 살아가는 중이다.

“(38) 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그리고 계급투쟁 대신 반노동 정치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뭔가 저자가 추구하겠다는 정치학에 엄청난 신뢰가. 옹, 내가 반노동 그거 마음으로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정말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일에 쩔어 피곤해서 두페이지 읽다 딥 슬립.) 어렵긴 어려웠는데, 한문장 한문장 내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는 거라. 막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데, 마음만큼은 뭔말인지 다 알겠어. 게다가 내가 관심있는 페미니즘에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살펴보시겠단다. 얼씨구, 좋구나. 두 주의만으로도 황송했는데 기본소득에 주30시간 노동 이야기도 해주신다고 하고, 니체까지 끌어들여 유토피아에 대해 검토하신다니 지금 엄청 신뢰상승.
일이 방해만 안하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휴일! 신난다~

“(27) 전통적인 노동관을 문제 삼는 것은 노동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다른 방식으로 생산적 활동을 구성하고 분배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노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 노동사회의 문제를 공론화 하고 정치적 문제로 제기 하기 전에 일을 수용하고 일과 자신을 동일시 하도록 이끌며, 일을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요 열망이 향하는 특권화되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돕는 기제 (노동윤리 등)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28) 페미니즘의 두가지 전략 - 임금노동으로의 여성 진입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과 무급 가사 노동의 가치를 재고하고 그 책임을 양성 간에 공평히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의 공통된 문제점은 노동에 대한 정통의 지배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41)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만, 그리고 부자유보다는 불평등에만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빈곤해진다. ... 고로 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대한 비판에 더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서의 권력과 권위의 정치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페미니즘의 몇몇 갈래를 살펴볼 것이다.”

“(44) 나의 관심사는 일에 대한 페미니즘 정치 이론을 발전시켜 일 그 자체 - 일의 구조와 윤리, 일의 싪천과 관계-가 불평등을 일으키는 기제일 뿐 아니라 자유에 대한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63)어째서 일하고, 어디서 일하고, 누구와 일하고, 일할 때 무엇을 하고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모두 사회적 합의이고, 따라서 당연히 정치적 결정인 것이라면, 이러한 영역 중 더 많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 토론과 쟁투의 범위로 되찾아올 수 있을까? 일의 문제는 일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독식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문제는 일이 사회적, 정치척 상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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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24 04: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막 다 읽고 나니 내가 출근했다 퇴근한 거 같이 지치고 눈물나고...내내 수고하신 쟝쟝님, 연휴 동안에는 본디 쟝쟝님 갈아입은 채 잠옷 입고 종일 뒹굴 듯 그저 푹 쉬세요. 복직예정자는 점점 다가오는 출퇴근 급 두려워지는 시점입니다. ㅎㅎ

공쟝쟝 2020-01-24 11:17   좋아요 1 | URL
두려워마요.... 제가 경험한 건 아니지만, 듣고 본 경험담에 의하면 .. 엄마가 더 힘드니까요... 일하면서 해방감을 얻는 엄청난 삶의 내공을 느끼실 거예요 ㅋㅋㅋ 축하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13:47   좋아요 1 | URL
저는 엄마고 일이고 다 해방되어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데... 제도권과 자본주의 내에서 월급 금액 슬며시 보며 적당히 타협하는 삶으로 버텨야겠지요ㅎㅎ 들이 받을 일 있음 적당히 들이받고 ㅎㅎㅎ축하 감사드립니다!!

공쟝쟝 2020-01-24 21:46   좋아요 1 | URL
반님을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의 세상으로 가야겠어요!! 다치지 않게 들이받는 생활! ^^ 참, 설 즐거이 보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21:56   좋아요 0 | URL
쟝쟝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0-01-24 1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연휴가 왔습니다.....
전 일을 처음 해 봐서 이제야 진짜 연휴가 뭔지 알겠어요... 슨배님..... 리스풱....

공쟝쟝 2020-01-24 11:18   좋아요 2 | URL
자 이제 잠옷 자아를 꺼내시고, 책을 읽으소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소서🙏 ㅋㅋ 기다리고 잇엇다!!

붕붕툐툐 2020-01-24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토닥토닥~ 넘 고생 많으셨어요~ 한 줄 한 줄 너무 공감이 됩니다. 플러스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감이 드네용....

공쟝쟝 2020-01-24 11:20   좋아요 0 | URL
분명 일만으로 삶이 구성되어 일로써만 인정받거나 받지 못하는 억울한 자들 일 것입니다.. 스에상에 일말고 재밌는게 얼마나 많은데..!

