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비키니 논쟁](대충 이렇게 부르자. 머리 아프니까]이 점입가경이다. 우리 모두는 이 논쟁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모두 궁금해 하고 있는 것 같다. 시쳇말로 끝을 보고자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여기서 [<나꼼수> 비키니 논쟁]이라는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며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묻지 말자.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소위 여성인권을 대리표상한다는 일부 페미니스트이나 그밖에 <나꼼수>를 비난, 비판하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목적하는 것처럼 "사과는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과정, 아니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이번 사태를 바라보기 위한 전제들의 설정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이 전제들은 우리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기본적 관점(주의)을 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다.
Ⅰ. 이번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세 가지 고리들[기독교 문제, 지역차별, 성차별]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고리들에 걸리면 발생하는 사태와 관련해서 어떤 주체들일지라도 결코 만족할 만한 해답을 얻지 못한다.
Ⅱ. 그런 만큼 이번 사태도 아마 어떤 결정 (불)가능성의 영역 안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Ⅲ. 사건과 관련되는 주체들은 어떠한 관계성에 놓이게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를 긍정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방법은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들 각자가 어떤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 [<나꼼수> 비키니 논쟁]과 관련해서 사과는 누가 누구에게 해야 하는가?
에둘러가지 말자. 소위 페미니스트를 대리표상한다는 일부 여성들이나 그밖에 <나꼼수>를 비난, 비판하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목적하는 것은 단 하나다. "<나꼼수>가 사과를 해라!" 이 문제와 관련해서 사과의 주체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면 사과의 대상은 누구인가? 사과를 하는 행위가 합리적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의 관계성이 성립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건 <합리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소위 여성인권을 대리표상한다는 일부 페미니스트이나 그밖에 <나꼼수>를 비난,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과하는 행위> 그 자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과를 받는 사람의 존재의 명확성이다. <나꼼수>가 유령에게 사과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말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가? 비키니 응원의 당사자인 아가씨? 삼국카페 회원들? 숙대 총학생회? 공지영? 조중동?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마초들?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고매하다고 자위하는 순혈주의 진보 및 좌파 지식인들/운동가들? 이땅의 모든 여성들? 꼴통 수구 보수파들? 정말 그럴리 없겠지만 가까? 안타깝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사과의 주체-사과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대상 간의 관계성은 철저히 분열적이다. 이게 <나꼼수>의 전적인 잘못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나꼼수>가 사과를 해라!" 라고 외치는 모든 주체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사과의 주체-사과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대상 간의 관계성의 분열적 양상을 극단으로 치닫게 할 뿐이다. 즉 맹목적으로 "<나꼼수>가 사과를 해라!" 라고 외치는 모든 주체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오직 행위의 목적과는 상관 없는 수단, 즉 사과를 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행위 간의 관계성에 토대를 두는 수단 그 자체만을 정당화 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이 사태의 본질과 교훈은 망각된 채 사라져버린다. 지금 이 논쟁의 역설적 귀결은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나꼼수>의 멤버이지만, F4 중 이 사건과 관련해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있어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정봉주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 <폭력의 증거>가 맹목적으로 "<나꼼수>가 사과를 해라!" 라고 외치는 모든 주체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생산하는 정치적 효과를 직접적으로 표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어떤 부재하는 유령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그것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거룩한 신성동맹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폭력의 증거]
3. 누가 누구의 욕망을 대리표상하는가?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어떤 부재하는 유령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그것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거룩한 신성동맹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믿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이번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하는 주체들 간의 욕망이 상충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렇게 상충하는 욕망은 어떤 대리자들에 의해서 결코 대리표상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봉주를 제외한 <나꼼수>의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은 2월 4일 열린 <시사인 2012콘서트>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그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나꼼수>뿐 아니라 그간의 삶에서도 여성에 대해 취한 스탠스를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우리는 <한국일보>에 보도된 내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콘서트에 직접 참여한 사람의 기록에 의거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은 <비키니>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여겨졌던 <코피>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스스로 해명한다. 물론 그들의 행위와 관련된 해명의 촛점은 물론 가카라는 대타자에 대한 욕망의 역동일시(화)에 맞추어져 있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그들은 <진정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응은 나꼼수 측의 사과와 관련하여 두 가지로 이끌려 나올 수 있다. 한편으로, 그들의 진정성을 믿고자 하는 반응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꼼수>의 사과를 끝까지 받아내고자 압박하고자 하는 반응이 있을 것이다.
