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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우선 근원적인 얘기를 좀 해보자.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 게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다'와 '나쁘다'에 대한 부분부터 시작하겠다. 단도직입적으로, '쓰나미(tsunami)'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직접 쓰나미의 피해를 겪어본 사람들은 대부분 '나쁘다'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연현상으로서의 쓰나미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저 무심한 대자연의 활동일 뿐이며, 태풍이나 지진도 마찬가지다. 우주, 신, 자연.. 그 어떤 단어를 앞에 붙이든, 좋고 나쁨이 없는 'X의 섭리'일 따름이다. 수백 수천 년을 이어온 동양사상에서도 음양오행과 육십갑자(천간과 지지)를 바탕으로 인간의 생년월일시를 통해 사람의 명운을 들여다 보기도 하지만,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장사치의 논리가 아니라면 'X의 섭리'를 논할 때 단순히 좋고 나쁨의 잣대로는 절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계로 오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모두 다 불완전한 존재이고, 단지 좋다와 나쁘다 뿐만 아니라 '옳다'와 '그르다'의 문제까지 더해진다. 게다가 우리는 '좋다'와 '옳다'가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라지만, 사실 이 두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례로, 어떤 사진기자가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를 향해 독수리가 접근하는 걸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국제뉴스로 내보냈다. 그래서 세계인들의 아프리카 기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큰 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끝내 이 사진기자는 자살했다.

 

 
도대체 왜? 그는 애처로운 아이를 보고도 곧바로 구하지 않고, 먼저 사진부터 찍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들었고, 자기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껴 자살한 것이다. 그는 분명히 '좋은' 일을 했다. 이 사진기자로 인해 전세계에서 엄청난 구호 물품이 도착했고, 기아에 허덕이는 다수의 아이들이 삶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옳은' 일을 하지는 못했다. 독수리가 아이에게 접근하는데도 당장 아이에게 달려가지 않고, 멀리서 사진을 찍은 것이다. 물론 아이가 죽지는 않았지만, 그는 좋은 일과 옳은 일 사이에서 좋은 일을 선택한 셈이 됐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건 참 어려운 문제다. 뭐가 좋은지 나쁜지, 뭐가 옳은지 그른지.. 좋은 것과 옳은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상이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옳고 그름 · 좋고 나쁨에 대한 고민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성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고, 또 다수의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있는 '사회'에서 일종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 판단을 내려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에 따른 정리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l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은이) | 오월의봄 | 2013-10-30 | 272쪽 (반양장본)

 

그저 '다른 것'을 아예 '틀린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당연히 문제지만, 분명히 '틀린 것'을 단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확실히 문제가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틀린 걸 틀렸다고 제대로 말하지 않는 것 역시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직자(구미시장)가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는 행사(박정희 탄신제)에 가서 죽은 정치인(박정희)을 두고 '반인반신' 운운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이런 짓은 '독재'나 '종교'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전혀 용인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런 걸 '잘못됐다'고 말하면, 엉뚱하게도 '그런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다. 엄연히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다르다라고만 말하는 사회를 어떻게 정상적인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틀린 걸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 아닌가? 틀린 걸 틀렸다고 제대로 말하는 것, 이게 바로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깊이 있는 분석이나 나름의 해결책 제시도 이 첫걸음이 명확하게 이뤄지고 난 다음에 와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간베스트저장소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는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은, 일베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례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동안 일베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잘못됐다'고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과연 이걸 쓴 이유가 무엇일까? 일베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쓴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단순 사건 나열 식으로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가?" 틀린 걸 틀렸다고 제대로 말하는 '첫걸음'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 이게 바로 <일베의 사상>의 가장 큰 실수가 아닌가 싶다.
 
도대체 왜, 저자 박가분은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설마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일베에 관한 책을 쓴다면 당연히 이 커뮤니티가 물의를 일으키며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사건들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수적인데 그러지 않은 것이다. 무슨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혹시 일베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또는 자기 논리에 자신이 없어서? 아니면 그저 한 사람의 '먹물'로서 점잔을 빼는 것일까? 저자의 소심함에 대해서는 일단 이쯤에서 정리하고, 다음 얘기를 계속하자.

 

 

어떤 사회 현상이든 홀로 동떨어져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체 사회나 여러 인간들과 다양한 영향을 주고 받고, 어느 정도 맥락이란 게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회 비평 서적은 종합적인 통찰력의 제공이 중요하고, 또 그것이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은 <일베의 사상>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여 놓았지만, 곳곳에 쉽지 않은 외국 학자 인용과 단편적인 해부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일베의 사상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책의 구성 자체가 이런 저런 파편화된 주제들의 연속일 뿐,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다 읽어봐도 전반적으로 유기적인 결합이 부실한 것이다.
 