다락방 2020-01-24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의 일과 독서가 어우러진 페이퍼 너무나 좋고요! 여러가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명절 화이팅!!

공쟝쟝 2020-01-24 11:47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읽기 화력붙으니, 북플앱 알람이 저를 씹어 먹을 기세입니다 ㅋㅋ 같은 책 읽고 페이퍼쓰기 이거 재밌어요!!! 돈안주는 행복한 일 알려쥬셔서 감사해요 ㅋㅋ (매번 늦게 읽어서 나중에 밀린 페이퍼 읽던 사람)

무식쟁이 2020-01-24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에서 나온 후 분리되었던 자아를 다시 찾는 시간. 현대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공감백배입니다. 몸담고 있는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차차 일 속에서도 자아가 고개를 드는 날이 다가올겁니다. 분리의 시간이 점차줄어들며.. 분리와 합체 과정 간소화서비스가 내재화되며 점점 업데이트 된달까요.. (요즘 한창 연말정산 기간이어서.. 뭐래..)
공쟝쟝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공쟝쟝 2020-01-24 12:10   좋아요 1 | URL
(다행스럽게도) 아직 아내와 엄마라는 자아는 장착하지 않아서 두가지 자아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간소화서비스 간절히 바라는데, 일이란 간소화시키고 나면 또 어려운 업무를 제시하시더라구요!
설 잘쇠시구, 종종 좋은 글로 만나요^.^

단발머리 2020-01-24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쟝쟝님 페이퍼~~!!!
쟝쟝님의 지하철 속생각, 회의시간 속생각 넘 맘에 와닿네요. 어여 읽고 다음이야기도 풀어주세요~~

공쟝쟝 2020-01-24 21:47   좋아요 0 | URL
오 ㅋㅋㅋ 다음이야기를 시리즈로 적어볼까요? 부조리한 일의 세계 ㅋㅋ

블랙겟타 2020-01-2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사회생활이란걸 제대로 해보지 않은...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선 이렇게 글로만 간접적으로 느껴보는데요... 언젠가 저도 저 안에서 아둥바둥 하고 있겠죠? ㅠㅠ
쟝쟝님의 정성글 잘 읽었어요. 휴일은 푹 쉬시길요.:D
 

톰과 제리는 섹스를 하지 않아요. ‘재벌’하고 ‘알바’는 섹스를 안 해요. 그런데 남성과 여성은 적대적 모순관계인데, 섹스를 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애제도죠. 그 때문에 섹스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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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음의 구석 -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
서밤.블블.봄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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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땐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스스럼 없는 목소리의 그녀들. 꿈과 이별하고, 완벽주의와 싸우고, 독선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곁에서는 법까지.. 신세 많이졌어요. 샤이 애청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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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 2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95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희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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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이 100자평을 너무 쓰고 싶었다. 제2의성 완독이라니 완독이라니!!!!!!!!! 1048페이지 보부아르와 나자신과 역자님 출판사님 역사 속 세계속 여성 모두 수고하셨음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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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축드리옵니다. 인내와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ㅎㅎㅎㅎ

공쟝쟝 2020-01-19 17:00   좋아요 1 | URL
인내와 의지와 자기 초월의 노력이 동반된 자주적 인간으로서의 투기였습미다..! (믱??)

단발머리 2020-01-1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는 반드시 자랑할 일이고
축하받을 일입니다!
경축 <공쟝쟝님 제2의 성 완독!!!!>

공쟝쟝 2020-01-19 17:01   좋아요 0 | URL
이 기쁨을 단발머리님께 돌리고요, 감사드릴 분은 여성주의 책 읽기 모임의 ..... (시상식 인줄..)ㅋㅋㅋ

단발머리 2020-01-19 17:07   좋아요 0 | URL
오늘 머리해주신 미용실 원장님과 매니저, 소속사 친구들 다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시간이 넉넉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1-19 17:11   좋아요 1 | URL
일단 제 시간과 돈을 버리게 해주신 을유문화와 ㅋㅋ 먼저 가신 비연님과 단발님! 그리고 제 4만원과 따흑 ㅜㅜ 읽기를 제안해주신 다락방님... 번역의 문제를 알려주신 쇼님과 번역의 고역에 공감해주신 겟타님께 감사말씀을 드리고요.. 보이지 않게 독려해주신 깐부치킨 및 노가리 맥주 집 사장님께도 감사를... 하하하!

