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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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옥타비아 버틀러


미국에서도 드문 흑인 여성 SF 작가로, 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네뷸러상, 휴고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특히 SF계의 그랜드 데임grande dame으로 불린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두닦이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머니가 하녀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엄격한 침례교도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외동으로 자라나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타는 아이였으며, 외로움과 무료함에서 벗어나려 일찌감치 독서와 몽상에 취미를 들였다고 한다. 특히 《어메이징》《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갤럭시》 같은 SF 잡지를 탐독하면서 점차 SF의 고전들을 모두 섭렵했다. 작가가 된 계기는 열두 살 때, TV에서 <화성의 악녀Devil Girl from Mars>라는 형편없는 영화를 보고, ‘나도 저거보단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된 일이다. 이때 쓰기 시작한 이야기가 바로 초능력자들의 진화라는 견지에서 지구의 역사와 미래를 다시 쓴 ‘도안을 만드는 사람’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 계속 글을 쓰면서 1968년에 패서디나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등에서 문학 창작 수업을 들었다. 



2006년 초에 58세의 나이로 영면한 뒤, ‘옥타비아 버틀러 기념 장학금’이 설립되었으며 2010년 시애틀 소재 ‘SF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었다. 작가가 53세 때 직접 쓴 소개는 다음과 같았다. “맘 편한 비사교적 인물, 거대 도시에 사는 은둔자, 꼼꼼하지 못한 염세주의자, 페미니스트, 흑인, 전 침례교도, 그리고 야망, 게으름, 불안, 확신, 정열이 물과 기름처럼 뒤섞인 인물. 또한 10살짜리 꼬마 작가였던 어린 시절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으며, 언젠가 80세가 되어서도 계속 글을 쓰고 있기를 꿈꾸는 작가.” 


작품: 시리즈로 묶일 수 있는 장편소설을 여럿 발표했다. 



Patternist 시리즈 - Patternmaster(1976), Mind of My Mind(1977), Survivor(1978), Wild Seed(1980), Clay’s Ark(1984). 


Lilith’s Brood(Xenogenesis) 3부작 - Dawn(1987), Adulthood Rites(1988), Imago(1989). 


Parable 시리즈 - Parable of the Sower(1993), Parable of the Talents (1998), Parable of the Trickster(미완성). 


그 외에 Kindred(1979), Fledgling(2005), 소설집 - Bloodchild and Other Stories(1995, 2006) 등의 작품이 있다. 


수상: PEN American Center 평생공로상(2000), 네뷸러상(1999, Parable of the Talents), 맥아더 재단 Genius Grant(1995), 휴고상(1985, Bloodchild), 로커스상(=), Science Fiction Chronicle 상(=), 네뷸러상(1984, =), 휴고상(1984, Speech Sounds)

- 네이버 책 정보에서 발췌





 1947년 생으로 태어나 1976년 작가로써의 삶을 시작한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 'SF'장르 소설가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당대가 백인 위주의 문학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점은 더욱 더 도드라질 것이다. 아울러 아프로퓨처리즘의 대표 주자이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인종과 젠더의 문제를 그녀만큼 잘 녹여낸 작가가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읽은 경험이 짧아 모르겠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읽은 내력이 짧다고 옥타비아 버틀러의 위대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KINDRDED는 한국에 번역된 몇 안되는 버틀러의 작품 중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품이다. 줄거리는 검색을 해보시기 바란다. 

 다나가 사는 것으로 지목된 1976년의 캘리포니아는 현 시점에서 봤을 때 40년 전이고, 다나가 타임슬립을 시작하는 1815년의 메릴랜드는 지금보다 101년 전인데도 소설을 읽는 내내 숨이 막혔던 것 같다. 시대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만이 있을 뿐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너무도 지금의 것이었다. 시의성의 문제를 따진다면 이만치 적합할 수가 없겠고, 현재성의 문제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아니, 지극히 현재적이다.

