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시선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권오룡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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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간이 있다.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순간.

지나간 사진들을 뒤적이다 보면 그런 순간과 만날 때가 있다. 이제 한 장의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 순간들. 충만한 삶의 한 순간. 죽어버린 시간 속에서 생생한 삶의 한 페이지를 만나게 되는 순간.

여기, 결정적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가가 있다. 한 순간의 충만함을 ‘카메라’라는 스케치북으로 그려내는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의 이름은 ‘결정적 순간’이라는 단어로 기억된다. “카르티에- 브레송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셔터를 누르기 전후의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 피터 갤러시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에게 사진을 찍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 카메라는 스케치북이 되고, 그의 눈은 “관찰하고, 관찰하고, 또 관찰한다.” 회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진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사진은 순간과 순간의 영원성을 포착하는, 늘 세심한 눈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드로잉은 우리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섬세한 필적으로 구현해낸다.
사진은, 성찰을 드로잉하는 순간적인 행위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p.41

 

그가 순간을 담아내는 방식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사진가들에게는 한 번 사라진 것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기에.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을 동일한 조준선 위에” 놓고, “달아나는 현실 앞에서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해내는 순간, 그의 카메라는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스쳐 지나갈 뻔 했던 찰나의 아름다움이 영원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카메라는 그에게 스케치북이 되고, “직관과 자생(自生)의 도구”가 되며 “시각의 견지에서 묻고 동시에 결정하는 순간의 스승”이 된다.

이 짧으면서도 매력적인 그의 사진에 관한 단상들을 읽노라면, 그에게 사진은 무엇보다도 삶을 고민하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순간을 향한 우리의 열망은 삶을 향한 진지한 물음들과 닮은 면이 있다. 그에게 카메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물음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듯이.


알베르토 자코메티, 에른스트 하스, 로베르 드와노, 로버트 카파, 앙드레 브르통, 장 르누아르 등 사진가들과 친구들에 대해 적은 간략한 글들 속에는 그가 사진으로 담아낸 순간들만큼이나 매혹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그 농밀한 시선들. 서문에서 제라르 마세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의 글은 늘 간결한 예술작품, 거의 언제나 정곡을 찌르는 문장 감각 덕분에 성공을 거두는 즉흥곡”이다. 간결하지만 그 속에 결정적 순간이 들어 있기에 그의 글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우정은 시간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우리는 연민으로 가득 찬 그의 웃음도, 익살과 깊이를 지닌 그의 촌철살인의 응답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결코 두 번 말하지 않으면서도 매번 우리에게 주는 경이로움. 하지만 그의 깊은 친절, 모든 존재와 소박한 삶에 대한 사랑은 그의 작품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로베르 드와노에 관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p.82

 

브레송의 사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그 모든 이들에게 그의 유일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순간의 충만한 의미를 포착”해내기 위해 삶에 끊임없이 몰두했던 한 거장의 깊이 있는 사색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마치 현장범을 체포하는 것처럼 길에서 생생한 사진들을 찍기 위해 바짝 긴장한 채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곤 했던” 한 사진가의 모습을, 컴컴한 작업실이 아니라 삶이 활기차게 생동하는 거리를 자신의 작업실로 만들었던 거장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짧지만 매혹적인 글들을 통해 그가 남긴 사진들을, 그의 삶을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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