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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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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의 행보를 보면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같은 영화에 등장해도 될 법한 이 사람은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서 '자유직 범죄학자, 범죄심리학자, 프로파일러, 범죄수사전문가, 작가, 칼럼니스트, 방송인'으로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경찰관이었고, 경찰대학 교수였으며, 아시아경찰학회장을 역임했다. 넉 달 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이제 '자발적 백수'가 된 표창원을 이렇게 소개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 비겁한 남자!"

 

지승호. 13년차 전업 인터뷰어로서, 무려 서른 권이 넘는 인터뷰집을 냈다. 유시민, 장하준, 우석훈, 김수행, 박노자, 강신주, 김규항, 신성일, 신해철, 공지영, 양익준, 박원순, 김상곤, 정봉주, 이상호 등.. 그가 만나서 인터뷰하고 함께 책을 낸 인물들의 면면만 봐도 우리는 이 사람의 인터뷰집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걸 예감할 수 있다. 지승호는 우리 시대의 거울들을 제대로 비춰주는 또 하나의 거울인 셈이다. 영화로 치면, 잘 플로팅된 '액자식 구성'의 작품이 바로 그의 인터뷰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이번에는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표창원을 만났다.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2013년 10월에 출간된 이 책은 지승호와 표창원의 한국형 범죄학 인터뷰집이다. 표창원이 진정한 개혁적 보수주의자로서 사회적 커밍아웃을 한 이후 꽤 긴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기록이며, 다루는 소재나 내용이 그리 가볍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터뷰집이니만큼 비교적 편하게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 | 지승호 (지은이) | 김영사 | 2013-10 | 반양장본 (448쪽)

 

 

이 책의 프롤로그 '비정한 공범들의 도시에 홀연히 나타난 정의의 사나이'는 인터뷰어 지승호가 썼고, 에필로그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는 인터뷰이 표창원이 썼다. 그럼 지승호가 프롤로그에서 직접 밝힌 <공범들의 도시> 기본 구상부터 한번 읽어보자.

 

"표창원 박사는 원래 연쇄살인이나 엽기적인 범죄 등을 분석하는 전문가이자 범죄자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하는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유명하신 분이잖아. 범죄를 통해 본 한국 사회 진단, 한국 과학수사의 현주소, 범죄 예방을 위한 경찰 시스템의 개혁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묻고, 타고난 경찰 표창원이 답하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범죄 전반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신창원에서부터 오원춘까지, 자식 살해와 아동 성폭력, 묻지마 범죄부터 연쇄살인까지, 경찰대학 문제와 과학수사의 실패, 장준하에서부터 김광석·김성재까지, 경찰 내부의 문제와 정치 검찰 그리고 작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완전히 멘붕에 빠뜨린 국가기관들의 조직적인 대선개입 사건과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폭넓게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표창원의 강의와 방송 출연을 그동안 인상적으로 본 사람들은 <공범들의 도시>를 통해, 그가 다양한 한국적 범죄들을 과연 어떤 철학적 바탕 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어떻게 진단을 내리고 있는지를 총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까지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고, SNS를 포함해 워낙 많은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에,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좀 혼란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잘 단련된 관찰자이자 기록자인 지승호의 도움을 받아 심각하지만 친절하게, 무겁지만 상세하게, 전문적이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명확하면서도 편안한 대화체로 말이다. 게다가 두 사람 다 '베테랑'이어서 그런지, 곳곳에 자연스러운 유머도 가미되어 있고 한없이 깊이 빠져들기보다는 중간 중간 독자의 숨통을 틔워주는 얕은 대화도 적절하게 등장한다. 그 덕분에 인터뷰집치고는 약간 볼륨이 있는 편인데도 직접 읽어보면 생각보다는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가 지난해 연말 홀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지승호가 쓴 프롤로그 '비정한 공범들의 도시에 홀연히 나타난 정의의 사나이' 중에서.