단발머리 2020-01-19 17:39   좋아요 1 | URL
올해의 각오를 빼먹었네요.
올해는 또 다른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짝짝짝!!!
제일 먼저 <우리는.... >
쉽지 않겠지만 꼭 도전에 성공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1-20 10:02   좋아요 0 | URL
앍ㅋㅋㅋㅋㅋㅋㅋ 올해에는 새로운 작품을 통해서 (하지만 이보다 더 두꺼울 수 있을까요?) 뿐만아니라 작년에 읽다 포기한 성의 변증법과 가부장제의 창조 등을 마저 읽어.. 작년에 못다한 완독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근엄, 진지)

블랙겟타 2020-01-19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출판사를 넘나들며 완독에 성공하신 쟝쟝님께 박수를!! (짝짝) ٩(ˊᗜˋ*)و

공쟝쟝 2020-01-20 10: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이유가 그것이었군요. 출판사........ ..... ... 앞으론 잘알아봐야지

다락방 2020-01-19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장해요 쟝쟝님. 고생 많았습니다!!

공쟝쟝 2020-01-20 10:03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다 읽은 사람으로서. 대화에 낄 수 있는 것입니다. 얏호!
 
[eBook] 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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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힘들고 싶어서 그토록 열렬히 읽었던 수많은 사회과학, 심리분석 책들. 울화를 게워내듯 일기에 썼던 어린시절의 기억들. 어떤 관계에서는 도망치고, 어떤 인연과는 단호하게 이별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꾸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나름의 공부를 하고, 그 와중에 생활에 바빠하면서. 겨우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있었는 데, 그랬는 데.

훅 들어오는 무심한 (제 멋대로의 사랑을 근거에 둔)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일주일째 엉망이다. 몸의 컨디션도, 마음의 컨디션은 더더욱. 온 마음을 끌어모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었는 데, 끌어모을 힘을 뺏겨버렸다. 다 헝클어졌다. 전화 한 통에.

건조하게 말하고, 다치지 않게 거절해도 됐는 데, 감정이 너무 많이 섞였다. 아플말만 골라찝어 딱딱 말하는 단호하고 독기어린 내 목소리가 낯설다. 문제는 그렇게 못되게 말하는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거고, 힘없이 잘못을 시인하는 그 역시도 나를 사랑한다는 거겠지. 그 굴레. 가족.

사랑이라는 권력에 있어서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다.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 쪽,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쪽이, 약자다. 그런데 약자이기에 때때로 가해자가 된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가해자인 약자.

사랑했으나 인식이 깊지 못했던 어른들은 세상의 잘못된 관점까지 수용해서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는 둔탁한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사랑을 모르게 되었다.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는 그들의 좁고 편견많은 사랑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랑의 형태가 생겨난 바탕까지 공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랑의 노동이었다. 사랑하기위해서.
이따금 이해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덜 미워지게 되는 경험들은 나를 알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사랑을 사랑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하고 싶어서. 그런데 몰랐던 것을 알아갈수록 가닿는 결론은 이렇다. 결국 나는 그들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사랑과 상처는 별개가 아니라는 것. 나를 해치는 요구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을 들이민대도 단호히 싸워야 한다는 것. 세상이 들이미는 사랑의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따지고 되짚어 물어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집요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그 인식에 따른 실천은 때때로 나를 폭군같은 가해자로 만든다. 뒤늦게 다그치는 것이다. 당신들의 편한 선택이, 스스럼없이 살아온 삶이, 사느라 바빠 잊은 질문없음이 나에게 얼마나 폭력이었는지 아느냐고. 아마,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대답을 얻기 위해 묻지 않았으니까. 질문은 그저 복수다. 왜 아픈지도 모르고 앓았던 숱한 과거와 그 결론인 오늘에 대한.

대체로 난 그 많은 질문과 화를 아주 꾹꾹 눌러 담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냥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모르는 척. 힘 없는 척. 그런데, 참는 다는 것은. 결국 참는 것일 뿐. 참지 못하겠는 날은 온다.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나에게 마치 보란 듯이 - 내가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때, 핏줄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 어떤 요구를 할 때, 손톱만큼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때. 그 밖의 어떤 때, 때, 때.

