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수록 소설

「효진」 3회


근이가 방 앞에 찾아왔던 겨울날이 기억나. 왜 마음이 상해서 먼저 돌아왔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근이가 찾아올 걸 알고 있었던 건 분명해. 첫날은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돌아갔는데, 그다음 날에 와서는 택시에서 내리지 않았어. 추워서 서 있을 수 없으니까 택시미터기를 올리면서도 그냥 앉아 있었던 거야. 미친 게 아닌가, 기가 막혀서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어. 네가 없는 주말이었어.


근이와 사귀면서부터 과자를 만들었어. 이미 머릿속에는 서울 과자 지도가 대강 완성된 다음이었고 직접 만들고 싶었지. 황학동에 갔다가 외국인 가족이 쓰다가 버리고 간 듯한,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조그만 전기오븐을 구한 게 시작이었어. 팬이 너무 작아서 쿠키 한상자를 구우려면 다섯번쯤 구워야 했어. 토스터보다 조금 큰 오븐이었지. 심지어 전압이 맞지 않아서 오븐만 한 변압기를 써야 했고 아무래도 썩 맛있게 구워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이었어. 근이와의 기념일 전날엔 서울 시내 전철역 곳곳의 물품 보관함에 과자와 선물들을 숨겨놓았어. 다음 날 손을 잡고 보물찾기를 할 수 있도록. 대학로에서 을지로로, 을지로에서 신촌으로, 신촌에서 여의도로, 여의도에서 노량진으로, 노량진에서 강남으로, 강남에서 잠실로. 지금 만드는 것들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형편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근이는 잘도 먹었어. 다른 사람은 주지 않고 혼자 다 먹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듣기 좋았어.


근이에게 주려고 만들었다가 실패한 것들을 너는 다시 포장해서 네 남자친구들에게 주곤 했지. 직접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잘도 먹혔어. 대신 뒷정리를 같이 해주었는데 사실 그건 한 사람이 해도 충분한 일이었지만 꼭 둘이 함께 했잖아.



근이는 군대를 갔고, 전역해서는 호주에 갔어. 호주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는 도저히 같이 갈 수 없었어. 대학도 겨우 왔는데 무슨 어학연수. 몸만 오라고 해도 도저히 그럴 염치는 없었어. 골드코스트라 했어. 근이답게 낙천적인 지명을 골랐구나 싶었어. 써핑을 배운다고도 했고 캠핑을 간다고도 했고 호주의 유명한 배우를 봤다고도 했고 롤러코스터를 탔다고도 했어. 인터넷 전화는 반박자쯤 느려서 성가셨고 한번쯤 가야지 했지만 결국엔 가지 않았어. 근이가 돌아왔을 때 나는 직장인이었고 근이가 취직 준비를 할 때는 다시 대학원을 다니다 말다 하는 중이었어. 대학원 때부터는 너와도 따로 살았잖아. 방은 반토막이 되었고 오븐도 고장나서 버렸어. 그사이 언젠가부터 근이와 나는 헤어져 있더라.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났어. 맨홀에 낀 굽을 빼주는 정도의 귀여운 일은 언제나 일어나고, 근이는 좀처럼 집요한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억눌리지도 뒤틀리지도 않은 사람이 집요하기란 쉽지 않아, 그치?


그래도 자주 만났어. 계절이 바뀔 무렵에, 애인이 바뀔 무렵에 한번씩. 너도 기억하는 언젠가는 다음 날이 면접이라 해서 너희 집에 갔지. 근이 눈썹이 무성해 보여서 깎아달라고 말이야. 나는 눈썹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그리면 그렸지 깎을 일이 없어서 눈썹 칼이 낯설었어. 갑작스러운 방문에 너는 웃다 못해 짜증을 냈지만 근이의 눈썹을 공들여 깎아주었어. 그저 모양만 잡아주었을 뿐인데 근이의 눈매는 훨씬 깔끔해 보였지.