 

암울한 현실과 근본적 고민, 불편한 진실과 정의를 위한 선택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3.8%가 '공정하지 않다'라고 답하고 있고,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 44%가 '10억 원을 준다면 징역 1년 정도 살 짓을 저지를 수 있다'라고 응답하고 있다.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우리 모두다."

- 표창원이 쓴 에필로그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중에서.

 

현대 사회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나 다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공범들의 도시>에서 표창원이 모범사례로 영국을 자주 언급하지만, 영국만 해도 이민정책의 전반적인 실패로 말미암아 자국 국민 3명 중에 2명이 '이민자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민자를 배척하고, 급기야 이민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미국 역시 말로는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뻐기지만, 실상 '백인·남성·기업인'으로부터 대부분 기부되는 정치자금 즉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 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편이다.

 

[출처: 고발뉴스 동영상 갈무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국은 유럽인들 사이의 농담 중 '경찰이 영국인이면 천국'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상당히 훌륭한 경찰 제도를 보유한 나라이고(요리사는 이태리인, 기술자는 독일인, 애인은 프랑스인), 미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을 가진 나라로서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하고 범죄를 은폐하려고 하면 어떤 대통령이든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나라다. 어쩌면 그래서 영국이 이민자 폭동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빨리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고, 미국 역시 극소수 엘리트층의 정치기부금 지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 선거가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선거 부정을 저지른 인간들이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고, 이를 엄정하게 수사해야 할 경찰은 사건을 축소하기 바빴다. 불법 선거가 드러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혐의가 있는 정치인들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대한민국 정부 안팎을 뻔뻔하게 활보하고 있으며, 사건 은폐에 책임이 있는 경찰관들은 국회 청문회에 나와서까지도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표창원 같은 사람이 경찰대학을 박차고 나와서 지금도 수구 정치 세력과 거대 경찰 조직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 아닐까?

 

일반 시민이 보기에도 요즘 현실이 너무나 암울한데, '타고난 경찰' 표창원은 오죽할까.. 그래서 시민을 대표해 지승호가 묻고, <공범들의 도시>에서 표창원은 진정한 보수의 품격, 민주 사회의 품격, 국민을 위한 경찰의 품격에 대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분명한 어조로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의 경찰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며, 여기에 등장하는 개별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적 범죄의 전체적인 그림도 웬만큼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표창원과 지승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고민도 보여준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뭘 하나 하나 바꾸려고 해서 바뀔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얘기가 자주 오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말도 무척 인상 깊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자기를 바쳐서 일해온 사람들 때문에'라는 말 자체를 언제까지 사용해야 될 것인가" 한마디로 각 개인의 노력이나 도덕성보다는,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와 감시체제가 잘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이걸 제대로 못한 다음에 찾아온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보면, 그 필요성과 중요성은 금방 답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공범들의 도시>에서 지승호와 표창원이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게 사회 전체가 투명하게 되고, 가장 정점에 있는 정치권력이 불법이나 반칙 없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국민의 감시를 받고, 또 국민과 제대로 소통해야만 사회의 모든 분야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2012년 대선 과정에서의 부정 선거 사태를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유이고, 표창원이 한국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알고 있음에도 경찰대학을 뛰쳐나오고 방송진행을 그만두면서까지 정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그는 지금 '백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터뷰 마지막에 표창원은 이렇게 다짐한다.

 

"저로서는 경찰과 범죄, 형사사법제도라는 것이 28년간, 경찰대학 입학하면서부터 모든 열정과 관심과 노력을 쏟아부은 분야니까요. 그걸 뭉뚱그려서 제가 얻은 한 가지의 단어는 결국은 정의거든요. 그 이외의 다른 이유나 명분,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상황이 어떻고, 안보가 어떻고, 이 모든 것들은 정의라는 이름 앞에서 길을 비켜줘야 된다. 정의만 제대로 바로 서게 된다면 다른 모든 것들도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제 삶은 거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완벽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정의'라는 수준이 확립되는 그런 사회가 되는 데 기여를 하고 싶어요. 이 책이 거기에 출발점 내지는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죠."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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