지난 주말의 통화가 그러했다. 결국 난 참지 못했다. 무례함을 튕겨내기만 했음 좋았을 텐데, 어떤 포인트가 건드려졌고, 안전핀이 뽑혀버렸고. 그래서 내가 먼저 과거의 잘못을 꺼내는 몇마디를 얹고 말았고, 너무 쉽게 투항같은 사과를 받아버렸고. 결론적으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싸움을 해버린 셈이 되었다. 난 일주일째 가해자가된 패자의 얼굴을 하고서 앓았다. 오늘 쯤은 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아파서 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는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가끔은 낯설다. 그 시절엔 그토록 날뛰고 온몸으로 표현해도 “어린 것이 넌 뭘알아! 알필요없어!” 발언권은 커녕 알 권리 조차 보장해주지 않던 어른들이, 이제는 한명의 의견을 가진 어른으로. (어른이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당신들의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결국은 당신들이 기댈, 당신들 지난 삶을 보상할 어떤 결과물로 대한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 너무 많이 이해하면 나에겐 독이 될 앎들이다. 더는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한다. 이미 마음은 다 알겠어서 괴롭다. 당신이 되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의 곤궁함은 나 역시 비슷하게 겪고 아는 것들이기에.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짐지우고 싶지 않아 부러 말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말하는 건가. 왜 날 이해시키려하는가. 결국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버린 나는 약자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인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애정을 동원해서 당신을 알기위해 노력한다. 이해되는 사정 앞에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이가 가닿을 곳은 무력감. 한계의 세계.

*

글을 쓰는 동안 얼마전 읽었던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 생각났다.

책 속 벡델감독과의 대화에서 김보라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명상과 심리학 그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됐고, 그즈음 가족들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학생 때는 안 그랬다. 그때는 가족들과 싸울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또 대학생이 되면서 가족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나를 ‘나쁜 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가족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만 하고 가족들을 추궁하는 나쁜 딸이었다.”
“나는 언제나 가족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드는 ‘골칫덩어리’였다. 어쨌든 나는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우리 가족의 역사와 트라우마로 파고들어 우리가 나눠야만 하는 대화를 나누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을 매몰차게 밀어붙인 것은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그들이 내 생물학적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혈연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를 지지하고, 안정감을 줄 때 진짜 가족이라고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족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가족들에게서 많은 안정을 얻는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했었다. 감독은 가족들이 남긴 상처에 대해 가족 직접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눈물이 났었다.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졌다.
사랑할 수 있으려면, 정말로 그러려면 용감해야한다. 나 자신도 그러하거니와 사랑의 대상 또한. 자신과 대상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살짝 들추려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척이나 상처 주고있고, 또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은 무리다. 어쩌면 영원히 무리하지 않음으로 평화롭고 싶다. 감정을 쓰는 것이 싫다. 마음을 쓰는 것은 온 몸을 쓰는 일이다. 머리만, 머리로 충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이라도. 이해하기. 미울 때는 밉다고 말하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

“ 영지 :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영지 :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은희 : 네?
영지 :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영화에서 내 마음에 가장 깊게 흔적을 남겼던 대화. 순전히 저 대화를 활자로 읽고 싶어서, 시나리오 집을 샀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운 영화관에서 보고 듣게 되었을 때, 후드득 몸을 떨었다. 고마워서. 언제나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러나 스스로에게 해줄 때는 생명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타인의 목소리로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는 영지샘이 너무 좋았다. 책으로 읽는데도 콧날이 시큰해져서 전철에서 혼났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의 감정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이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쉬운 동정과 연민마저 허락하지 못하는 감정의 불구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연대투쟁, 혹은 연민하기 정도가 다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연대할 수 없으니 대체적으로는 연민. 그것이 무관심보다는 윤리적인 태도라고 믿었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상상력이 없었던 거다. 여전히 누군가의 심연과도 같은 고통을 흘깃 보게 될때는 아득하다. 나에게도 그 깊은 심연이라는 못은 있지만, 같은 겪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안다’ ‘이해한다’라는 댓글을 달 수도 없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고통이라면, 기준을 세운다.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동정하지 않을 것. 감정적 호들갑을 윤리적 안도로 바꿔치기 하지 않을 것. 불쌍해하는 자신에 안주하지 않을 것. 조심스럽게, 조금씩,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알려고 할 것.

*

토로하듯 써낸 글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어쩌면 약자의)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택한 내가 사랑에 대해 이해한 바는 (지금까지는) 이렇다.
사랑의 출발점은 ‘인식’이며, 알고자 하는 노력없는 ‘사랑’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안다는 것은 사랑의 출발일 뿐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아는 것 이상의 사랑에 대해서 나는 아직 말할 수 없다는 것.
어쨌든 나 자신을, 세상을,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는 그 모두를 ‘사랑’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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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보시는 거 보고 저도 어제 도서관 갔다 이 책 빌렸어요. ㅎㅎㅎ

공쟝쟝 2020-01-18 13:32   좋아요 1 | URL
영화도 보셨나요? 대부분은 책이 좋은데, 벌새는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물론 최은영, 정희진, 김원영님의 글과 벡델과의 인터뷰도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