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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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의 <러시아 소설>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르포문학이라는 사전정보도 있었기에 러시아의 풍광이나 문화,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을 중간 정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는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작가 자신에 대해서), 이 생각이 작가가 이 글을 쓴 목적 또는 의도와 같은 지는 확실하지 않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포로가 되어 러시아 오지의 정신병원에 갇혀 50년을 보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헝가리 남자에 대해 취재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가 50년간 갇혀있었던 러시아의 코텔니치라는 곳을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작가는 50년간 말이 안 통하는 타국에서 생활한 그 남자의 삶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외조부나 어머니도 조국인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 살면서 그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문제나 문화적인 단절감으로 인한 고통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단절로 인한 고통의 삶은 작가까지 이어져서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으로 느껴진다.

 

타국살이와 언어단절에 의한 외로움과 고통이 이 소설을 이끄는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작가의 사랑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서로의 감정이나 생각이 잘 전달되지 않는 기이한 형태인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작가가 보이는 사랑의 모습이 일방적이고 너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괴로웠다. 작가는 여주인공 소피를 정말로 사랑하는 지, 그저 유희나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 지, 상대방이의 감정이나 생각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 고집하면서 혼자서만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중간에 나오는 작가가 소피를 위해 썼다는 단편소설은 내가 보기에는 너무 가학적이고 파렴치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일방적이고 비정상적인 연애가 제대로 될 리 없으니 소피는 떠나고 작가는 홀로 남았다. 그 즈음 작가가 코텔니치에서 만난 아냐라는 여인이 그녀의 아기 레프와 함께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을 다시 방문하다. 사건의 이유나 범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장례식이 치러지는데, 그녀 역시 그 곳 태생이 아닌 외국출신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작가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뉘앙스의 편지를 쓰면서 이야기가 끝나게 된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50년간 타국에 갇혀 살았던 남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어렴풋이나마 자신 내부의 외로움(자신의 사랑이 비정상적이고 이기적이고 일방적이었던 원인)의 근원을 알게 되었고,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타국생활을 한 여인의 죽음을 보면서 그 외로움을 떨쳐내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되는 것으로 나 이해했다. 내 생각이 옳다면 작가가 새롭게 맞이할 삶이나 사랑은 예전보다는 일방적이지는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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