 1976년의 다나(흑인)는 그저 미국인일 뿐이고 사랑하는 남편 케빈(백인)을 갖고 있는 시민이지만 그녀가 타임슬립을 하게 된 1800년대의 메릴랜드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며 이루어져서도 안되는 일이다. 당시의 미국은 남북이 분열하고 노예제의 문제가 심각하던 시절이었다. 흑인은 노예였고, 흑인 중에서도 여성은 여성이기에 받아야 했던 성적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다. 노예이기에 글을 알아서는 안되었으며 노예이기에 가축과도 같은 취급, 재산에 불과한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당대의 문화는 흑인을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미래인인 다나는 수많은 부조리들을 목격하게 되고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남녀 간의 성차별, 인종적인 차별이 질서이고 상식인 것이다. 다나는 '백인 검둥이'라 불리우며 백인에게도 흑인에게도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버틀러는 지극한 리얼리즘적 관점으로 과거의 역사를 그려내는데 이는 E.H. Karr의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떠올린다. 미래인인 다나가 겪게되는 모든 사건들은 그렇게 현재 우리가 살아내며 맞닥뜨리는 모든 현실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대한민국에서 만연하게 보여지는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혹은 남혐의 문제), 이주 노동자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태도, 장애를 가진 이들이나 인종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이주민에 대한 문제까지.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서사 내내 리얼리즘적 사회비평을 엿보이면서도 그를 가장 크게 관통하는 것은 '애증'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고귀한 희생도, 사회구조 전복을 위한 투쟁심도 아니다. 한 없이 오가는 사랑도, 누군가를 치열하게 미워하는 마음도 아니다. '애증', 그 복잡 미묘한 감정. 백도 아니고 흑도 아닌 회색에 가까운 그 감정이 바로 버틀러의 KINDRED를 관통하는 감정이다. 

 다나와 루퍼스의 관계에서 오가는 '애증'은 인간 본성의 가장 저 밑까지 들춰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다나에게 있어 루퍼스는 수도 없이 목숨을 구해가며 자라난 소년이고, 그녀의 선조이며, 친구이고, 남동생이었다. 그러나 루퍼스는 그 시대의 어른이 되어갔고,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백인이며, 남성이고, 농장주다. 다나는 그러한 사실을 맞닥뜨릴 때마다 분노를 일깨운다. 어쩔 수 없는 루퍼스에 대한 애정과 미움 그 사이에서 늘 방황한다. 

 루퍼스 역시 자신의 목숨을 늘 구해주는 다나를 아끼지만 그녀의 인종이 흑인임을 늘 인지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앨리스와 동일시의 감정을 품는다. 루퍼스에게 있어서도 다나는 늘 자신의 구원자였고 친구였지만 그와 동시에 흑인이었고 노예였고 애정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벌어지는 감정들의 괴리, 그로 인해 점점 커지기만 하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그로 미루어 보아 애증이란 인간 본연에 가장 가까운 감정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이면을 갖는다. 

 KINDRED는 읽는 내내 수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인간, 인간성, 젠더, 페미니즘, 역사적 사실, 성차별, 레이시즘... 인간 사회를 이룩하고 있는 수많은 성질에 대해 절절하게 잘 녹여낸 작품이다. 

 독자로써 나는 좀 더 수많은 사람들이 옥타비아 버틀러를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를 통해 내가 사는 곳만을 보는게 아니라 내가 이곳에 살 수 있게 한 주변에 대해 보는 시각을 기를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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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루퍼스는 언젠가 농장 주인이 될 것이다. 언젠가 노예주가 되고, 저기 반쯤 감춰진 오두막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루퍼스는 내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지켜본 덕분에, 계속 목숨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자라고 있었다.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 p124

어떻게 케빈과 내가 이 시대에 수월하게 끼어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쇼를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배우였다. 집에 갈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 그들과 비슷한 척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형편없는 배우였다. 우리는 실제로 역할 속에 녹아든 적이 없었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 p184 ~ 185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노예상인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다시 보았다. "그래서 수월하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졌구나. 이제 이유를 알았어."
"무슨 말이야?" (케빈)
"수월함 말이야. 우리나, 아이들이나...... 노예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전에는 몰랐어."
- p191

나는 총을 보고, 그 총을 쥔 청년을 보았다. 계속 루퍼스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루퍼스는 계속 내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 p361

"그렇다 해도...... 난 루피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그는 침대 안에서는 나를, 침대 밖에서는 너를 좋아하지. 사람들 말을 믿는다면 우리는 꽤 비슷하게 생겼어." (앨리스)
"우리가 봐도 비슷하게 생겼지!"
"그렇겠지. 어쨌든 그건 우리가 같은 여자의 반쪽이라는 뜻이야. 적어도 루피의 미친 머릿속에서는." (앨리스)        
- p445

"나는 생각했어. 나일 수도 있다고, 그 자리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개처럼 끌려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고!" 나는 말을 멈추고 케빈을 내려다본 다음,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나는 재산이 아니야, 케빈. 말이나 밀 포대가 아니야. 내가 재산처럼 보여야 한다면, 루퍼스를 위해 내 자우에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루퍼스 역시 한계를 받아들여야 해. 나에 대한 태도 말이야. 죽고 죽이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나아 보일 만큼이라도, 내가 내 삶을 통제하게 해줘야 해."
- p479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노예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퍼스는 루퍼스였다. 그는 변덕스러웠고, 관대하다가 잔인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를 나의 조상으로, 나의 남동생으로, 나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나의 주인으로, 나의 연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예전에는 그도 그 점을 이해했었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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