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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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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깊어 침대를 창가 밑으로 옮겼습니다. 요 며칠은 비까지 내려주어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책읽기가 더욱 달콤합니다. 가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는 책이 있는데 이해인 수녀님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가 그러했습니다. 여기저기 인용된 글은 수없이 보았으나 이렇게 제대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접한 것은 처음인데 생각했던 마음 그대로 글은 소박하고 정갈합니다. p.23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더 잘 보이듯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꽃이 지는 통증을 지나고 나야 열매를 맺듯이 소중함을 간과하기 쉬운 본질적인 것들에 대하여 따뜻한 음성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를 나를 몇번이나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그자리를 맴돌며 읽고 또 읽어봅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3년간의 암투병의 고통과 잇따른 지인들과 이별으로의 슬픔을 통하여 삶의 한가운데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 기쁨과 감사를 일상의 언어로 담담히 고백합니다. p.129 "자신의 삶이 어떻게 꽃피었는지, 또 꽃필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식물의 생명이 물을 요구하듯이 우리에게는 눈물이 요구된다. 흘린 눈물의 양이 사람을 승화시킨다." 그 마음의 맑음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니, 나도 그 마음을 닮아야겠다는 무리한 욕심도 내어봅니다. 그리고 나는 유독 시가 어려워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해인 수녀님을 통해 시를 만나니 한결 가볍고 즐거움이 동합니다.

p. 60 
커피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군요.

아-
그대 생각을 빠트렸군요.
 - 윤보영. 커피

수녀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윤동주님의 서시도 다시 읽어봅니다. 어린 기억 교과서 안의 지문으로 읽었던 밋밋했던 글자에 깊은 호흡이 담아집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은 선한 마음은 어디에서 얻어지는 것일까요. 아마도 하늘에서 미리 점을 찍어두지 않을까, 하고 쿡 웃어봅니다. p. 221 1998년 9월 17일 목 행여라도 편견을 갖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도록, 무심결에라도 무시하는 말이나 몸짓으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누구라도 단죄하거나 함부로 비난하는 독선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저입니다. 저는 약해서 두려우니까요. 자주 실수하니까요. 콧날이 시큰하고, 글씨가 흐릿해집니다. 타고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수녀님의 모습에서 발견한 약함은 이만큼의 깨달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와 묵상이, 수행과 노력이 필요했을지 하고 짐작하며 감히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장은 그리움으로 꽃을 피운 추모일기인데, 나도 그만 마음이 멍울멍울 하여 잠시 쉬어 갑니다. 피천득 선생님, 김수환 추기경님, 김점선 화가님, 장영희 선생님, 김형모 선생님,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님, 박완서 선생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별로 새겨진 이름에 그리움이 깊어 집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그리운 사람이었을까요? p.60 가까운 이들과 화해하기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겐 '백년 살 것 아닌데 한 사람 따뜻하게 하기 어찌 이리 힘드오."라고 표현한 김초혜 시인의 <사랑초서>의 일절을 들려주면 다들 좋아한다. 늘 '시간이 너무 빨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인듯 살아갑니다. 그리 긴 세월도 아니었는데 등을 돌리고 걸어 온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부끄러움에 한숨이 깊어집니다. p.74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안 들고, 성격도 안 맞고, 하는 일마다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서 그것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승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아직 승리할 그릇이 못되니까 조금 더 기다려야 겠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니까요.

시간이 마음처럼 나지 않아서 토막토막 읽는 시간 내내 다음 장을 읽고 싶어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그래도 읽는 시간 동안 마음이 따뜻했더랬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사시는 이해인 수녀님 닮은 고운 글씨가 너무 많아 읽는 내내 메모를 하며 감탄도 하고 찔림도 얻습니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 부디 건강하세요. 늘 수녀님의 삶이 좋아하시는 봄날 같기를 멀리서 기도합니다. 
 

+) 밑줄the 

p.24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못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p.113
행복의 얼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p.128
누가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한다 해서 들뜬 마음을 갖지 않고 담담해지기……. 누가 나에게 근거 없는 험담이나 비난을 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고 담담해지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p.131
"성공하려면 반복된 생활을 계속하면 된다. 돈에 대한 욕심, 인기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다 버리고 '생활의 달인'처럼 살아가면 그게 성공인 거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똑같은 패턴으로 생활하며 어느 순간 '내가 발전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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