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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아나키스트 - 70~80년대 미국 환경운동의 새로운 전위 에드워드 애비의 일생
제임스 카할란 지음, 최충익 옮김 / 달팽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평자는 이 책을 보고 두 번을 놀랐다.
첫째, 이렇게 큰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전기(傳記 biography)를 번역하고 출판한 용감한 출판사가 있다는 사실.
둘째, 편역한 책을 감히 ‘옮김(= 번역)’이라고 한 사실.
신문의 book review 지면을 열심히 보는 편이라, Edward Abbey에 관한 책이 어느 정도만 떠들썩하게 나왔더라면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이나, 이 번역본은 2006년 9월에 출판되었음에도(원본은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출판부에서 2001년 나왔다) 평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책을 낸 ‘달팽이출판’이란 출판사 이름으로 검색해 본 결과, 생명, 환경에 관한 책을 영리(營利)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내는 작은 출판사인 것 같아, 그 노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우리나라에서 에드워드 애비는 지금도 그리 널리 알려지고 출간된 작가는 아니다. 벌써 1989년에 사망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에야 그 대표작인 에세이집 “Desert Solitaire(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 원본 1968년)”가 번역되었고(그 이전 국내에서의 출판 이력을 평자는 모른다), 2004년 다른 에세이집 “Down the River(소로와 함께 강을 따라서. 원본 1982년)”가 출판되었을 뿐이며, 이 두 권의 책도 국내에서 히트했다는 조짐이 없다..
한편 애비를 1970년대 이후 미국 환경운동(예를 들어 급진적이었던 Earth First!같은)의 전위이자 컬트로 만들었던 소설 대표작 “The Monkey Wrench Gang(몽키 스패너뿐만 아니라 화약 등을 무기로, 미국 남서부의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과 건설운동의 사보타주*를 꾀하는 4인조의 활약을 그린 소설. 1975년작)”은 아직도 번역되지 않았다. 평자는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에 나온 애비 소개를 보고 흥미를 느껴, 2000년에 나온 Harper Collins사의 문고판으로 본 적이 있는데,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애비 특유의 문체(비꼬고, 어려운 단어 많이 쓰고, 비문법적인 문장, 속어도 많이 나오며, 동식물, 건설, 화약 등 전문 용어도 많다) 때문에 애를 쓰고 읽은 기억이 있다. 지금 이 전기에 의하면 이 소설은 매년 영화판권을 갱신하면서 애비 및 그 상속자에게 판권료를 지불하고 있으나, 출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보타주 선동 혐의로 고소될까봐 겁을 낸 영화사에 의해 실제 영화로는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 사보타주(sabotage): 우리나라에서는 ‘태업(slow down)’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원래 의미는 ‘쟁의 중인 노동자들에 의한 공장설비, 기계 등의 파괴 및 생산방해’이다.
그런데 왜 번역자들(또는 출판사, 기획자, 편집자)은 책의 제목을 마음대로 바꿀까?
1. “Desert Solitaire: A Season in the Wilderness ” (1968년 처음 나왔을 때의 제목이고, 1988년 애리조나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개정판에서는 subtitle을 떼고, 그냥 ‘Desert Solitaire’로 나왔다. ‘solitaire’는 ‘혼자서 하는 카드 게임’이라는 뜻이지만, 굳이 번역하자면 “사막의 고독” 정도가 되겠다. 혹시 할머니나 어머니가 혼자서 화투로 패를 떼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이것과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사막에서 혼자 카드로 패 떼기'라고 하면 우습지 않는가?)
⇒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 한 반문명주의자의 자연 예찬” (황의방 옮김, 도서출판 두레, 2003)
이를 또 이 책에서는 “태양이 머무는 아치스”로 제목을 잘못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p.22, p.342), 한술 떠 떠서 위 책의 번역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책 전체에 걸쳐서 “사막의 은둔자”라고 스스로 번역해서 쓰지만 글쎄다.
