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평전
박현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조에 대한 나의 지식은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며, 할아버지인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 영조-정조 시대가 조선 500년을 통틀어 제일 평탄했던 때였으며, 해서 문화와 예술도 발달할 수 있었다고. 그냥 그쯤에서 그쳤던 것이, 지난해 김홍도 전시를 보면서 다시 보이게 됐다. 전시를 관람하러 가면서 기대했던 것은 역시나 그의 풍속화였다. 하지만 전시의 대부분은 정조와 함께 한 시간으로 꾸려져 있었다. 내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이 사람 나랏일 했었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이후에 관심이 생겨 김홍도와 관련한 몇 권의 책을 읽었더니 역시나, 정조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화원이었다. 영조에 이어 정조의 어진을 그렸을뿐더러, 의궤 제작과 같은 일상적인 도화서의 업무에서도 제외하고 어명에 따른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화성에 행차했던 기록화를 살펴보며 정조와 김홍도의 그때를 상상했다. 이 책 <정조 평전>은 그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 책 <정조 평전>은 정조의 정치적 업적만을 나열하고 있지 않다. 외려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서술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생각해보면 정조의 유년기는 그 누구보다 불행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는 물론이고 그 앞의 임금 영조조차도 그에게 듬직한 의지처가 되지 못했다. 의지처는커녕 오히려 '죄인의 아들'이라는 묵직한 짐을 남기고 떠났다. 신하들 역시 서로 당색이 달라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등했다. 왕실이나 조정 어느 한곳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정조가 겪어야 했던 고독과 좌절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럼에도 그는 좋은 정치를 했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좋은 세상이었고, 그가 하려던 일은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샀다. 읽는 내내 그의 지혜가 탐스럽다 생각했고, 그의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정조의 인재 경영 방식이었다. 정조는 사람들의 개성이 다양함을 알고 그들의 생김대로 인재를 이용하려 했다. 공자가 제자 3000명에게 각기 다른 대답을 해주었다는 대목과도 엇물려 흥미롭게 읽혔다. "봄이 만물을 화생하여 제각기 모양을 이루게 하듯이 좋은 말 한마디와 착한 행실 한 가지를 보고" 그 장점을 살려 써야 한다는 게 정조의 생각이었다. 나아가 인재를 가려내고 활용하는 주체로서 왕의 존재를 강조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좋았다. 그에게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차근히 풀어내갈 줄 알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알았다. 그리고 실천했다.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얼마나 무겁건, 그것을 남에게 지우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역사를, 특히 한국사를 다시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건 좀 의식적으로라도 들여다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 존재하기 전에, 이 땅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던지- 그들은 어떻게 이 땅을 꾸려나갔던지 아는 것은 결국 나의 오늘을, 또 나의 내일을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사도>를 다시 한번 봐야지, 하고 생각한다. 다시 보면 좀 더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