그 면접은 물론 통과하지 못했고, 2년이 더 걸렸구나. 근이가 이마 제모를 받고 나서 됐으니까. 나는 약간 좁은 듯한 그 이마도 좋아했는데 평범하게 넓은 이마가 되고 나서야 근이는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어. 나중에 대머리라도 되면 진짜 아깝겠네, 근이가 전화해서 그렇게 말했을 때 너무 서울말이라서 놀랐어. 대학 시절 내내 고치지 않았던 사투리를 드디어 완벽하게 고친 건데 이상하게 그게 싫었어.


가장 좋아했던 남자애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냐. 나는 굉장히 여러가지로부터 도망쳤거든.



그전에 석사 논문을 썼어. 너는 마침내 묶여 나온 내 논문을 열심히 읽고 나서는 웃기다고 그랬어. 웃기면 안되지, 하면서도 비전공자가 끝까지 읽어줬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어. 그렇구나. 나는 웃긴 논문을 썼구나. 들개가 나오고 아주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훼손된 시신이 나오고 역병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나오고 달력과 달력에서 누락된 것에 대한 논문이었어. 다행히 전공자들에게는 웃기게 읽히지 않았는지 학회에서 몇번 발표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즈음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졌달까. 가끔 불안정한 사람들이 대학원에 들어올 때가 있잖아. 전공에 상관없이 과마다 한명씩 꼭,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대학원에 와버린 케이스. 우리 과에도 그런 사람이 들어온 거야. 약간 과하게 들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여자애였는데, 술을 자기 주량보다 많이 마시는구나 정도가 첫인상이었어. 그리고 그해가 다 가기도 전에 그 후배는 교수들 사이를, 교수와 조교들 사이를, 선후배 동기 사이를 굉장히 복잡한 선으로 이간질했어. 교수 임용과 장학금 수령 결과가 바뀔 정도로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던 모양인데 애초에 악의가 있어서 벌인 일이면 빨리 탄로가 났겠지만 그저 자기 안의 불안을 사방에 던진 꼴이어서 꼬리가 늦게 붙잡혔어. 불안정한 사람 한명이 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행위였다고 할까. 나도 큰 타격을 입은 사람 중 하나였어. 그런 거짓말은 거짓말로 밝혀지고 나서도 이상한 효력을 발휘하잖아. 사람들은 지쳤고 그 어떤 것도 회복할 의지가 없었어. 덕분에 살이 몇 킬로쯤 빠졌지만 사실 너무 흔한 일이지. 분명 지금도 어디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걸.


그리고 그때 만나던 사람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그 사람과 헤어졌지. 시기가 가까이 겹치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이었구나. 근이를 좋아했던 것만큼 좋아하진 않았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큰 회사에 다녀서 늘 바쁘고 피곤해했지만, 성실하고 다정해서 괜찮지 않을까 했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계셨는데 인사를 하러 오라고 해서 꽤 긴장한 채 찾아갔지. 그 집에 막 들어섰을 때의 풍경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어. 장식대 없이 바닥에 바로 놓인 텔레비전 앞에 개지 않은 요와 이불이 도롱이벌레가 벗어놓고 간 껍질 집처럼 놓여 있었거든. 만약 그 이불이 개져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가끔 생각해보는데 그랬을 것 같진 않아. 그 사람 어머니는 완충이 될 만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돈 문제를 꺼냈거든. 자기가 꼭 받아야 하는 용돈의 액수와 우리가 마련해줘야 하는 주거 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꼭 끼는 트위드 투피스를 입고 식탁에 앉아서 자세를 고칠 때마다 의자에서 나는 소리에 불안해했어. 어찌나 난방을 하지 않았는지 스타킹을 신은 발가락이 얼다 못해 아팠어. 정말로 날 만나고 싶었다기보다는 아들이 모아둔 돈은 자기 것이라고 확실히 하고 싶어 전전긍긍했던 것 같아. 좋은 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왜 나 같은 대학원생과 만나는지 모르겠다고 거의 직접적으로 말했어. 곤란한 얘기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옆에서 휴대폰 게임을 했어. 뾰롱 뾰로롱 하는 효과음도 줄이지 않고서. 도망쳐야겠다, 돌아와서 혼자 있게 되자마자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왔어.