2. “Down the River”
⇒ “소로와 함께 강을 따라서” (신소희 옮김, 문예출판, 2004)
“Walden”의 작가인 Henry David Thoreau의 유명세를 타고자 하는 의도가 살짝 보이지만, 책 1장의 제목인 ‘Down the River with Thoreau’을 그대로 빌려왔으며, 애비가 종종 소로에 비교된다는 점에서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다.
3. “Edward Abbey: a life” (이 책)
⇒ “사막의 아나키스트: 에드워드 애비”
‘사막’,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는 애비의 일생을 이해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다른 하나가 있다면 ‘섹스’ 정도일 것)이기는 하지만, 이 제목은 다른 사람의 애비 전기에서 이미 사용되었다(James Bishop, Epitaph for a Desert Anarchist: The Life and Legacy of Edward Abbey, New York: Atheneum, 1994). 자기 책의 번역판 제목으로 다른 사람이 쓴 애비 전기의 제목을 차용(借用)했다는 것을 책의 원저자인 James Cahalan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더구나 캐할란은 가감 없는 ‘정직한 책’을 목적으로 삼고 있고 그런 면에서 그의 건조 간결한 원제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2번 2권의 번역서들이 비록 제목은 손을 봤을지라도 각 장(chapter)의 제목은 충실히 번역한 데 반해, 이 책의 역자는 도대체 무슨 심정으로 각 장의 제목까지도 아래와 같이 바꿔 버렸을까? 더구나 번역된 제목은 환경운동에의 대의에 충실하기보다는 오히려 선정적인 것이라 생각되기에 영문을 알 수 없다. (이하에서 번역서에 없거나 원본과 틀린 번역은 평자가 원본과 대조, 직접 한 것이며, 이 책의 원본은 hardcover, paperback 두 종류로 나왔지만 내용은 같으므로, 다른 판본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을 것이다.)
원본의 chapter 제목 |
직역 |
이 책의 chapter 제목 |
Introduction |
서론 |
머리말 |
1. The Boy from Home |
‘집’에서 온 소년 |
신화의 기원 |
2. Go West, Young Man |
청년, 서부로 가다 |
젊은이여! 서부로 가라 |
3. Ranging Across America |
미국을 떠돌며 |
난 황야로 가야만 해 |
4. Singing the Hoboken Blues |
호보켄 블루스 |
절대고독을 즐기며 |
5. Writing the Wild |
황야를 쓰다 |
야생을 노래하는 돈 쥬앙 |
6. In the Canyons |
캐년 속에서 |
사막에서 춤추는 코요테 |
7. The Bard of Moab |
모압의 음유시인 |
색을 밝히는 고약한 늙은이 |
8. The Bard of Tucson |
투싼의 음유시인 |
다섯 번째 마지막 결혼 |
9. “If there’s anyone here I’ve failed to insult…” |
“저한테서 아직도 모욕을 받아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
사막의 싸움닭 |
10. *One Life at a Time, Please |
제발 한 번에 한 생애씩만 |
묘비명, 노 코멘트 |
11. Conclusion: Waking a Legacy |
결론: 유산의 부활 |
끝나지 않은 신화 --- 죽음 그 뒤 |
* “One life at a Time, Please”는 1988년에 나온 애비의 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일을 서두르거나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욕심 내는 사람에게 차근차근 하나씩 하라고 할 때 쓰는 표현인“One thing at a time (한 번에 하나씩)”를 parody한 것. 이 책에서는 “단 한번뿐인 인생(p.342)”으로 번역했는데, 함의가 반대로 되었다.
