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청도에서 돌아왔어. 아이들이 친구들이랑 놀러 가고 싶다고 해서 어제 갑자기 짐을 챙겨 갔어. 청도에 집이 있거든. 방 한 칸에 거실이 있는 작은 집이지만 나름 별장이야. 여름 별장.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거기 가서 잔 적은 없어. 이번이 처음이었어. 덜덜 떨어도 재미있었는지 하루 더 자고 가자는 걸 2월에 한 번 더 오자고 하고 왔어.

 

눈썰매를 타러 갈까 하다 뒷산에 올라갔어. 거긴 여름에 자주 가는 비밀 계곡이 있어. 갈 때마다 우리밖에 없어서 우리만 아는 계곡이라 생각해. 얼음이 꽝꽝 얼어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돌과 막대기로 얼음을 깨기 시작했어. 남자아이 4명이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분업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하나가 돌을 던지면 돌 던져 약해진 부분을 나머지가 가서 막대로 치고 손으로 얼음을 빼내고.

 

그런다고 계곡에 물이 흐를까, 했는데 한 시간을 그러고 있으니까 계곡의 한 부분이 완전히 얼음이 깨져서 물이 콸콸 흘렀어. 아이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계곡을 흐르게 할 수 있구나. 이런다고 이 얼음을 다 깨겠어, 짐작했다면 깨지 못했을 얼음이었지.

 

대학 다닐 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시위가 많았던 거, 기억나? 우연히 같이 점심을 먹었던 법대생 선배가 그런다고 그 사람들이 감옥에 가겠어, 안 가. 우리나라는 안 돼!” 하더라고. 근데 그 대통령들은 모두 감옥에 갔어. 그래 봐야 헛수고라고 했던 선배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으면 안 갔겠지. 그 선배도 뭔가 애썼는데 좌절했던 경험이 있었는지 몰라. 그러나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하고픈 말을 하고 행동했던 사람들 덕에 변화가 오는 게 아닌가 싶어.

 

요즘 나는 그 선배처럼 그렇게 해서 될 일인가 아닌가 짐작하는 경우가 많아졌어. 체력과 시간과 돈을 다 고려해서 뭔가 결정하는데, 사실 그 조건이 온전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도 있는데 움츠리게 돼. 지금처럼 약간 지친 느낌도 어떤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애쓰지 않게 하는 것 같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으니 아이들이 앞뒤 없이 얼음을 깨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라. 활기란 그런 거지.

 

기슭아, 나는 너무 일찍 활기를 잃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깨고 싶어, 그러니 깨 보자!’ 아이들이 그 무모한 활기를 오래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내게도 그 활기가 영 죽지는 않은 걸까? 겨울나무처럼 뿌리에 간직하고 있을까? 아주 오래 전 너는 헤아림 없이 행동하는 우리 아이들 같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돌을 던지면 네가 막대를 내리쳐, 이러면서 우리 한번 놀면 좋겠다.

 

 

 

열등생

_자크 프레베르

 

 

그는 머리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가슴으로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선생님에게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선생님이 질문을 한다

온갖 질문이 쏟아졌지만

갑자기 그는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숫자도 단어도

날짜도 이름도

문장도 질문의 함정도

교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등생 아이들의 야유를 받으면서도

온갖 색깔의 분필을 들고

불행의 검은색 칠판 위에

행복의 얼굴을 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