그대로 반대방향으로 뛰고 싶은 본능을 누르고 천천히 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에겐 그렇지 않았나봐. 그 점잖던 사람이 웬 인터넷 싸이트에 내 이름과 얼굴을 다 공개하며 자기 집이 가난하다고 홀어머니를 대놓고 무시하면서 도망간 여자라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거든. 가난하기로 치면 나도 가난하고 사실 내가 도망친 건 가난보다 좀더 어둡게 끈적이는 어떤 것으로부터였는데 나는 무슨무슨 녀라고 유행하는 비속어들로 요약되어버렸어. 그 사람은 새벽에 전화해 돌아와달라고 울면서도 매일매일 글을 올리더라. 욕설이 섞인 게시물과 간절한 전화 사이의 간극이 더 소름 끼쳤어. 이름이 흔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일단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사를 갔어. 혹 학교로 찾아오거나 할까봐 겁났고, 캠퍼스에서 비슷한 사람이라도 보면 가슴이 내려앉았던 게 기억나. 경찰에 더 기대가 없던 시절이었고…… 그러고 보니 그때 밥을 먹고 나면 자주 토했는데 아무래도 위험했었나. 갑자기 마른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턱 옆에, 귀 아래에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거든. 나도 그때 그 부분이 불룩 나왔었는데 토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거 같아. 그런 연예인들은 조금 걱정하게 돼.


너는 그 사람을 처음 만나보고 나서 애는 엄청 쓰는데 재미있는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어딘가 열등감이 있을 것 같다고 싫어했는데…… 네가 만나본 내 남자친구 중에 제일 싫다던 그 말을 왜 제대로 듣지 않았을까. 하여튼 내가 너무 머저리 같아서 너한테도 자세히 못했던 얘기야.


처한 상황 모두에 진저리를 치고 있을 즈음 학회에서 만난 일본 교수님이 방문 연구원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해오셨어. 하루도 생각해보지 않고 가겠다고 했어. 그렇게 효율적인 성격이 아닌데 준비를 어찌나 착착 해나갔던지 몰라. 그런데 그렇게 수월할 리가 없잖아.



출국을 일주일 앞두고 아빠한테 전화가 왔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동시에 편찮으셔서 간병을 하던 엄마가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거든. 마지막으로 집에 갔을 때 요즘엔 요양원도 있고 요양 보조금이란 것도 있다며 이러다 엄마가 암이라도 걸리겠다고 대들었다가 아빠한테 뺨을 맞고는 다시 가지 않았었는데, 정말로 암에 걸렸다고 했어. 다행히 아주 초기고 예후도 좋은 종류라 해서 곧 안도했지. 그런데 그다음 말이 문제였어. 이제 나더러 내려와 집안을 꾸리라는 거야. 어차피 제대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분수에 맞게 해야 한다며 살림을 하고 간병을 하라고 했어. 너무 당연해하고 당당해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끔찍했고, 다 멈추고 내려가기엔 내가 그만큼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어. 똑같이 나와 살아도 오빠는 애틋해하고 나는 원망했던 엄마였으니까 사실 공평하다면 공평한 일이지만. 다음 달에 내려갈게요, 하고는 그다음 주에 비행기를 탔어. 한시간 사십오분의 비행이 끝나고 하네다 공항에서 수화물을 찾으며 내가 느꼈던 안도감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더 멀리 날아갔다면 더 큰 안도감을 느꼈을까.


-다음화에 계속-


우리에게 설레는 이름이 된 작가 정세랑 첫 소설집!

“적당히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거기서 얻는 것들은 분명히 있어.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장편소설에 새로운 활력을 더해준 작가 정세랑이 드디어 첫번째 소설집을 출간한다. 2010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8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은 결혼과 이혼, 뱀파이어, 돌연사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신선하고도 경쾌한 상상력을 펼쳐놓는다. 보이지 않는 폭력과 부조리에 맞서는 매력적인 인물들은 정세랑 특유의 명랑한 필치에 실려 지금 이곳에서 함께 견디는 이들에게 따듯한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은 또한, 표지 일러스트를 맡은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기존 독자들의 기대를 한층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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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랑9 2018-11-1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음화 너무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