[시사인 2012콘서트]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 두 가지 반응 중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1) 결국 사과의 주체-사과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대상 간의 관계성의 분열적 양상을 극단으로 치달아 어떤 아포리아적 상황에 이를 것이다.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말이다. 2) 사과의 주체-사과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대상은 이 사태와 관련될 수 잇는 어떤 주체도 가능적 주체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한 주체가 다른 주체의 욕망을 대리표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삼국카페가 모든 여성주체들의 욕망을 <여성인권>이라는 언표 아래 동일성의 이름으로 묶어둘 수 없다. 이에 대한 사례는 82COOK 여성 회원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통해서 증명된다. 그러므로 사과의 주체-사과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대상 간의 관계성의 분열적 양상이 돋보이는 현재적 시점에서 <나꼼수>의 사과/사과하지 않음은 어떤 동전 던지기의 상황에 놓여있다. 앞면과 뒷면에 따라서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 <나꼼수>의 사과/사과하지 않음은 어떤 한 집단 혹은 몇몇의 주체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는 있지만, 다른 집단 혹은 몇몇의 주체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즉 그들의 사과하는 행위의 선택은 모두를 위한 선택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위하지 않는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맹목적으로 "<나꼼수>가 사과를 해라!" 라고 외치는 모든 주체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오직 행위의 목적과는 상관 없는 수단, 즉 사과를 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행위 간의 관계성에 토대를 두는 수단 그 자체만을 정당화 할 뿐이라는 무서운 진리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82COOK]
4.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 누구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맹목적으로 "<나꼼수>가 사과를 해라!" 라고 외치는 모든 주체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오직 행위의 목적과는 상관 없는 수단, 즉 사과를 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행위 간의 관계성에 토대를 두는 수단 그 자체만을 정당화 할 뿐이다. 이를 정당화하는 낙인은 바로 "<나꼼수>는 <마초>다"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 만큼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는 표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꼼수>가 진정 <마초>인 것과 아닌 것과는 전혀 상관 없다. <마초>는 오직 행위의 목적과는 상관 없는 수단, 즉 사과를 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행위 간의 관계성에 토대를 두는 수단 그 자체만을 정당화 할 뿐인 모든 주체들의 정치적 목소리들이 공명하는 공통의 기표일 뿐이다. 이 기표 아래 좌파/진보 지식인, 운동가뿐 아니라 여성인권주의자, 심지어 조중동 같은 수구 꼴통들의 신성동맹이 이루어진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초 아닌가? 마초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을 둘러싼 생물학적 차이의 단순성이 결코 아니다. 차라리 마초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남성과는 상관 없이 어떤 젠더적 주체들도 권력관계 안에서 폭력(성)의 주체로 생산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는 "누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답은 매우 간단하다. 즉 "<나꼼수>는 <마초>다"라고 외치는 모든 주체들( 좌파/진보 지식인, 운동가뿐 아니라 여성인권주의자, 심지어 조중동)과 그 역의 주체들이 "나는 과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자인가?"라고 묻고, 그에 대한 긍정적 답을 얻으면 된다. 이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고 긍정적인 대답을 얻기를 노력하지 않는 모든 자들은 이 사태와 관련해서 <나꼼수>를 단순히 도덕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관점으로 낙인찍는 자다. 이와 관련해서는 심지어 <나꼼수> 자신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서 수구든, 보수든, 좌파든, 진보든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과 국면들을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사과의 주체-사과하는 행위-사과를 받는 대상 간의 관계성의 분열적 양상을 극단으로 치달아 어떤 아포리아적 상황에 이른 현재의 시점에서 <나꼼수> 로부터 사과를 이끌어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삼국카페가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분명 이러한 맥락에서일 게다.
이런 상황을 두고서 진보의 분열이니 갈등이니 하는 수구적이고 꼰대 같은 해석은 그만두자. 다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각자의 길을 가자. 적어도 우리 좌파/진보의 영역에서만 한정하여 서도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나꼼수>를 지양하자. 즉 우리 좌파/진보의 영역에서 긍정적 방식으로 <나꼼수>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극복하자. 더 분명히 말해 우리 좌파/진보의 영역에서 <나꼼수>가 생산한 정치적 가치들을 낡은 가치들로 전락시킬 새로운 정치적 가치들을 생산하자. <나꼼수>가 보여준 상상력을 뛰어넘자. 그것이 사과를 받아내는 행위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만 진보/좌파가 그토록 비판하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심지어 <나꼼수>는 극복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노무현조차도 제대로 지양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부정하지 말자. 그런 상황에서 <나꼼수>를 지양하자는 것은 엄청나게 지난한 일일 것이다. 쉽게 비판하지만 말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잔 말이다.
한 가지만 분명히 말하자. <나꼼수>가 생산한 새로운 가치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다. 그 가치를 제대로 지양할 진보/좌파만이 아포리아적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는 정말 힘든 일일 뿐만 아니라 만약 그게 된다면 매우 고귀하며, 진정 우리 좌파가 원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땐 그런 세상에 대한 열망은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보다 새누리당이 더한 것 같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라도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뿐 아니라 진보/좌파는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조차도 없다. 그들이 진정 <가까>[이는 단순히 MB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나꼼수>가 폭로했듯이, MB라는 고유명사의 껍데기를 빌린 이땅의 모든 기득권자들의 집합을 현시하는 일반명상일 뿐이다. 따라서 <가까>에 대한 투쟁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다시 읽히고, 씌어져야 한다.]로 대리표상되는 이 땅의 기득권을 전복하고자 하는 자들인가?
P.S. 이 사건과 관련된 몇 가지 판단 자료들을 첨부한다.
1. 주요일간지 반응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20206141815953&p=mediatoday
2. 팬덤 현상/이분법주의 비판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20202155446218&p=mediatoday
http://search.daum.net/search?nil_suggest=btn&nil_ch=&rtupcoll=&w=news&m=&f=&lpp=&bw=1261&bh=658&sug=&cluster=y&q=%B3%AA%B2%C4%BC%F6%C1%F6%BD%C4%C0%CE
3. 진보진영의 도덕주의 프레임 비판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14
4. 전문가 진단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062115555&code=940705
5. 비키니 논쟁의 SNS 분석
http://nakkomsu.blogspot.com/2012/02/blog-post_86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