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품절


마야 인들이 마야력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전통문화 수호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없으면 당장의 삶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생활 속의 필요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한 개인이라면 모를까 어떤 집단 전체가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81-82쪽

사람들은 흔히 문화가 대단한 정신적 활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로지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문화는 있을 수 없다. 소위 몇몇 '문화인'들은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몸으로써 그들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내지 않고 이미 자신의 생계를 해결해내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밥통과 관계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트'이지 문화가 아니다. 어떤 집단 구성원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무의식중에 그들의 몸에 배어서 문화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아니면 문화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새삼스럽게 문화라고 불리는 것은 문화가 아닌 것이다. -82쪽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어와 옴싹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자본주의 기업에 의한 전체주의는 말 그대로 '일상적 형태의 전체주의'이다. 정치적 형태의 전체주의가 농약이라면 일상적 형태의 전체주의는 생물학적 오염과 같다. 따라서 이것은 앞으로 우리를 얼마나 노예화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기업에 취직하여 자신도 모르게 기업의 전체주의 지배를 돕고 있으나,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목숨을 겨누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어쩌질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 파시즘'의 본질적 내용이요, 그것을 우리는 '패스트푸드 전체주의'라 할 수 있겠다. -115쪽

끝으로 한국의 일상적 파시즘론자에게 두 마디. 첫 마디, 뭘 분석하려면 경제적 바탕 위에서 하도록. 두 마디, 남들 욕하지 말고 자기부터 파시즘적 작태를 저지르지 말도록. -116쪽

창조적인 인간이냐 아니냐는 특정한 지식이나 재주를 가지는 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태도나 정신적인 자세이므로 주입할 수 없고 몸에 저절로 익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창조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려면 한국 사회의 모든 집단들, 즉 가족, 학교, 회사 등에 개인의 개성과 창의력이 생겨나고 발전될 수 있는 멘탈리티가 있어야 한다. 멘탈리티는 정신적인 것을 주입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육체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생겨난다. 인간은 이상한 존재여서 그의 정신적인 것들 역시 육체적인 것의 반복적 습득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120쪽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명령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소시민이 어떻게 해서 유태인 학살계획을 담담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었는지를, 그리하여 아무 생각 없는 평범함banality이 바로 현대인의 악의 원천임을, 즉 악의 평범성을 증언해주고 있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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