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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운명이 참으로 궁하네 그려” 내가 말했다. “그렇지가 않다네. 이것으로 시대를 탓한다면 괜찮지만, 대부의 운명은 애초에 궁한 적이 없었다네. 하늘이 사람에게 복을 줄 때, 한 가지만은 늘 주지만 두루 갖추는 것에 있어서는 인색한 법이라네. 대부는 지금 나이가 일흔 다섯인데 건강하여 병이 없네. (중략) 궁하게 살면서도 늙도록 저술하기를 그만두지 않아 (중략) 아들 둘과 손자 넷을 두었는데, 모두 글과 예법에 힘쓰고 문장으로 우뚝하니, 뒤를 이어 나올 자가 더욱 우수하고, 장래가 끝이 없을 것이네. 이것을 어찌 부귀영화와 맞바꿀 수 있겠는가? 이 세 가지를 지니고서 부귀영화까지 보탠 사람은 예전 세상에서도 아예 없었소. 하물며 이런 말세에 있어서겠는가?”(408쪽)
시대가 정약용과 황상의 독주를 막았다면, 시대는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을 이뤄주기도 했다. 곁에서 저술 활동을 도왔던 제자보다 황상이 더 주목되는 것은 ‘관계’에서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결같음’은 그들이 보여줬던 하나의 태도였다.
사람에게 있어 한 가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해보였다. 스승은 복사뼈가 닳아 구멍이 날 때까지 공부에 힘썼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것을 얻었다”라는 말처럼 그들의 그 자세와 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다. 정약용은 황상을 알아보았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라’ 그가 아무에게나 이런 말을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황상이 알아주었다. 그가 풍파 속에서 굳건히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본보기가 되어준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것을 얻었다.” 그를 알아봐 준 스승의 말이었으니 타인이 느낄 울림보다 더 컸을 것이다.
둘의 모습을 돌아보니 이러했다. 시간은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의 인연은 시간보다 더 끈질기다. 이 두 가지 이치를 알고 있었을 두 사람은 ‘담금질’을 시작한다. 이들의 만남이 삶을 바꾼 만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택한 그 ‘노력’ 덕분이었다.
학질을 앓는 중에도 ‘부지럼’을 떨던 제자가 아니었는가. 이 노래가 다정스러운 것은 결국,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다. 노래 불러주는 이와 들어주는 이 사이 사이에 쌓인 신뢰 때문이다.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의 ‘청춘’을 함께 겪고, 스승의 유배를 목격하며 쌓아온 관계였다. 생각해보건대, 스승에게 황상이 제자 그 이상의 의미였음은 분명할 것이다. 아들 가진 두 자식의 아비로서 황상을 지켜보며, 신혼 생활에 관여하고, 황상 아버지 장례에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애들아! 저 고운 빛깔, 어여쁜 무늬를 보렴. 꼭 너희들 빛나는 청춘의 문채로구나”라며 때로는 다정했던, 평생을 공부하던 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다시 공부하라’였다. “더우면 부채를 부치고, 힘들면 담배도 한 대 피우며,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마지막 인사. 걸리는 것도 또한 있었겠지만, 부지런히 노력해서 살아온 이가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하는 이의 즐거움은 ‘자유로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라는 시간으로 만들어진 ‘자유로움’을 생각하면, 그 의미는 다시 새로워진다. 책의 시작과 끝은 황상이 한결같은 자세로 공부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는 처음과 끝이 이렇게 한결같았다”라고. 그는 산속 집에서 지난날의 회억에 젖어 조용히 지냈으며, 그렇게 다시 세상에서 잊힌 사람이 되었다고 책에 기록된다.
강렬했던 그들의 첫 만남과 아슬아슬했던 그들의 마지막 만남 사이 ‘진실로 또한 한 곡이 끝나는 연주의 느낌’이 드는 것은 그들이 ‘그 시대’를 함께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비 같던 스승이 죽고, 형제 같던 스승의 아들이 죽자 황상은 통곡하고, 노래 부르되 예전과 같지 않음을 몸소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시간은 평탄한 시간만은 아니었고, 타인이 알아봐 주는 시간도 아니었다. 황상의 경우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더 깊은 만남이었을 것이다. 함께 한 시간보다 그렇지 못한 시간이 더 많음에도 항상 특별했던 것은 결국, 진심이 통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진심이 아니고서는 갑작스럽게 만나서 뜻하지 않게 헤어져야 하는 시간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만남은 시대도 말리지 못한 만남이 되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 맞이한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면, 늘 그렇게 함께 했던 셈이다.