가장 단순한 예로, 일베 유저들의 전체 구성에 대해서도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박가분은 상당한 분량을 들여서 촛불 시민들과 일베 유저들의 관련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후반부에는 '쌍생아'라고까지 말한다), 촛불 시민들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는 일베 유저는 전체 일베 구성원들 중에 그저 일부일 뿐이란 걸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일간베스트저장소는 '디시인사이드'의 일부 극단적인 자료들을 모아놓은 사이트로 시작됐는데, 애초에 디시인사이드 유저들 중에는 촛불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박가분은 이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그저 웬만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어딜가나 다 볼 수 있는 잉여, 막장, 병맛, 관심병 등의 일반적인 '문화'에 대한 얘기를 초반에 정리하는 게 고작이다. 이런 문화가 일베만의 것인가? 아니, 이런 문화 중에 일베에서 처음 시작된 게 있기는 한가? 물론 이와 같은 하위 문화의 특성상 그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것들이 일베만의 특수한 문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도대체 왜 저자는 정작 필요한 분석은 제대로 하지 않고, 괜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촛불과 일베를 연결시키는 데에 과도한 분량을 허비하고 있을까?

 

종합적인 분석을 하지 못한 예는 또 있다. 저자가 486 세대들이 하지 못한 일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개인적으로도 원래 관심을 두고 있던 부분이지만, 이 책은 굉장히 미시적인 차원에서만 적은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일베 유저들 중에 486의 자녀 세대가 많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우리는 이걸 바탕으로 광범위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 노무현의 실패와 486의 실패, 486의 가치와 그 자녀들에 대한 교육, 김대중·노무현에 대한 실망과 부모 세대에 대한 반발, 486 부모와 자식들로 구성된 가정의 붕괴 등등 굉장히 다층적으로 분석할 여지가 많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486과 일베의 관계를 제대로 고찰하지 못한 것, 이게 바로 <일베의 사상>의 가장 큰 허점이 아닐까 싶다.

 

 

   응답하라 486, 안녕들 하십니까?

 

 

박가분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베의 제일 핵심적인 특징은 '극단성'이다. 애초에 디시인사이드에서 떨어져 나온 이유도 '게시판 관리'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고, 급격하게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결국 사회 일반의 규범을 벗어난 극단적인 콘텐츠(특정 지역 혐오, 여성 혐오, 특정 인물 혐오 등)로 인한 것이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극단적이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인터넷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내용들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지역주의나 여성 비하도 너무나 흔한데, 일베는 보통 다른 사이트들이 꺼려하는 극단성을 강력한 무기로 세력을 확장해온 것이다.
 
일베가 그동안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들 역시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일이라기보다는, 그저 뭐든지 극단적이고 노골적으로 어떤 주제를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유머 코드나 유행어 같은 것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인터넷의 특성상 어차피 극단적인 게 일반적인 콘텐츠보다는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기 마련이고, '게시판 관리'라는 것 자체가 없는 일베에서는 유저들이 점점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경쟁적으로 극단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다보니, 도저히 사회의 일반 상식으로는 허용될 수 없는 수준까지 침범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급기야 '일베충'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 것이다.

 

만약 일베에서 극단성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일베에 주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굳이 심각한 이념 얘기까지 할 이유도 없다(많은 이들이 이미 말하고 있듯이, 과연 일베를 정상적인 '우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일베의 사상>은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이라는 부제까지 달고,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온갖 억지스러운 과잉 의미 부여로 점철되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가장 기본적으로 틀린 것을 틀린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일베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보다는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분석에 머무르고 있으며, 과도하게 촛불과 일베를 연결시키면서 말이다.
 
저자 박가분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혹시, 어떻게든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 건 아닐까? 하긴 그냥 신문 기고문이나 블로그 포스트도 아니고 돈을 받고 판매하는 사회과학서적인데, 이 정도 의미부여는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명색이 '청년논객'이라고 한다면 이런 저런 내용도 쉽지 않은 인용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좀 더 본인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정면승부를 하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먹물로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잡설을 늘어 놓기보다는, 그냥 곧장 명료하게 (다른 권위자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더라도) 자신만의 논리를 펼쳤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말이다. 안 그래도 한국에는 40대 이상을 빼면 30대 이하에서는 이렇다할 논객이 없는데, 박가분이라도 좀 제대로 활동하길 바란다. 언제까지 우리가 486의 얘기만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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