이 책은 환경운동의 전위, 대부라는 컬트에 싸여 신비화되기까지 했던 작가의 생을 수많은 자료에 근거해서 학술적인 자세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해부한 ‘정직한 책’이다. “미국 서남부의 소로, 급진적 환경운동의 대부, 공원 직원 및 화재감시원, 버스운전사 등 다채로운 경험의 소유자, 강을 타는 것을 즐긴 자연주의 작가, 아나키스트, 예일(Yale) 대학원에 들어갔으나 숨막히는 분위기에 못 이겨 2주일 만에 그만 둔 사람, 강 여행을 위해 수상을 포기한 사람(이상은 앞서 나온 두 권 번역서의 소개)” 정도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애비의 일생에 대해, 미국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좌파 환경운동가들도 싫어하고 우파 개발론자에게도 욕을 먹은 그의 실체를 이 책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그는 자신의 진실된 모습(수줍고 부끄러워하며, 예의 바르고 부드러운 대인관계)과는 다른 외적인 persona를 만들었는데, 이는 심술궂고, 위악적이기까지 하며, 남과 논쟁을 즐기고,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외적 persona를 일면 즐기고 일면 불편해했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항상 펜실베니아주의 ‘홈(Home 집)’에서 태어나고 애리조나주의 ‘오라클(Oracle : 신탁, 신의 계시를 전하는 장소 – 영화 매트릭스를 상기해 보라)’에서 살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애비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이들 단어의 어감이 자신의 신비화에 도움이 되니까 차용했을 뿐이고, 테러 등의 위협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큰 논란을 불러왔던 국립공원 안에서의 자동차 운행 금지 제안, 이민자 제한, 공공 용지에서의 방목 금지 등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의 이런 제안들은 당시에는 분노와 비웃음을 샀지만 나중에는 어떤 형태로든 실행에 옮겨지게 되는데, 그는 자신에게 시류보다 30년 뒤졌다고 비평한 사람을 상대로 ‘무슨 소리, 나는 100년 뒤졌어”라고 일갈했다.
무엇보다 애비는 무정부주의자답게 어떤 권위나 스테레오타이프에 얽매이는 것을 가장 싫어해, 여성운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추종하거나, 모든 환경운동을 좌파 성향으로 재단하는 것을 싫어했고(실제 후일 그와 Earth First!운동의 창시자들은 젊은 좌파 환경운동가들에 의해 공격 당한다), “politically correct(정치적으로 조신한 것, 즉 다시 말해 아무 소신 없이 눈치껏 하는 것)”가 점점 힘을 얻는 세상 시류에서도 틀린 것은 과감히 틀린다고 비판했는데, 늘어나는 멕시코 불법이민자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국경선을 막고 그들에게 총과 탄약을 준 후 그들 나라로 돌려 보내라(그러면 그 총으로 그들이 멕시코에서 자신들의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다). 자꾸 이민을 허용하다간 우리나라가 그들만큼 더러운 나라로 전락할 뿐, 아무런 문제해결을 할 수 없다”는 말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냐는 큰 논란을 스스로 불러 일으켰다. 더구나 그는 미국총기협회(ARA)의 회원으로 개인의 총기 소지를 지지했으며(이 입장이 진보적인 인사들이나 좌파들에게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지 생각해 보라), 여성의 동등함을 인정하면서도 남녀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스스로 feminism의 사도인 양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에게는 남녀 모두 가차없는 비판과 조롱을 퍼부어, 남성 우월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일생을 통해 5번 결혼했고 총 5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래서 자신이 잦은 결혼으로 인구과잉 문제에 기여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자신은 결혼당 평균 1명의 자식만을 낳았을 뿐이니 모두 자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되쏘았다). 마지막 결혼 이전까지 4번의 결혼은 모두 자신의 바람기로 인해 파탄이 났고(파탄 상태에서 백혈병으로 급서한 세 번째 아내를 포함한다), 그는 젊은 시절 끊임없이 성적 쾌락을 찾아 헤맨 비트족 또는 히피 같은 생활을 계속했다. 그가 문명(文名)을 얻기 시작한 후 강연회에서도 시답잖은 성적 농담으로 인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청중도 꽤 많았다. 예를 들어 그의 일지(journal)을 보면 “I can’t bear monogamy…I crave sexual excitement. Which means, for me, a new girl now and then in my bed (원본 p.118, 번역본 p.149)”같은 기록이 자주 발견된다.
