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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읽는 내내 시종일관 웃음보를 터뜨려 주위의 사람들이 (주로 지하철에서 읽었기에) 미친 사람 취급을 해서 전철에서 승무원에 의해 강제로 내려져야만 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아무튼 계속 피식피식 웃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 것은 사실이다(밑의 두 분 처럼 이 소설『69』에 자주 나오는 문장을 패러디해봤다. 하하하)
사실 나는 류의 소설은 완독한 것이『코인로커베이비즈』와『69』이 두 편밖에 없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중학교 때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심적 쇼크가 커서 반도 못 읽고 덮어야 했지만). 몇 달 전 시도했던『코인로커베이비즈』는 매우 고통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남는다. 소설을 지배하는 등장인물들의 파괴적 행동들과, 비현실적으로 뒤틀린 배경과 인물·사건의 묘사들이 끈적끈적하게 손 끝에 묻어나 완독하기 정말로 힘겨웠다(거부감이 들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무라카미 류라는 작가에 예전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 후 쉽사리 어떤 책에 손을 대야할 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69』는 매우 유쾌한 내용이라는 평을 심심찮게 듣게 되어 읽고 싶었는데, 오 마이 갓…, 너무나도 적나라한 소설의 제목. 류는 SM을 즐겨 다루기로 유명하지 않았던가. 저걸 어떻게 들고 다니면서 읽나 하고 고민하던 차에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것이었다. 제목이 덜 두드러지는 디자인으로^^; ‘어디 한번…’하고 구입해서 읽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 소설에는 섹스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1969년을 살아간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역시, 제목부터 독자들에게 깜찍한(?) 장난을 친 류의 장난기가 느껴져서 푸훗, 하고 웃었다.
정작 내용 서평은 없는 서두가 쓸데없이 길었다. 이 소설은 제도권 학교의 부조리함에 대해 준엄하고 비장하게 비판하고 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_-; 다만 ‘즐겁게’ 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일상에 대한 발랄한 저항(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기도 쑥스럽다)을 말 그대로 유쾌하게 보여준다. 섹스와 여자에 대한 관심과 상상으로 가득찼으면서도 정작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적당한 말도 찾지 못하고 쩔쩔매며, 무용담을 허풍으로 늘어놓지만 실제로는 겁에 질려 몸을 사리기도 하는 고등학생 소년들의 세계를 너무나도 신나게 그리고 있다. 작가 류 자신의 캐릭터를 보는 듯해서 너무나도 즐겁게 읽었다(실제로 류가 경험한 사건을 그린 소설이라고 한다). 모험심이 강한 고등학생 특유의 짓궂음과 허풍 속에서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언뜻언뜻 보인다.
[초등학교 때 감기에 걸려 사흘간 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친구들과 교실이 그리웠다. 119일 동안이나 결석을 했음에도 이 교실에 대해 아무런 감회가 없는 것은, 이곳이 선별과 경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나 소, 돼지도 어릴 때는 그냥 놀면서 지낸다. 북경요리의 돼지새끼 통구이용 돼지새끼만 빼고.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눠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p.117.) ]
나는 학창시절을 너무나도 재미없게 보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풋풋한 젊음과 혈기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합리한, 부조리한 상황과 인물들에 대해 복수하는 방법은 정말로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