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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그 날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기로 했다. 대략 3시간에 걸리는 긴 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미용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거나, 미용실에 배치된 잡지를 읽거나, 틀어놓은 음악을 읊조리거나, TV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의미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져갔다. 3시간 동안 전부 다 읽어버리리라.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내 욕심이었을까? 머리 손질이 다 끝났을 때, 나는 고작 책의 절반을 읽었을 뿐이었다. 책이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은 아니었다. 한장한장 넘어갈때마다 뭔가 명확해진다는 느낌보다는 더욱 모호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도 어떠한 느낌은 있었다. 그것이 각 등장인물들의 모든 삶을 바다라는 광활한 곳에 토해놓은 것 같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그 깊고 끝없음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우리를 황홀하게 하지만 바다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해준다. 우리는 바다를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하기도 하고, 바다에 살고있는 무수한 생명체들로 우리들의 배를 채우기도 하며, 심지어 휴양지로 우리에게 큰 편안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어쩌면 바다를 톡톡히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바다라고 생각하고 접하는 것은 바다의 표면일 뿐이다. 그렇게 바다는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간이 설 수는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바다로 내몰린 사람들이 있다. 레오나르 주베라, 뿌익-사발, 빼레 마르꼬, 요렝 까브레, 쁘루덴시 등, 그들은 각자의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목적은 같다. 배에 밀수품이 가득 싣고,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는 마요르까 섬으로 가는 것. 그래야 그들은 각자의 몫으로 각자가 원하는 이상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그 길은 역경과 고난의 연속일 뿐이다. 해양경찰들을 피해 쥐죽은듯이 숨어있어야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유령같은 존재들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밀수꾼으로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바다라는 장소는 등장인물들에게 그렇게 달가운 존재는 아니다. 분명히 바다를 통해서 새로운 길을 찾았고, 나름대로의 희망을 품고 있지만, 그 길은 비참하고 험악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이 바다 위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것. 그것은 바다가 아닌 육지였다. 인간은 바다를 그리워 하지만, 막상 바다 한가운데서는 살 수가 없다. 그리고 이내 육지를 소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또 다른 육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 되는 대로 몸을 맡기고, 배에 승선하였지만, 변덕스러운 바다는 그들의 안식처가 되주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육지를 밟기를 원하고, 육지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각 인물들의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이 마치 파도가 출렁거리듯이 왔다갔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더 지나갈수록 바다는 더 이상 그들이 기댈 곳이 아닌, 극복해 나가야 할 하나의 시련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삶은 참 기가 막힌 것 같다. 무언가 피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장애물이 놓여져 있고,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전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에서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육지에서 그들은 바다를 꿈꿨고, 그래서 바다로 향했다. 그런데 이제는 바다에서 다시 육지를 꿈꾸고 있다. 결국 그들은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만족할 수가 없다. 육지에서의 상처를 바다가 씻어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바다는 육지에서의 상처를 덧나게 만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상처를 각자의 마음 한 구석에 있으리라. 그래서 그들 스스로 그 상처를 극복하지 않는 한, 그 상처는 바다에서든, 육지에서든 결코 아물 수가 없다. 하지만 마음 속의 상처가 너무 깊은지, 아니면 그것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모르기 때문인지, 그들은 계속 바다와 육지를 왔다갔다 표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바다 위의 행위가 어떻게든 미래를 바꾸어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아마도 영원히 밀수꾼으로 남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