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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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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다양한 면모가 궁금한 팬이거나, 그의 전작주의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하루키, 하루키 할 때도 달랑 1권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 나에게 이 두꺼운 잡문집이 무슨 재미를 줄까 하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내가 읽은 하루키의 책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는데,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에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에세이집을 가까운 책장에 꽂아두고 있는 것이 나와 하루키의 인연의 전부라면 전부일 것이다.

 

한참 달리기에 빠져 있을 때, 달리기의 문화사 같은 책을 찾다가 하루키가 이런 책도 쓰는가라는 호기심에 사둔 책이다. 그리고 글보다는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이야기와 책에 실리 그의 사진에 큰 인상을 받았다. 뭔가 책상머리에 앉아 하루 종일 글을 쓰는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잔 근육이 멋지게 발달된 마라토너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도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취향이 굉장히 잘 발달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과 별도로 하루키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소설가-재즈 매니아-마라토너라는 이 삼각구도가 내가 하루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이다.

 

개인적인 인상과는 별도로 이 책 역시 잘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며 여전히 건재한 하루키가 느껴지기도 한다. 1Q84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이러한 잡문집이 팬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한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책은 하루키가 잡지 등에 기고했었던 글들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싣고 있다. 서문이나 해설문, 수상 소감이나 인사말, 그가 취미처럼 생각하는 ‘음악’이나 ‘번역’에 대한 글들, 그리고 이 잡문집의 일러스트를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와 와다 마코토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에 대한 글들. 정확히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시기적으로는 90년대를 전후로 하는 글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일상적인 감상이나 소회를 담은 소소한 글이기 보다는, 잡지 등에 싣기 위해 어떠한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짧게 쓴,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잡문’이지만 내용이 가볍지 많은 않다. 그래서 각각의 잡문들이 다루는 소재가 생각보다 생소하거나 오래된 것들이 많아, 그것들은 공유하는 폭이 작은 나로서는 책을 따라가기가 다소 벅찼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음악에 관한 글들’과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에 관한 글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음악에 관한 글들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기르고 축적해온 취향과 지식의 폭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공부가 많이 된다. 세대가 다르고, 그가 다루는 음악의 폭이 나의 그것보다 몇 배나 넓어 쫓아가기 바쁘지만, 그가 다루는 음악들을 오늘밤에라도 찾아 듣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 특히, 재즈애호가답게 그 분야의 글이 풍부한터라, 재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좋은 평론 몇 편을 읽은 느낌이다.

 

그리고 ‘번역’에 관한 글들은 요즘 습작처럼 번역을 해 보는데, ‘외국어 실력보단 국어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중이라 더 살갑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글들을 보며 그가 외국어, 언어를 다루는 감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번역에 대해 조금의 감을 더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루이비통의 의뢰를 받고 썼다는 ‘바람을 생각하자’라는 글이 있다. 그와 그의 부인이 그리스의 이름 모를 섬에 거주하면서 느낀 ‘바람’에 관한 에세이인데, 개인적으로 ‘바람’을 좋아해서인지 이 글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 인간이 진정으로 바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네 인생 중에 아주 짧은 한 시기뿐일 것이다. 왠지 그런 것 같다. ...

 

바람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정말 짧은 한 시기 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보며 그런 시기의 감상과 생각들을 잡문이든 아니든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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