애비는 복잡한 지식인이라는 이미지보다는 행동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는 뉴멕시코대학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영어, 철학 동시 전공)를 받은 데다가 영국의 에딘버러, 미국의 스탠포드대학 등지에서도 수학한 가방끈이 긴 사람이며, 말년에는 애리조나대학교 영어과 정교수 지위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그는 또 자신이 모든 글을 쉽게 써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 했지만, 사실 엄청난 수정과 퇴고를 거듭한 사람으로, 이미 출간된 글조차 판을 달리 할 때 고치곤 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매우 다산(多産)한 작가로 20여권이 넘는 단행본을 출간한 외에도 수많은 서평, 기사를 남겼는데, 그의 야외활동 기록과 화려한 여성편력까지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정력가였음에 틀림없다.
평생에 걸친 술고래였던 애비는 아마도 이의 영향으로, 행복한 마지막 결혼 3개월 후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가 나중에 식도 문맥 정맥류로 진단 받게 되는데, 결국 이 때문에 식도 출혈을 일으켜 사망한다. 미리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마음을 정리했으며, 주변에 자신의 불법매장 절차를 부탁했다. 자신이 평소에 즐겨 쓰던 슬리핑백에 담겨 애리조나주 남부의 황무지에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매장된 그의 묘비명(epitaph)은 단 하나 “No Comment(할 말 없음)”였다. 이 장례의식에서도 보여주는 컬트적 성격 때문에 한 때 애비는 죽지 않았고 다만 어느 황무지에 숨어서 잘 살고 있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떠돌았고, 아직도 그의 매장 장소를 둘러싼 추측이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나 출판사는 이런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자세보다는 환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을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되며(미국에서 이 부류의 사람들은 나중에 애비의 비판자로 돌아섰다), 이는 원본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짜깁기를 한 편역물을 만든 점에서 가장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출판사나 작가는 환경운동에 충실할 수 있으며, 이 입장을 다른 사람이 비난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책을 잘못 고른 것이며, 편역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밝히지 않은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이 책 어디에도 편역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아쉽다.
이 책은 원본의 내용이 매우 충실하고 알기 쉬운 문체를 사용하고 있어, 이해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책 전체를 통해서 역자 마음인지 출판사 편집진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많은 부분들을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문장을 합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면서 대충의 의도만을 전달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번역본만으로도 애비의 삶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까닭은 그만큼 원본의 내용이 명료하다는 점과, 역자의 요약 솜씨(?)가 뛰어난 점에 있지 않을까?
얼마나 생략했으며 전체적으로 제대로 원문대로 번역한 부분이 과연 몇 퍼센트인지 정확히 대조 계산할 용의도 시간도 없지만,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책의 서론 부분을 한 두 페이지 보자. 괄호 안의 밑줄 부분이 역자가 생략한 부분이다. 서론 서두(번역서의 21페이지에 해당)에도 많은 생략이 있지만 그 내용은 1장에서 되풀이되니까 너그럽게 생략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자. 21페이지 밑에서 4째 줄부터다.
“…또한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해서 교정이 필요한 사람들과 이미 애비를 많이 알고 있지만 더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Cactus Abbey(선인장 애비 – 선인장 가시처럼 성질 더러운 애비라는 뜻)”라는 컬트의 추종자들은 한편 여기서 또 다른 더욱 사적인 애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반면, 어디에선가 주어 들은 몇몇 일화만으로 애비를 예를 들어 인종주의자 및 여성혐오주의자로 단정한 독자들이나 선생들, 따라서 그의 책을 읽거나 가르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영어-스페인어 이중언어로 된 신문을 편집하고, 나바호족의 집회에서 연설을 했던 애비, 여러 여성작가들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서평을 쓰고, 충고를 해주고, 친구가 되어주었던 애비에 대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애비는 단순히 반문화적인 카우보이도 아니며, 시대에 역행하는 불한당도 아니다. 다만, 매우 복잡한 사람이다. 거의 대부분의 애비의 이미지는 부정확성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잘 알려져 있는 흔한 이야기는 “펜실베니아 ‘홈’에서 태어나 애리조나의 ‘오라클’에서 생활했고 여성차별과 인종차별을 한 무례한 성격이지만 당대 최고의 자연작가”라는 것이다.
이 표현에는 오류와 오해 그리고 왜곡이 담겨 있다. (이 묘사에 따른 문제점은 그의 출생지와 후일 거주지의 부정확성을 넘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포함한다. 애비는 평생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지역에서 자라난 것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그는 자신이 ‘자연주의 작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는 전형적으로 대단히 내성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분명히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여자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이 점은 이 책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플라토닉한 좋은 감정을 유지했던 여성 친구로는 가수이자 활동가인 케이티 리, 동료작가였던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와 앤 쯔빙거를 포함하는데, 그들은 모두 애비의 친절하고 신사같이 점잖은 특징을 증언하고 있다.) 애비는 에세이집 “사막의 은둔자 Desert Solitaire 1968”(우리말 번역: “태양이 머무는 아치스” 두레 2003-옮긴 이)에서 ‘캑터스 애드Cactus Ed’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카우보이나 산림경비원의 인상을 주고자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생략한 내용은 줄어들지만 여전히 생략과 편집은 계속된다. 예를 들어, 번역서 p.51을 보면 애비의 직접 인용 뒤가 6줄에 불과하며 1장이 끝나지만, 원본에서는 완전히 한 장 분량이며 우리말로 번역하면 적어도 3페이지는 될 것이다. 이 책 원본의 장점 중 하나가 철저한 고증에 의한 것으로 원본 p.277~p.313의 방대한 주석(Notes)과 p.315~p.336의 Abbey Bibliography(서지)는 애비를 좀 더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데 아쉽게도 번역에서 통째로 빠져버렸다. 또 원저자의 acknowledgement(감사의 말, pp.337~339)이나 Index(찾아보기, pp.343~357)도 빠진 대신, 원본에는 없던 웬델 베리의 글이 부록으로 첨부되었다(번역서 pp.327~341).
번역서 앞에 나오는 사진 부분에서도 빠진 것이 있거나 설명(원본에는 책 중간에 실려 있다)에서 역자 임의로 고치거나 생략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번역서 사진 중 마지막의 것을 보자. 애비가 죽고 2달 후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열린 ‘밤샘(經夜 wake)’ 기념의식 사진이다.
(번역서) 1989년 5월 20일 토요일 아치스 국립공원의 메사 지역에 애비를 기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메사 지역은 주위의 지형이 거칠고 돌이 많아 평소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원본) “The Journey Home(귀향 – 애비 에세이집의 제목이다. 평자)”: the big sunrise wake for the Abbey on Rough and Rocky Mesa, adjacent to Arches National Park, on Saturday, May 20, 1989. Emcee Ken Sleight, the inspiration for Seldom Seen Smith in the Monkey Wrench Gang, is at the podium to the left, next to the American flag. (1989년 5월 20일 토요일, 아치스 국립공원에 인접한 러프 앤드 록키 메사에서 애비를 위해 열린 ‘거대한 일출’ 밤샘 행사. 소설 “몽키 렌치 갱”에 나오는 셀덤 신 스미스의 모델인 켄 슬레이트가 사회자로서 연단 왼편, 미국 국기 옆에 앉아 있다.)”
한편 번역본의 각 장 맨 앞에 나오는 사진은 원본에는 없는 것이다. 그 중 76페이지의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사실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Bryce Canyon National Park)’ 사진이다.
이런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애비란 사람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 책은 유용하다. 학술적인 접근을 원하는 분은 물론 원본을 봐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바쁜 독자들은 대충 이 번역본으로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니까. 또 재미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어지간한 소설보다도 나을 것이다. 애비의 일생 자체가 워낙 극적이니까.
애비 자신은 ‘자연주의 작가(naturalist)’가 아니라 ‘자서전 작가(autobiographer)’이고 싶어했고(그의 책에서, 소설이든 에세이집이든, 자서전적 요소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자서전적 요소라도 그 진실성을 추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급진적 환경운동 컬트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즐겼지만, 사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자연주의 작가’로서였고(우리나라에서 이미 출간된 두 권의 에세이집이 이를 증명해준다), 평자 역시 이에 동의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